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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는 온건주의자'인 이슬람이 테러의 상징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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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복지

    '다수는 온건주의자'인 이슬람이 테러의 상징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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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 어디까지 아니?] ⑩ 테러와 이슬람의 연계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파괴한 2001년의 9.11 사건부터 최근의 IS에 의한 잔인무도한 테러까지 전 세계를 경악시킨 테러 사건들이 이슬람과 연계된 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다.

    9.11 테러의 주범들은 모두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었다. 19명의 주범들 중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이 15명으로 가장 많다.

    2001년 9-11테러로 불타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사진=박찬기 교수 제공)
    이들은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국제적 테러 단체인 알-카에다 소속이었다.

    시리아 내전을 통하여 전 세계를 공포의 분위기로 몰고 간 IS 또한 이슬람을 빙자한 극악무도한 국제 테러 조직이다.

    나이지리아에서 공포를 조성하는 보코 하람(Boko Haram), 리비아의 안사르 알-샤리아(Ansar al-Sharia), 소말리아의 알-샤바브(Al-Shabab) 등 많은 테러 단체들이 이슬람과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이 이슬람과 테러의 연관성을 더욱더 부각시키고 있다.

    이슬람이 테러와 연관된 데에는 중동 지역의 국내·외적인 요인들이 작용했다.

    이슬람의 원년은 서기 622년으로 약 1400년이 지난 현재 전 세계적으로 16억 명의 무슬림이 있다. 서구에서 기독교가 동양에서는 유교가 많은 사람들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치듯 아랍 세계에서는 이슬람이 그러했다.

    이와 같이 긴 세월 동안 내재되어 있던 이슬람을 외부로 이끌어낸 계기가 범아랍민족주의의 붕괴이다.

    범아랍민족주의는 오스만 제국 말기부터 시작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현재의 터키를 기반으로 하는 오스만에 의하여 창건된 제국으로 약 500년간 중동 지역을 통치하였다.

    아랍인들은 제국의 말기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민족주의가 고취되면서 독립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인 1915년 후세인-맥마흔 서한에서 반오스만 제국 반란의 대가로 범아랍국가를 건설해준다는 약속으로 이어졌다.

    수에즈 전쟁 직전의 나세르 (사진=박찬기 교수 제공)
    전후 이러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1956년 수에즈 전쟁을 통하여 이집트의 나세르가 아랍 지도자로 등장하면서 범아랍민족주의가 재가동되었다.

    수에즈 전쟁은 이스라엘과 영국 및 프랑스가 공동으로 나세르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반기를 들면서 사전에 공모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9일 만에 종식되었다.

    나세르는 실제 전쟁에서는 열세였지만 장기간 중동 지역을 통치한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싸운 공로로 아랍인 전체의 영웅으로 등장하면서 범아랍민족주의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합병하여 UAR(United Arab Republic)을 건국하면서 범아랍국가 건설은 현실화되는 것 같았다.

    1967년 6월 전쟁의 한 장면 (사진=박찬기 교수 제공)
    그러나 3년이 채 못 되어 UAR이 붕괴되고 1967년 6월 전쟁에서 아랍 연합군이 참패하면서 범아랍민족주의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6월 전쟁 후 범아랍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졌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랍인은 원래 아라비아반도에 거주하던 사람들로 이슬람 제국이 팽창하면서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여 모두 혼혈이 되었는데 무슨 범아랍민족주의인가?

    그리고 이러한 민족주의는 자칫하면 인종 차별주의와도 연관될 수 있기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발상이다.

    둘째, 6월 전쟁의 참패 원인이 각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주의 때문인데 '범아랍'이라는 자체가 모순적이다.

    셋째, 전쟁에서 항상 승리하는 이스라엘은 인종이 아니라 유대교로 뭉친 국가이다.

    그러므로 아랍도 인종이 아닌 종교, 즉 이슬람으로 뭉쳐야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 결과 아랍인들은 그간의 범아랍민족주의에 대한 꿈이 허황된 것임을 깨닫고 일상생활에서 이슬람을 재활성화하는 것으로 노선을 변경하였다.

    이러한 종교적인 단합으로 모든 무슬림과 형제애를 나누면서 번영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매우 훌륭하고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재도입된 이슬람이 본의 아니게 과격화되면서 현재 이슬람이 테러와 연관되게 된 것이다.

    이슬람이 과격화된 원인의 첫째가 국가들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에는 우리가 아는 모든 정치 체제가 현존한다. 왕정, 공화정, 신정, 사회주의, 독재주의뿐만 아니라 세습적 공화정 등 이 있지만 어느 하나도 국민 다수로부터 정통성과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난무하는 부정부패와 패거리 정치, 무기력한 중앙 정부 등은 정치 발전과 경제 발전의 부재를 초래했다.

    그 결과 실업자와 빈곤자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불안이 계속되어 왔다.

    특히 젊은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증가하면서 과격이슬람단체에 가입할 가능성이 높은 후보자 군이 형성되었다.

