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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 비관'이라더니…'분신' 유서에 "국민들 떨쳐 일어나달라"



사건/사고

    '채무 비관'이라더니…'분신' 유서에 "국민들 떨쳐 일어나달라"

    유서 확인한 법률자문단 "경찰, 유가족 의견 듣기도 전에 입장 내놔"

     

    2013년의 마지막 날,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인 채 숨진 고(故) 이남종(40) 씨의 유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5시 35분쯤 서울 중구 서울역 앞 고가도로에서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라는 현수막 2개를 다리 밑으로 내걸고 시위를 벌인 뒤 분신, 지난 1일 오전 7시 55분쯤 끝내 숨졌다.

    경찰은 1일 오전 곧바로 낸 보도자료를 통해 "유족인 동생의 진술에 따르면 이 씨가 신용불량 상태에서 빚독촉으로 많이 힘들어 하였다면서 경제적인 이유 말고는 분신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서를 직접 확인한 시민사회단체 및 유가족들은 경찰의 이같은 결론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씨의 유서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형식을 빌어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을 비판하는 내용인 것으로 확인됐다.

    유서를 직접 확인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유서의 실제 내용은 경찰이 알린 것처럼 개인적인 신병 비관과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또 유가족들의 공식 의견 청취 과정에서도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먼저 숨진 이 씨가 졌다고 알려진 채무빚은 함께 사는 큰형이 진 3000만 원 상당의 카드빚으로, 이마저도 7~8년 전에 진 빚이었다는 것.

    또 인테리어 시공업자인 큰형은 평소 벌이도 상당히 좋았으며 채무빚 독촉 역시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숨진 이 씨가 갑자기 이 때문에 목숨을 끊을 리는 만무하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경찰이 주장한 '어머니의 병환' 부분에 대해서도 "유서 7통 가운데 어머니의 병환을 한탄하는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숨진 이 씨는 국민에게 남기는 글 2통, 가족에게 3통, 평소 도움을 받은 이들에게 2통 등 7편의 글을 남겼으며 이 가운데 국민에게 남기는 글에서는 '안녕' 대자보의 형식을 빌어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비판하고 있었다는 것.

    박 변호사 등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정부기관이 개입한 것에 대해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하고 덮으려고 하는 정부를 비판함과 동시에 진상 규명을 위해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자보 형식의 글 옆에는 "국민들은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모든 두려움은 내가 다 안고 갈테니 국민들은 떨치고 일어나 주셨으면 좋겠다"는 호소문 형식의 글도 적혀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유서로 보면 이 씨는 정부에 문제 제기를 강력하게 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들이 들고 일어서야 하는데 자신이 그런 부분에서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문제는 경찰이 유가족들의 공식 의견 청취 등 자세한 확인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이 씨의 동생 진술에만 근거한 '신병비관' 류의 보도자료를 오전에 서둘러 발표했다는 것이다.

    특히 앞서 진술을 한 동생은 숨진 이 씨와 함께 살고 있지도 않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주민 변호사는 "동생의 진술이 틀리지만은 않겠지만 다른 유가족들의 의견 청취도 모두 끝마친 다음에 입장을 발표했어야 하는데도 경찰은 일부 사실에만 근거해서 오전에 경황이 없을 때 일종의 '왜곡 보도자료'를 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경찰은 이 씨의 큰형과 법률자문단이 유서가 담긴 다이어리 및 유류품을 확인하겠다고 요청했을 때도 "국립과학수사원에 보냈다"며 거부했지만, 알고보니 국과수에 보내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주민 변호사는 "경찰에 '유서 등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경찰이 거부했다고 얘기하겠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국과수에 보내서 없다던 유류품을 보여주겠다고 말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이 씨의 유가족은 경찰에 유서 반환을 요청했으며, 2일 오후 5시엔 빈소가 차려진 서울 한강성심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시민사회단체 각계에서도 이 씨에 대한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진보연대는 "이 씨의 분신 항거는 이 씨가 남긴 글과 메모, 분신 당시 고가도로에 내건 플래카드와 온 몸으로 외친 구호 등 모든 정황이 명백히 웅변하는 것처럼 박근혜 정부의 부정선거와 민주파괴 등이 초래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시국회의도 2일 오후 7시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이 씨가 남긴 뜻을 알리고 추모하는 문화제를 열 계획이다.

    또 참여연대, 국정원 시국회의,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민주투사 고 이남종 열사 시민장례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씨는 1973년 전남 광주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1990년대 초반 조선대 영문과에 입학해 대학 시절을 보냈다.

    이 씨의 장례는 나흘간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4일 오전 9시 30분쯤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다. 이후 광주 망월동 구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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