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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상은 경마도 올림픽 메달 레이스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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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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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 2011 노벨 문학상 수상자 - 스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노벨상 중에서 노벨평화상과 노벨문학상은 가장 정치적이다. 한동안은 인간을 억압하는 권위주의와 일상의 부조리에 저항하고 고발하는 비(非 )서방유럽권(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작품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 초현실주의 작가는 노벨문학상에서 상대적으로 멀다는 비난도 일었다. 그리고 보수우파보다는 좌파적 작가 쪽에 점수를 더 주는 경향도 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대표적 우파 정치인이나 작품 전성기엔 좌파).

    그렇게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를 한 바퀴 돌더니 다시 서구문학 우월주의 특히 유럽중심주의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들 한다. 거기에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싫어하는 경향도 눈에 띈다. 결국 올해의 노벨문학상은 스웨덴 시인에게 돌아갔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08명 중 92명이 유럽과 미국, 특히 유럽이 81명이다. 이것은 노벨상 위원회의 오류라기보다는 그냥 거기까지가 그들의 한계라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아시아 문학상, 아프리카 문학상 등 유럽의 노벨상에 상응하는 대륙별 문학상이 있어야 한다는 불만도 그래서 터져 나오는 모양이다.

    노벨문학상에서 시가 밀리는 것은 고도산업사회로 가면서 詩 자체가 위축되었기 때문이라 여겨왔다. 최근엔 신자유주의로 자본주의의 폐해가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물질과 이익, 속도와 성공에 사로잡힌 지구촌이 삶에 대한 성찰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詩에 대해 다시 주목하는 분위기이다.

    ◇ 노벨문학상을 위한 과제

    노벨상을 목표로 글을 쓰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다만 훌륭한 문학과 작가들을 가진 우리 사회가 당당히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다. 또 우리 문학과 작가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과제도 남아있다. 노벨문학상을 타기 위한 우리의 과제들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온 것 그대로이다. ''''깊이 있고 울림이 있는 좋은 작품'''', ''''뛰어난 번역작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사업'''', ''''세계문학과의 교류'''' 등이다.

    우선 세계 문학의 흐름이 한국에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부터 해보자. 잘 팔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 아니면 어린 취향에 맞춘 얄팍한 책들만 즐비하다. 현대 세계문학의 흐름을 살피고 그 흐름을 타며 세상도 보고 우리 자신도 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야 중견작가나 젊은 작가들이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해 영감을 얻고 새로운 마음, 새로운 눈으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 아닌가.

    기자야 노벨문학상 소식이 전해지면 노벨상을 누가 탔는가, 그 사람의 작품 세계는 무엇인가 찾아서 있는 그대로 써내면 된다. 하지만 작가는 기자가 아니다. 노벨상을 탄 그 작가와 함께 더불어 이미 흘러왔어야 한다. 그러려면 출판계도 독자도 더 자유롭고 빛나는 상상력으로 책을 펴내고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노벨문학상은 경마 레이스가 아니다

    어제 인터넷에 오른 기사 중에는 <노벨문학상 - 英 베팅사이트, 수상 후보 아도니스 1위·고은 6위>라는 보도도 있었다. 영국의 온라인 베팅사이트, 쉽게 말해 도박꾼들이 집계한 순위라는 뜻이다. 기사 내용 중에 이런 대목도 있었다. ''''고은(78) 시인이 올해는 노벨문학상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인가?''''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다. 한 시대를 진정을 다해 헤쳐 가며 작품을 써 온 시인에게 ''''거머쥐나''''라는 표현을 쓰다니 부끄러웠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원조라는 드높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을 타지 못했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 작가라 할지라도 보르헤스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 <뉴스위크>지가 세계 100대 명저로 꼽은 저술 중 1위인 <전쟁과 평화>의 톨스토이, 2위를 차지한 <1984년>의 조지 오웰, 3위 <율리시스>의 제임스 조이스. 모두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했다.

    톨스토이를 제치고 제 1회 노벨문학상을 탄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을 이 나라에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노벨문학상은 작가의 문학성과 일생의 업적, 명성에 일치부합하진 않는다. 얄팍한 언론들이 늘 예상 순위를 꼽고 수상자를 짚어 그 집 앞에 가 북새통을 이루지만 하릴없는 짓이다.

    언어의 문제도 마저 생각해 보자.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노밸 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도의 타고르는 영국이 지배했기에 영어권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노벨상을 탈 뻔 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통에 중단된 중국의 임어당도 영어강사 출신에 미국 하버드와 독일 등에서 공부해 영어로 된 작품이 많다.

    2000년 수상자, 중국 가오싱젠은 프랑스어 전공으로 프랑스 작품을 중국어로 번역해 내고 자신의 중국어 작품을 프랑스어로도 번역했다. 역시 프랑스에서 망명생활도 했다. 일본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영어를 못했지만 일본에 오래 머물며 일본문학에 미쳐 있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크라는 유명한 번역가가 마침 곁에 있었다.

    터키 파묵은 미국서 중동 언어를 가르치기도 한 국제적 인물로 영어 구사가 자유로운 작가였고 미국서 영어로 된 그의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었다. 이스라엘 아그논도 팔레스타인 문제로 국제적 지명도가 높고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서 자라 독일어 저서도 있다. 유럽과 팔레스타인을 연결하는 국제성이 수상의 주요 배경이었다.

    이런 점을 살필 때 작가가 자기 안에서 세계성을 갖거나 몸으로 세계를 돌며 융합시키는 게 중요하고 번역의 문제 역시 중요하다. 우리는 2001년 한국문학번역원을 세워서 우리 문학을 영어, 프랑스, 독일어 등 주요 언어로 번역하고 있다. 28개 언어권 486종의 출간을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은 1945년부터 2만종의 작품을 해외에 출간했다. 우리는 이제 겨우 세계문학계를 노크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 점을 감안하면 고은 시인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고은 시인 집 앞에서 기자들이 서성일 건가, 새로운 눈, 새로운 마음의 작가가 나와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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