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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고려거란전쟁 '야율융서' 김혁 "나는 아직 무명배우"



문화 일반

    [인터뷰]고려거란전쟁 '야율융서' 김혁 "나는 아직 무명배우"

    13.8% 시청률로 끝난 KBS '고려거란전쟁'
    거란 황제 '야율융서' 오디션 없이 캐스팅
    8년 공백기에도 과거 경력 믿어준 제작진
    벡터맨, 야인시대 거쳤지만 찾아온 공백기
    코로나 사태로 연극 무대 통한 복귀도 무산
    세상 등질 생각 했지만 "죽는 게 더 힘들어"
    공사현장에서 일 시작해 지금은 카페 운영
    시청자 사랑에 감사, 좋은 연기로 보답할 것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배우 김혁

    ◇ 채선아> 얼마 전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인기리에 종영했죠. 이 드라마에서 거란의 황제 야율융서역으로 이목을 끈 배우 김혁 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혁> 안녕하세요.

    ◇ 채선아> <고려 거란 전쟁>이 32부작이잖아요. 요즘 드라마는 10부작도 많고 더 짧게도 하는데 정말 대하 드라마였단 말이에요. 촬영 기간도 한 1년 정도였다고 하는데 촬영이 끝난 소감을 한번 여쭤보고 싶었어요.

    ◆ 김혁> 정말 행복했어요. 제가 오랜만에 방송을 시작한 프로그램이 됐고 운도 많이 따랐고요. 모든 배우들, 스태프들이 고생하면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가족처럼 지냈고 힘든 일 다 같이 가족처럼 해내니까 너무 뿌듯했고요. 지금도 '대본이 나오면 또 촬영 현장에 가야 되지 않나' 아직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아요.


    ◇ 채선아> 1년 동안 했으니까 일상도 좀 바뀌셨을까요?

    ◆ 김혁> 큰 차이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와이프와 함께 작은 카페를 운영을 하거든요. 촬영 없을 때는 커피를 직접 로스팅도 하고 장사를 하다 보니까 쉬지 않고 달려왔던 것 같아요.

    ◇ 채선아> 카페 일을 하면서 연기도 하시고, 연기가 끝나니 카페 일에 집중을 하고 계신 타이밍이군요. 바쁘게 촬영하신 만큼 보람이 있었던 게 드라마 마지막 회가 13.8%의 최고 시청률 기록하면서 종영을 했습니다. 제 기억 속에도 굉장히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회 패장인 소배압을 대하는 거란 황제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 김혁> 드라마를 거의 1년을 달려오면서 마지막 회를 찍는데 그날이 저의 마지막 촬영분이었어요. 물론 다른 배우들은 촬영이 아직 남아 있었고 거기가 제 분량의 마지막 분량이었는데 그때 너무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우리 소배압, 김준배 형님과 정말 이별을 하는구나. 패장으로 돌아온 이 소배압이 야율융서에겐 전장의 스승이었고 인생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비록 패장이었지만 슬픔을 누르고 베지 못하죠.

    그리고 나가면서 패장 소배압의 눈물을 듣는데 제가 밖에서 나가는 우측 모퉁이에 숨어서 그 눈물을 들은 거예요. 그런데 저도 울고 말았어요. 드라마에 몰입돼서 울었지만 또 하나는 이 형과 마지막 케미가 이제 끝이구나. 그 생각에 정말 많이 눈물을 흘렸던 것 같아요.


    ◇ 채선아> 두 분의 케미가 정말 남달랐거든요.

    ◆ 김혁> 감사합니다. 작가님들, 감독님이 연출을 잘해 주셨는데요. 제가 느끼기에는 그게 야율융서와 소배압의 케미가 아닌 사랑 아니었을까. 그런 감정을 좀 갖게 됐습니다.

    ◇ 채선아> 배우로서의 마음도 들어가 있고 또 황제의 마음도 들어가 있는 장면이었고요. 또 기억나시는 게 있을까요?