    둘째, 1973년 제1차 석유 파동 후 아랍 지역의 많은 노동자들이 걸프 지역 산유국으로 이동하였지만 저임금과 차별 정책, 열악한 근무 환경 등으로 본토인들에 대한 반감이 급증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산유국 엘리트들의 비무슬림적인 타락상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동족에 대한 차별과 본토인들의 타락상이 카세트테이프를 통하여 아랍 전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반산유국적인 과격이슬람운동을 자극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셋째는 계속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후 아랍 연합군은 이스라엘과 4차례의 전쟁을 치렀지만 연전연패하였다.

    1982년에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으로 야세르 아라파트가 지휘하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튀니지로 피신하였다.

    지도부가 없는 상황에서 1987년 제1차 팔레스타인 민중봉기가 발발하면서 PLO에 반하여 하마스(Hamas)라는 팔레스타인 이슬람과격단체가 결성되었다.

    넷째는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이다.

    미국 내에는 이스라엘 국가 내의 유대인 숫자와 비슷한 650만 여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 유대인들은 미국 내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유대인 로비 단체는 미국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유대인들로부터 정치적 재정적 지원을 받았으며 취임 후에는 친이스라엘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이 아랍 지역에서 반미 감정을 초래했으며 과격 단체들은 미국을 공격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다섯째는 1979년 이란의 팔레비 정권의 붕괴와 쉬아 이슬람 혁명이다.

    팔레비는 적극적인 친미주의자로 자국 내의 이슬람을 탄압하였다.

    이란 쉬아 신정국가 건립자 호메이니 (사진=박찬기 교수 제공)
    그러나 호메이니가 등장하면서 이란은 쉬아 이슬람 신정국가로 변모하였고 열렬한 반미 국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호메이니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외부로 전파하기 위하여 정치적이고 과격한 이슬람 노선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중동 지역에 수많은 이슬람 과격 단체가 결성되고 이는 국제적 테러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1979년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다.

    구소련은 당시 위기에 처한 아프가니스탄의 공산주의 정권을 지원하기 위하여 침공하면서 반소 무슬림 전사들과 10년간의 게릴라 전쟁을 치렀다.

    당시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무슬림 전사 모집책이었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재정을, 미국이 훈련과 무기 조달을 책임졌다.

    훈련이 끝난 무슬림 전사들은 파키스탄의 지원 하에 아프가니스탄으로 파견되어 반소 게릴라전을 수행했다.

    1989년 구소련이 철수하면서 전쟁은 종결되었지만 수많은 무슬림 전사들이 게릴라전의 기법과 무기 제작법 등을 습득하게 되었고 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이들의 총구가 미국을 향하게 되었다.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반소 아프간 전쟁을 수행한 사우디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이다.

    오사마 빈 라덴 (사진=박찬기 교수 제공)
    이와 같이 과격화된 이슬람은 비단 반미/반서구 테러뿐만 아니라 아랍 이슬람 국가 내에서도 큰 문젯거리다.

    무슬림의 절대 다수는 온건주의자들이다.

    그러나 극소수의 과격 이슬람분자들이 자국 내에서 극단적이 이슬람 논리는 내세우면서 이에 반하는 선량한 국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IS와 같이 더 극단적인 단체는 심지어 점령 지역에서 아이스크림의 제조와 판매까지 금지시켰다.

    그 이유는 코란에 아이스크림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재도입된 이슬람이 과격화되면서 국내·외적으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국제적 테러 행위는 우리가 쉽게 알 수 있지만 우리가 모르게 아랍 국가 내에서 많은 선량한 무슬림들이 과격이슬람주의자에 의하여 희생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무슬림들은 이들 극소수의 과격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하여 공개적인 반대나 비판을 금하고 있다. 그 원인은 본인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슬람과 테러의 연계를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기독교와 같이 이슬람도 종교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슬람 연구자들 사이에 조심스레 거론되고 있다.

    이 글은
    ※제주까지 진출해 온 예멘 난민, 전세계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자말 카슈끄지 암살. 중동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현재 중동 지역은 예멘과 시리아의 내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 미국과 러시아의 개입, 이슬람국가(IS)의 잔존 등으로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는 지역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큰 변수 중의 하나인 원유 가격 변동의 진앙지이기도 하고 한국 기업의 플랜트 수출의 주요 시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중요성에 비해 아직도 우리는 중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이 글은 우리가 중동에 관하여 잘 모르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점에 대한 박찬기 전 명지대 교수의 연재글이다. 박 교수는 한국중동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메나코르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① 예멘 난민 문제
    ② 순니(Sunni)/쉬아(Shia) 갈등
    ③ 석유 자원이 축복인가, 저주인가?
    ④ 중동도 동양이다
    ⑤고대 이집트 그림 문자(hieroglyph)는 상형 문자가 아니다
    ⑥남한과 북한의 중동관계
    ⑦ 아랍의 봄은 왜 튀니지에서 시작되었는가?
    ⑧사이크스-피코 비밀 협정은 무엇인가?
    ⑨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⑩ 테러와 이슬람의 연계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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