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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안중근 수감 경계강화'' 문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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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총리실)

    日 ''안중근 수감 경계강화'' 문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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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관동도독부(關東都督府) 정황보고 및 ''잡보(雜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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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 의사 감옥 경계상황,사형집행 명령
    - 기록 미발굴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기록도


    안중근 의사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추가로 발굴돼 22일 공개됐다.

    국가보훈처(처장 김양)는 이날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을 관할하던 일제 행정기관인『관동도독부(關東都督府) 정황보고(政況報告) 및 잡보(雜報)』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발굴됐으며 1906년부터 1922년까지의 상황이 기록돼 있다.

    자료에는 안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기록''과 사형집행전 안중근 의사를 매우 중요한 인물로 다뤄 ''특별한 경계를 했던 상황''이 기록돼 있다.

    ''사형집행 명령기록''은 여순법원이 검찰관에 대해 안 의사의 사형집행을 명령한 것으로, 죄명, 형명, 판결언도 등이 명시돼 있다.

    또 당시 감옥 측에서 사건의 중대함을 감안해 안 의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고, 밤낮으로 경계를 강화한 상황도 나타나 있다.

    ◈ ''정황보고 및 잡보 제4권''..."감방 내외 엄중 경계 필요"

    ''정황보고 및 잡보 4권''의 주요 내용을 보면 "하얼빈에서의 살인사건으로 입감한 한국인 9명은 엄정 격리할 필요가 있어 모두 독거구금했다"며 "피고사건의 중대함으로 인해 계호자의 선정 및 사건의 성질상 감방 내외를 엄중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또 "감옥서 내에 임시법정을 설치했으므로 그들을 수용할 구치감의 사무 및 계호간수와 임시법정에 따라 붙일 계호자도 선정해 단속 처우의 적실 및 심문사항의 비밀을 확보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이들의 일거일동에 주의해 특히 야간에는 수시로 간수로 하여금 그 행동을 비밀 정탐케 하는 등 야간경계는 종래의 감독자 외 간수 6명을 배치하던 것을 8명으로 증가하여 만일의 위험을 방지하는 데 힘썼다"고 했다.



    1910년 1~3월의 정황을 담은 ''정황보고 및 잡보 5권''은 "살인 피고인 안중근 외 수명은 2월7일부터 14일까지 연일 법원에 출정하기 때문에 미리 위험을 우려해 압송마차를 설비함으로써 연도의 왕복을 경계했으며, 법정내에서 경호상의 단속도 실로 고심을 극하였다"고 썼다.

    특히 "사형 확정 후에는 더욱 경계를 엄히 할 필요가 있었으며, 야근간수를 증가시켜 감옥 안팎과 부속관사 부근 일원을 날이 샐 때까지 순찰경비를 시켰다"며 "야간에는 가능한 한 간수의 외출을 제한해 비상시에 대비하게 하고 특히 일반 간수를 독려해 주야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했다"고 기록했다.

    ◈ 안 의사 사형 명령 기록, 수감 증거품 목록도 발견

    안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기록 원본과 수감시 증거품 목록 자료로 발견됐다.

    사형집행 명령 기록은 일제가 1910년 2월14일 안 의사에 대한 사형을 선고한 지 열흘 만인 2월24일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명령 이틀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이 기록에는 안 의사의 주소를 ''한국 평안도 진남포''라고 적었고, 직업(무직)과 이름(안응칠-안의사의 아명), 나이(33세), 죄명(살인범),형명(사형),판결언도(1910년 2월14일) 등이 명시돼 있다.

    안 의사 수감시 증거품 목록자료에는 당시 러시아 측에서 발간했던 한자신문 ''원동보'' 한 부와 이토 암살을 암시한 ''동청철도 기차 발착시간표'' 등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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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 직후 안 의사의 동생들이 유해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한 내용이 담긴 ''두 동생의 유해 인도 요구에 대한 처리 경위 보고'' 원문도 발견됐다.

    특히 일본감옥협회가 1910년 1월20일 발행한 감옥협회잡지에 안 의사를 ''보통의 형사피고인이지만 국사범과 동격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동생 안정근이 안 의사의 사진을 넣어만든 5종의 엽서를 미국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에 보냈다는 기록과 안 의사의 사진 아래에 이토 히로부미의 사진을 붙여 만든 엽서가 발견됐다.

    이와 함께 발굴된 자료에는 3․1운동 이후 치열했던 독립운동 양상과 당시 일본 측에서 탐지한 독립운동가의 활동사항,첩보 등의 기밀정보도 담겨져 있다.

    특히 이 자료에 언급된 228인의 독립운동가 중 89인은 이번에 최초로 확인된 독립운동가들이라고 국가보훈처는 설명했다.

    국가보훈처는 경술국치 100주년이자 안 의사 순국 100주년인 올해 안 의사의 유해발굴을 위해 일본 측에 적극적이고 성의있는 협조를 요구할 방침이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이번에 발굴된 자료를 독립유공자 포상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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