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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훈장'…죄 없는 국민 족친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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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훈장'…죄 없는 국민 족친 대가?

    KBS '시사기획 창' 재심서 무죄 받은 70~80년대 간첩사건 관련 훈포장 기록 파헤쳐

    (사진=KBS 제공)

     

    '훈장'은 나라나 사회에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그 일을 기리고자 내리는 최고의 영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훈장 받은 사람들을 공경해야 한다고 배워 온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죄 없는 국민들을 다그치고 괴롭혀서 거짓 자백을 얻어낸 자들이 훈장을 받았다면, 우리는 그들을 우러러봐야 할까.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훈장을 준 국가를 신뢰해야 할까.

    지난 2일 KBS 1TV에서 방송된 '시사기획 창'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행태를 들춰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훈포장 기록 72만 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다.

    정부는 최근까지 훈포장 기록은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아 왔다. 이에 KBS는 지난 2013년 정부를 상대로 훈장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해 훈포장 기록을 받아 볼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정부에서 공개한 훈포장 기록이 일부 삭제된 66만 건뿐이었다는 점이었다. KBS 탐사보도팀은 다양한 취재를 통해 정부수립 이후 최근까지의 훈포장 기록 72만 건을 확보해 분석했다.

    취재진은 1970~80년대 무수히 터져 나왔던 간첩 사건들에 주목했다. 당시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옥살이를 마친 뒤에도 끊임없이 결백을 주장해 왔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2000년대 들어서야 법원 재심을 통해 실제로 무죄를 인정받았다. 안기부·보안사 수사관의 민간인 불법 연행, 수사 과정에서의 불법 감금, 고문과 가혹행위 등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조사와 법원의 재심 등을 통해 확인된 덕이다.

    1985년 5월, 당시 서른일곱 살이던 이병규 씨는 일터에서 보안수사관들에 의해 강제 연행됐다. 수사관들은 이 씨가 16년 전 납북돼 간첩 교육을 받았고, 돌아온 뒤 암약해 온 고정간첩이라고 추궁했다.

    앞서 이 씨는 1969년 조기잡이 중 납북됐다가 6개월 뒤 풀려난 '흥덕호'의 어부 중 한 명이었다. 당시 조사 뒤 무죄로 풀려났던 그가 16년이 지난 시점에서 37일 동안의 불법 감금과 고문 끝에 고정간첩이 된 것이다. 이 씨는 "자살할 시간과 여유만 있었으면 무조건 자살했을 것"이라며 "한 달 동안 당하고 나니 생을 완전히 포기하게 되더라"고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수사관들은 이 씨의 주변 인물들까지 고문해 거짓 증언을 하게 했다. 그렇게 이 씨가 유죄 판결을 받는 데는 7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시 담당 수사관 3명에게는 훈장이 주어졌다. 공적 사항은 모두 '간첩 이병규 검거'였다.

    이 씨는 지난 2012년 재심에서 간첩 누명을 벗었지만, 당시 수사관들이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참… 한탄할… 말도 안 돼… 이근안이하고 똑같은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 한 행동이… 그런데 어떻게 훈장을 받아"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 무죄 60건 담당 수사관들에 훈포장 76개…"전두환정권 들어 급증"

    (사진=KBS 제공)

     

    결국 무죄로 밝혀진 간첩사건들을 근거로, 해당 사건을 맡았던 안기부·보안사 대공 수사관들이 다양한 훈포장을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일부는 이를 근거로 국가유공자가 돼 국립현충원에 묻힐 수 있는 혜택도 얻었다. 피해자들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통해 뒤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지만, 당시 수사관들에게 주어졌던 훈장은 여전히 남아 그들의 공적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취재진의 분석에 따르면, 1970~80년대 검거된 간첩은 모두 1021명이다.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해 국가 기관들이 펴낸 보고서에는 조작 의혹이 있는 사건이 67건이었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사건은 60건에 달했다.

    무죄 60건을 연도별로 보면, 1970년대에는 1975년에 4건으로 가장 많았고 전두환 정권 시절 급증하면서 1983년에는 10건에 달했다.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1987년 이후에는 거의 없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서울·경기·인천) 30건, 전라도 13건, 경상도 9건, 강원도 4건, 충청도 4건 순이었다.

    무죄 사건이 발생한 추이와 훈포장이 수여된 추이를 비교해 보면, 1970년대에는 무죄 건수보다 훈포장 수가 적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는 무죄 건수가 늘어나는 동시에 훈포장 수도 급증했다. "5공화국 들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집권 초기부터 대간첩 수사관들을 모아 간첩 검거를 주문한 까닭"이라는 것이 취재진의 설명이다.

    취재진은 "60건의 무죄 사건 중 간첩 검거를 공로로 수여된 것으로 확인된 보국 훈포장은 모두 34개"라며 "개연성이 높아 보이는 것도 42개에 달했다"고 전했다. 죄 없는 국민을 족친 대가로 수사관들에게 주어진 훈포장이 76개에 이르는 셈이다.

    당시 해당 사건을 맡았던 수사관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취재진이 직접 만난 그들은 고문은 부인하면서도 불법 연행·감금은 당시 관행이었다고 항변했다. "훈장 반납하고 싶은 생각 없다. 나는 당당하다" "간첩 부분에는 사과할 일이 없다. 단호히" "왜 대공한 사람들, 고생한 사람들 찾아다니면서 피곤하게 하냐"는 것이 당시 수사관들의 입장이다.

    지난날을 후회하는 일부 수사관도 있었다. 당시 보안사의 한 수사관 부인은 "학생들을 고문하면서 혐의가 없는데 끝까지 자백을 받아내야 되는 그런 과정이 굉장히 괴롭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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