    ◆ 김혁> 저희가 아주 더울 때 촬영을 시작했어요. 작년 5월에 촬영을 들어가다 보니까 전쟁 장면을 찍는데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날씨의 고통스러움을 다 이기고 촬영했는데요. 특히 기억에 남는 게 고려의 강조를 죽이는 장면이 있었어요. 거란 황제가 수하로 삼으려고 회유를 하는데도 야만인이라면서 마음의 상처를 주다가 크게 당하는 장면인데, 그 장면을 원 테이크로 찍었어요.

    모든 촬영을 다 끝내놓고 제가 강조를 처단하는 신을 맨 마지막에 찍었는데 그때 옷이 한 벌밖에 없었고 NG가 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스태프들하고 합을 맞추고 감정을 표현해야 되는데 원 테이크로 간 것이 방송에 나오고 너무 잔인하게 잘 표현이 됐어요. 그 장면을 많이 기억들 해주시고 저도 기억에 많이 남았던 것 같아요.


    ◇ 채선아> NG가 나면 어떻게 되는 상황이었나요?

    ◆ 김혁> 다시 찍어야죠. 밤 12시쯤이었는데 스태프와 배우들이 한 100명 정도 되거든요. 물론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죠. NG가 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책임감을 좀 더 갖게 됐죠. '이거는 틀리면 안 된다' 생각했는데 시작하자마자 눈에 물감이 딱 들어갔어요. 다시 그 장면을 보시면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눈을 안 감을 거예요. 감정에 좀 몰입을 해서 그 안에는 '다시 찍으면 안 돼.'

    ◇ 채선아> 이 100명이 다 힘들어진다? 부담스러우시겠네요.

    ◆ 김혁> TV 방송으로 볼 때 좀 뿌듯했죠. 잘했다. (웃음)

    ◇ 채선아> 장면 2가지를 꼽아주셨는데요. 여름에 촬영하셨다고 했잖아요. 털 모자 계속 쓰는 거 괜찮으셨냐, 무겁지 않으셨냐, 이런 질문도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요.

    ◆ 김혁> 모든 갑옷과 모자들이 피부 호흡이 안 돼요. 그러니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또 추워요. 따뜻하지 않아요. 안이 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저희가 캐릭터를 만들고 멋진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더위나 추위 따위는 생각 안 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 그게 잘 어울렸는지 저보고 그 모자를 어디서 사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 채선아> 꼭 여쭤보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거란 황제와 장군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때는 우리 말을 사용해요.. 그러다가 대답을 하거나 "네 알겠습니다." 이런 거는 거란 말을 사용한단 말이에요. 그게 원래부터 섞어 쓰기로 되어 있었던 건가요?

    ◆ 김혁> 원래 제가 이 드라마에 캐스팅이 됐을 때는 거란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드라마에서 하기로 하고 캐스팅됐어요. 8회까지 대본이 나오고 그 거란어를 감정까지 집어넣으면서 외우고 있었는데요. 거란이 멸망을 하면서 거란어가 사어, 죽은 말이 됐대요. 현존하는 몽골어가 15% 정도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100% 고증이 안 된다고 해서 전쟁에서는 몽고 말을 많이 썼고 나머지는 우리 말로 연결했습니다.

    ◇ 채선아> 그게 좀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 김혁> 우리 말로 하니까 어떻게 보면 더 쉬울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억양하고 이런 것들이 조금 혼란스러웠어요. 다행히 우리 거란 용사들끼리 뭉쳐서 잘 해내왔습니다.


    ◇ 채선아> 거란 말로 감정도 다 준비했는데 바꾸기가 어려웠군요. 이 야율융서 캐릭터가 김혁 배우에게는 '인생 캐릭터'란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전에도 인생 캐릭터가 있었을까요?

    ◆ 김혁> 어떤 작품이든 배우가 역할에 들어갔을 때는 내가 아닌  인물을 소화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닉네임을 가지고 오래가는 것 같거든요. 제 이름이 김혁 본명인데 이 두 글자 김혁을 세상에 알리기에는 아직까지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현재도 무명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캐릭터를 많이 기억해 주시고 어떤 작품이든 다 인생작이 될 수 있는데 제가 8년의 공백기를 거쳐서 이 작품을 하다 보니 정말 올인을 했고 제 인생작이 되지 않았나.


    ◇ 채선아> 김혁 배우의 이름과 야율융서를 같이 기억해야 되겠어요. 예전에 '지구용사 벡터맨'이라는 드라마의 벡터맨 베어로 활동을 하셨는데 제가 바로 벡터맨 키즈거든요.

