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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핸드폰을 든 중동인들, 김정은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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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복지

    한국산 핸드폰을 든 중동인들, 김정은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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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 어디까지 아니?] ⑥남한과 북한의 중동관계

    제주까지 진출해 온 예멘 난민, 전세계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자말 카슈끄지 암살. 중동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현재 중동 지역은 예멘과 시리아의 내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 미국과 러시아의 개입, 이슬람국가(IS)의 잔존 등으로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는 지역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큰 변수 중의 하나인 원유 가격 변동의 진앙지이기도 하고 한국 기업의 플랜트 수출의 주요 시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중요성에 비해 아직도 우리는 중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우리가 중동에 관하여 잘 모르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점에 대한 중동 전문가의 연재글을 싣는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예멘 난민 문제
    ② 순니(Sunni)/쉬아(Shia) 갈등

    ③ 석유 자원이 축복인가, 저주인가?
    ④ 중동도 동양이다
    ⑤고대 이집트 그림 문자(hieroglyph)는 상형 문자가 아니다
    ⑥남한과 북한의 중동관계


    중동을 여행하다보면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에 부딪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중동 사람들이 한국의 가전제품이나 스마트폰을 좋아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미스터 김(북한의 지도자)'을 좋아한다.

    남한 대통령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원인은 중동 지역 주민의 다수가 반미 성향이 높기에 미국에 직접 대항하면서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하는 '미스터 김'이 멋져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문적으로 중동 국가는 아랍 연맹에 소속된 22개 국가와 비 아랍 국가인 이스라엘, 터키, 이란 등 3개 국가를 포함한 총 25개 국가를 일컫는다.

    또 다른 분류는 중동-북아프리카로 구분하여 메나(MENA: Middle East-North Africa)로 호칭하기도 한다.

    요르단에서 본 골란사원 (사진=박찬기 교수 제공)
    현재 한국은 중동 지역 25개 국가 중 시리아를 제외하고 모두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냉전 시대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많은 중동 국가와 외교 관계를 체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향력도 더 높았다.

    이러한 원인은 당시 잦은 아랍-이스라엘 전쟁, 특히 1956년의 수에즈 전쟁으로 인하여 다수의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을 싫어했기 때문에 역시 반미국가인 북한을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수에즈 전쟁 이후엔 이집트의 나세르가 이끄는 범아랍민족주의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기에 많은 중동 국가들이 친소련, 친동구권으로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1970년까지는 남한보다 GNP가 높았기에 중동 지역에 외교 관계를 확장하고 해당 국가에 지원도 많이 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남한 정부는 이러한 중동 지역에서의 외교적 열세를 극복하고자 국제 정치와 경제 문제를 분리하여 대응하기로 하였다.

    당시 미국의 닉슨 행정부는 평화 공존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제적 긴장을 완화시켰고, 남한의 GNP도 북한을 능가했기에 이러한 정책 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정/경 분리 외교 정책은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으로 인한 1차 석유 파동으로 중동 건설 붐이 불면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중동 건설 붐은 단순한 경제적 이득뿐만 아니라 해외 건설 경험이 비천한 한국 기업들이 여러 분야에서 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중동 지역이 한국 상품의 수출 시장으로 등장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또한 수만 명의 한국 근로자들이 이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해외 근무 경험뿐만 아니라 본인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도 한 몫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의 대 중동 정책이 이스라엘로서는 불만이 많았다.

    요단강 건너 이스라엘 풍경 (사진=박찬기 교수 제공)
    한국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미국과 공조하여 친이스라엘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나 아랍 국가와 외교 관계를 확장하면서 친아랍 정책을 추진하자 이스라엘은 1978년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을 폐쇄하면서 남한과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이러한 단절이 냉전이 끝난 후인 1994년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다시 개소되면서 양국 간의 외교관계가 회복되었다.

    남한이 북한보다 더 많은 중동 국가와 외교 관계를 채결한 것이 1980년대 말이다.

    남한은 1980년 아랍 국가 중 가장 대표적인 친북, 반미 국가인 리비아, 이라크와 외교 관계를 채결하였고, 1980년대 후반에 북예멘, 소말리아, 모로코 등과도 외교 관계를 채결하면서 북한보다 남한이 중동 지역에서 외교 관계 수에서 역전되는 시기를 맞이하였다.

    1991년 소련연방이 붕괴되면서 남/북한이 동시에 UN 정식 회원국이 되고 동서 간의 긴장이 완화되면서 남한은 그간 열성적 친북 국가인 알제리, 남예멘 등과 외교관계를 채결하였고, 1995년에는 이집트와도 총영사급에서 대사급 외교 관계를 채결하면서 중동 지역 대부분의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러한 남한의 약진에 반하여 이 당시 북한은 중동 지역에서 외교관을 축소하는 실정이 되었다.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인 문제로 대사관 유지비용을 줄이기 위함이고, 다음으로는 탈냉전 시대에 중동 지역에서 남/북한이 경쟁할 필요성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유프라테스강 (사진=박찬기 교수 제공))
    현재 남한이 외교 관계를 채결하지 못한 유일한 중동 국가가 시리아이다.

    그간 남한도 여러 방면으로 시리아와 대사급 외교 관계를 위하여 노력하였고, 시리아도 한국과의 외교 관계를 바랬지만 북한과 같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시리아가 북한을 혈맹 관계로 보고 있기에 북한과 차별하여 영사관으로 시작하자는 조건 때문이다.

    북한은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 당시 시리아에 조종사 30명, 기갑병 200명, 미사일 요원 300여 명을 파견했으며,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시에도 북한 조종사가 시리아 미그기를 조종하면서 상당수가 사망하였다.

    2007년 9월 이스라엘이 완공이 임박한 시리아 동부에 위치한 알 키바르(Al Kibar) 원자로를 폭격할 때도 북한 핵 기술자 15명이 사망하였다.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촌 (사진=박찬기 교수 제공)
    현재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에서도 다수의 북한 조종사들이 시리아 미그기를 조종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과 시리아의 관계는 남한과 미국처럼 오래된 혈맹관계이다.

    현재 남한은 경제 발전으로 인하여 중동 지역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류의 전파로 남한의 드라마, 노래가 전 지역을 휩쓸고 있으며 한글 교육이 날로 인기를 얻고 있다.

    나아가 중동은 남한의 첨단 기술 플랜트 수출의 주시장이며 이라크, 알제리 등에서는 한국 건설 회사가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 중이다.

    또한 레바논의 동명부대, 아덴만의 청해부대, 남수단의 한빛부대, UAE의 아크부대 등 많은 한국군이 중동 지역에 파병되어 있다.

    이에 비하여 현재 북한은 중동 지역에서 외교적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의 좋은 조건을 살려서 우리는 중동 국가들과 인적 물적 교류를 더 증대해야 하며, 특히 비산유국가와도 교류를 증진시켜야 한다.

    남한은 중동 지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등 많은 에너지를 수입하기에 항상 무역수지면에서는 큰 폭의 적자를 내고 있다. 우리 상품을 더 많이 수출하는 것이 이러한 수출입 불균형을 바로 잡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지역 주민들과의 신뢰도를 높이고 남한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향상시켜야 한다.

    산유국도 중요하지만 비산유국가와도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야 하며, 현재 내전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시리아, 예멘 등에도 관심을 더 가져야한다.

    특히 민간 외교를 더 활성화하여 문화적 학술적 교류를 확장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

    과거 실패한 자원 외교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해당 지역을 연구해야할 뿐만 아니라 현지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저자인 박찬기 전 명지대 교수는 한국중동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메나코르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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