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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의과대학 증원 규모를 줄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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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의과대학 증원 규모를 줄여야 합니다

    • 2024-04-05 11:40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주진형. 본인 제공강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주진형. 본인 제공
    저는 의료계에서 그리 많지 않은 의과대학 정원 증원론자입니다. 현재의 의료계 상황이 발생하기 얼마 전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고 기자와 통화하는 것을 듣고 있던 지인은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사는 처음 보았다고 의아해하기도 했습니다.

    지방에 살면서 의료 취약지역의 의사 부족 문제를 몸소 경험했고 지역 주민의 양질의 의료에 대한 갈증과 좌절을 듣고 보면서 깨달은 결론입니다. 몇 년 전부터 강원특별자치도에 위치한 의과대학의 지역인재 전형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교수이기도 합니다. 몇 년간 반향이 없었으나 이제는 먼저 앞서서 전형 비율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2020년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대한 계획이 발표되었던 시기에 평소 예의도 바르고 학업에 충실했던 제자가 증원에 반대해야 한다고 저를 설득하려 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넘기 어려운 벽과 마주한 느낌이었습니다. 이후로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제가 소속된 강원대학교 병원에서 교수를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병원에서 교수를 구하게 되면 교수를 보내고 싶다는 빅5 병원을 포함한 서울의 대학병원들도 꽤 있었는데 점차 자신들도 전문의가 부족해서 보내줄 인력이 없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본교의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얘기했던 학생들도 많았는데 점차 사라지고 본교의 교수가 되는 것을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는 급여가 높지도 않고 당직도 서야 하고 논문까지 써야 하는 그리 선택하고 싶지 않은 직업군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예 전공의 과정도 하지 않겠다는 학생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일부 과에서는 연봉 4억 이상을 넘게 주어도 전문의를 구할 수 없거나 교수라는 직함으로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없으니 교수를 그만두고 촉탁의사를 하겠다는 전문의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필수 의료, 중증 의료, 지역 의료를 책임져야 할 지역의 대학병원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교수들도 증원의 필요성은 부인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500명 정도의 증원은 큰 반대를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저는 그보다는 좀 더 증원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하나 1천명 이상은 실습을 포함한 교육 여건 등을 고려해 볼 때 매우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여건을 학생 수 대비 교수 수라는 간단한 수치만 가지고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과학과 근거를 가지고 얘기하자고 하면 못할 것은 없습니다. 늘 근거와 수치를 가지고 통계와 분석을 하고 논문을 쓰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일부 보고서와 주요한 보건의료 통계 수치들을 근거로 향후 10년, 20년 후에 필요한 의사 수 추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매우 정확하고 과학적인 예측치를 추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필요한 수요 대비 공급을 계산해야 하는데 공급은 의사 수 x 노동시간이 기본인데 의사의 숙련도, 의사의 진료 환경 등을 포함한 여러 변수도 영향을 줍니다.

    수요도,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의료 정책에 따라 필요한 정도에 차이가 클 수 있습니다. 보건의료 정책의 지휘자가 다양한 변수에 대해서 늘 예민하게 파악하고 상황에 맞추어 적재적소에 대한 관리와 방안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오차범위가 작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의 근간은 수학일 수 있는데 수학에서는 1+1=2이지만 사회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부 상황에서는 1+1이 3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각각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합보다 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증원 인력을 계산한 것이 과학적이라고 생각된다면 증원을 결정한 예측 모델의 계산식을 공개해야 합니다. 계산식, 영향을 주는 변수, 예측되는 부족한 의사 수의 최소치와 최대치 등을 공개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정부의 안을 공개하지 않고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오면 대화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상대방의 거부감만 키울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담화에 예를 들었던 속초의료원이나 영월의료원은 제가 수년 이상 지원하려고 노력했고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실패도 경험했던 지방의료원입니다. 속초의료원에 취업을 권유했던 정신건강의학과의 제자는 지금까지 10년 이상 속초의료원에서 열심히 진료하고 있으며 현재는 많은 방문 환자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영월의료원에는 소아청소년과, 정형외과, 소화기내과 등을 포함한 제자들을 보냈고 그와 함께 간호사도 파견을 보냈습니다. 담화문에 언급하셨던 정신건강의학과는 저도 알아보려고 노력했으나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지방의료원에 제자나 후배를 보내기 위해서는 근무환경과 정주 여건의 개선과 함께 정성과 진심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방재승 비상대책위원장이 내후년부터 500명-1천명 범위에서의 증원을 국외 전문기관에 맡겨 의견을 구해보자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는데 저는 일단 내년부터 500명-1천명 범위의 증원을 하고 내후년의 증원 범위는 필요한 전문위원회를 설치하여 합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의 증원 또는 감원의 범위는 3년 또는 5년마다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끄럽습니다. 20대 이후 한때는 상당 기간 때로는 간헐적으로나마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가 양극화의 심화, 자살률의 증가, 사회갈등 지수 악화라는 곤혹스러운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이제는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나이가 꽤 들어버린 교수로서 자책과 후회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강의실과 병실을 떠나간 학생과 전공의 제자들에게 이러한 사태를 미리 해결해 주지 못하고 부담과 갈등을 온전히 떠안게 만든 책임에 대해서 반성합니다. 지역 주민과 국민 여러분께도 송구합니다. 더 늦지 않게 대통령님의 결단도 미련할지라도 기대해 봅니다. 국민과 의사 모두가 함께하는 행복한 공동체를 그래도 꿈꿔보려고 합니다.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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