    ◆ 김혁> 1998년도였죠. 우리나라 특수촬영물에 한 획을 그었던 <지구용사 벡터맨>에 제가 또 베어 캐릭터로 연기를 했어요. 그때 당시에 몇 백 대 1 캐릭터를 뚫고 배역을 맡았는데, 그 벡터맨을 보셨던 분들이 이제는 애 아빠도 되고 다 성인이 되셨어요. 제가 야율융서로 나왔을 때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봤는데' 이랬는데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이 되고 하다 보니까 유튜브나 온라인상에서 '야율 베어'라고 나오고, 그당시 팬들이 더 기억을 많이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죠.

    ◇ 채선아> 야율융서를 보고 벡터맨 베어가 같은 사람으로 소환된다는 게 굉장히 놀랍거든요. 그 외에도 야인시대도 출연을 하셨어요.

    ◆ 김혁> 야인시대도 청년 이정재로 눈에 광선 나가는 역할을 했었죠.

    ◇ 채선아> 그리고 제5공화국. 여러 작품을 촬영을 하고 참여를 하시다가 갑자기 또 자취를 감추셨거든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 김혁> 배우도 하나의 직업이잖아요. 저희한테는 일이 끊임없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거예요. 그런데 잠깐 공백기가 찾아오고, 제 연기가 부족한 부분도 물론 있었겠죠. 모든 방송 시스템이 한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외주화가 돼요. 방송국에서 제작을 많이 안 하고 외주에서 제작해서 납품하는 형식이 되다 보니까, (공백기가) 1년이 2년 되고, 2년이 3년 되고. 기계에 비유하면, 그 기계가 멈춰 있던 거죠. 그 1년의 시간이 8년이 돼버렸어요.

    ◇ 채선아> 8년 동안 쉬셨군요. 8년 쉬시는 기간에 생활을 해야 되잖아요. 그 생활을 버티시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 김혁> 많이 내려놨어요. 우울증도 왔었고 공황장애뿐만 아니고 배우들이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있어요. 저도 거기까지 갈 뻔했어요. 화려한 삶과 꿈을 가지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초라한 모습이 되면 이겨내야 되잖아요. 저도 이기기 엄청 힘들었는데 버텼어요. 그때 느꼈던 게 뭐냐 하면 죽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 채선아> 오히려

    ◆ 김혁> 네. '살아야겠다' 그래서 모든 걸 내려놓고 제가 고아원 봉사할 때 정말 친한 형님이 있어요. 그 형님이 건설 인테리어를 하시는데 밑바닥 인생부터 다시 공사 현장부터 해서 지금까지 올라왔던 하나의 기틀이 되지 않았나.

    ◇ 채선아> 고생 많으셨네요.

    ◆ 김혁> 아니에요.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습니다.

    ◇ 채선아> 그 간극을 극복해야 되는 것 같아요. 카메라 앞에서 섰을 때의 그 화려함과 카메라가 없어졌을 때 스스로 느끼는 그런 초라함이 클 수밖에 없잖아요.

    ◆ 김혁> 이 꿈을 가지고 간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데 현실과 꿈은 항상 똑같지 않아요

    ◇ 채선아> 그 와중에도 오디션을 본다든지 계속 연기를 시도를 해보신 건가요?

    ◆ 김혁> 제가 방송을 떠나 있고 모든 작품 활동을 안 하고 내려놓고 있을 때 먹고 살아야 되니까 모든 일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 무대에 설 수 있는 희곡을 하나 받게 됐어요. 지인이 "이 무대로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있는데 한번 해볼래?" 너무 행복했죠. 그래서 희곡 받아가지고 준비해야 하는데 코로나가 왔어요.

    ◇ 채선아> 설마 취소됐나요?

    ◆ 김혁> 제일 먼저 공연장이 폐쇄가 됐잖아요. 그때 내려놓으면서 그 힘든 시기에 결혼도 하고요. 코로나가 왔지만 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아요.

    ◇ 채선아> '연기랑은 내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멀어졌을 수도 있는데 <고려 거란 전쟁>으로 아주 화려하게 복귀하셨단 말이에요. 그건 또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 김혁> 행운이죠. 미팅 한 번 하지 않고 저 김혁이라는 배우를 이정우 작가와 전우성 감독님, 김한솔 연출, 세 분이서 저를 믿고 캐스팅을 해주신 거예요. 제가 야율융서 왕 이전에 <꽃들의 전쟁>이라는 드라마(2013년작)에서 예친왕 도르곤 역을 만주어로 50회를 소화했거든요. 꽤 오래 전인데도 제작진분들께서 '저 배우라면 거란말을 하는 야율융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미팅도 안 하고 됐을 때 유언비어도 많았어요. '낙하산이다. 돈 내고 됐다.' 심지어 농담 반으로 우리 CP께서 "너 돈 내고 들어왔는 줄 알았어" 그러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 채선아> 처음에 촬영을 들어가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기분이 어떠셨나요?

    ◆ 김혁> 안 믿겼죠.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예전에 같이 일했던 매니저가 "형님 이번에 프로필이 들어가는데 잘될 수도 있어요." 그랬는데 제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려놨다. 너 같으면 8년을 쉬었는데 누가 쓰겠니? 자동차로 따지면 서있는 차야." 기대가 크면 실망도 더 클 것 같아서 기대를 안 했는데 이런 상황이 생겨서 너무너무 행복했죠. 지금도 자꾸 짠해요.

    ◇ 채선아>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네요. 그렇게 시작을 하게 됐는데 이번에는 정말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거나 다름이 없잖아요.

    ◆ 김혁> 글쎄요. 전성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일부러 겸손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이 작품 하나로 인해서 제 모든 걸 하고 싶었던 욕망을 다 풀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래서 좀 한 템포 좀 쉬어가려고 해요. 일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 지금 이거 하나 끝냈는데 내가 또 어떤 일을 가지고 하네 마네 실랑이 하기 쉽지도 않고요. 그리고 제일 컸던 게 저와 같이 카페 운영하면서 대사를 맞춰준 우리 와이프하고 여행 한 번을 못 갔어요.

    ◇ 채선아> 너무 바쁘셔서.

    ◆ 김혁> 너무 미안해서 와이프랑 제주도라든가, 잠깐 며칠이라도 좀 다녀오고 싶은 욕심 때문에 일단은 며칠이라도 조금 내려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 채선아> 지금 방송으로 질문이 계속 들어오는데 **님이 "야율융서라는 캐릭터가 고려와의 전쟁에서는 졌지만 실제로는 성군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캐릭터로 표현하려고 했는지 노력하셨는지 궁금하다"는 질문 보내주셨어요.

    ◆ 김혁> 처음에 대본을 받고 캐릭터를 받았을 때는 정말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은 기본이었는데요. 원래 사극을 하다 보면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돼요. 이 인물을 한번 찾아보니까 저희 고려 입장에서는 적장이었지만 거란 입장에서는 고려가 적인데 거란의 최고 부흥기를 만들었던 왕이었어요. 어머니 소태후와 함께 거란의 영토 확장부터 정치를 함에 있어서 노예 제도를 폐지하고 비리 관료들 다 문책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서 나라에서 정말 인정받았던 왕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으로 따지면 빌런이었지만 거란 안에서는 정말 최고의 성군이라는 표현을 들은 위대한 왕이었기 때문에 저도 빌런으로 생각하고 연기하지 않았어요.


    ◇ 채선아> 정말 성군처럼 거란의 황제, 그리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황제 느낌으로 계속 연기를 하셨나 보네요.

    ◆ 김혁> 고려에서 최수종 배우가 연기한 우리 강감찬 장군이 그랬잖아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저도 속으로 항상 그랬죠.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 반드시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이 욕심으로 저도 연기에 임했던 것 같아요.

    ◇ 채선아> 네. 그런 마음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가닿은 것 같습니다. 오늘 인터뷰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김혁> 드라마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요. 저도 야율융서가 아닌 배우 김혁으로 또 멋진 연기자로 시청자분들께 좋은 연기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이제 연기 시간이 정지하지 않고 꾸준히 갈 수 있도록 좋은 연기로 보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채선아> 저희도 배우 김혁이란 두 글자를 또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있도록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김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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