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배우 김혁
◇ 채선아> 얼마 전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인기리에 종영했죠. 이 드라마에서 거란의 황제 야율융서역으로 이목을 끈 배우 김혁 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혁> 안녕하세요.
◇ 채선아> <고려 거란 전쟁>이 32부작이잖아요. 요즘 드라마는 10부작도 많고 더 짧게도 하는데 정말 대하 드라마였단 말이에요. 촬영 기간도 한 1년 정도였다고 하는데 촬영이 끝난 소감을 한번 여쭤보고 싶었어요.
◆ 김혁> 정말 행복했어요. 제가 오랜만에 방송을 시작한 프로그램이 됐고 운도 많이 따랐고요. 모든 배우들, 스태프들이 고생하면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가족처럼 지냈고 힘든 일 다 같이 가족처럼 해내니까 너무 뿌듯했고요. 지금도 '대본이 나오면 또 촬영 현장에 가야 되지 않나' 아직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아요.
◇ 채선아> 1년 동안 했으니까 일상도 좀 바뀌셨을까요?
◆ 김혁> 큰 차이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와이프와 함께 작은 카페를 운영을 하거든요. 촬영 없을 때는 커피를 직접 로스팅도 하고 장사를 하다 보니까 쉬지 않고 달려왔던 것 같아요.
◇ 채선아> 카페 일을 하면서 연기도 하시고, 연기가 끝나니 카페 일에 집중을 하고 계신 타이밍이군요. 바쁘게 촬영하신 만큼 보람이 있었던 게 드라마 마지막 회가 13.8%의 최고 시청률 기록하면서 종영을 했습니다. 제 기억 속에도 굉장히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회 패장인 소배압을 대하는 거란 황제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 김혁> 드라마를 거의 1년을 달려오면서 마지막 회를 찍는데 그날이 저의 마지막 촬영분이었어요. 물론 다른 배우들은 촬영이 아직 남아 있었고 거기가 제 분량의 마지막 분량이었는데 그때 너무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우리 소배압, 김준배 형님과 정말 이별을 하는구나. 패장으로 돌아온 이 소배압이 야율융서에겐 전장의 스승이었고 인생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비록 패장이었지만 슬픔을 누르고 베지 못하죠.
그리고 나가면서 패장 소배압의 눈물을 듣는데 제가 밖에서 나가는 우측 모퉁이에 숨어서 그 눈물을 들은 거예요. 그런데 저도 울고 말았어요. 드라마에 몰입돼서 울었지만 또 하나는 이 형과 마지막 케미가 이제 끝이구나. 그 생각에 정말 많이 눈물을 흘렸던 것 같아요.
◇ 채선아> 두 분의 케미가 정말 남달랐거든요.
◆ 김혁> 감사합니다. 작가님들, 감독님이 연출을 잘해 주셨는데요. 제가 느끼기에는 그게 야율융서와 소배압의 케미가 아닌 사랑 아니었을까. 그런 감정을 좀 갖게 됐습니다.
◇ 채선아> 배우로서의 마음도 들어가 있고 또 황제의 마음도 들어가 있는 장면이었고요. 또 기억나시는 게 있을까요?
◆ 김혁> 저희가 아주 더울 때 촬영을 시작했어요. 작년 5월에 촬영을 들어가다 보니까 전쟁 장면을 찍는데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날씨의 고통스러움을 다 이기고 촬영했는데요. 특히 기억에 남는 게 고려의 강조를 죽이는 장면이 있었어요. 거란 황제가 수하로 삼으려고 회유를 하는데도 야만인이라면서 마음의 상처를 주다가 크게 당하는 장면인데, 그 장면을 원 테이크로 찍었어요.
모든 촬영을 다 끝내놓고 제가 강조를 처단하는 신을 맨 마지막에 찍었는데 그때 옷이 한 벌밖에 없었고 NG가 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스태프들하고 합을 맞추고 감정을 표현해야 되는데 원 테이크로 간 것이 방송에 나오고 너무 잔인하게 잘 표현이 됐어요. 그 장면을 많이 기억들 해주시고 저도 기억에 많이 남았던 것 같아요.
◇ 채선아> NG가 나면 어떻게 되는 상황이었나요?
◆ 김혁> 다시 찍어야죠. 밤 12시쯤이었는데 스태프와 배우들이 한 100명 정도 되거든요. 물론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죠. NG가 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책임감을 좀 더 갖게 됐죠. '이거는 틀리면 안 된다' 생각했는데 시작하자마자 눈에 물감이 딱 들어갔어요. 다시 그 장면을 보시면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눈을 안 감을 거예요. 감정에 좀 몰입을 해서 그 안에는 '다시 찍으면 안 돼.'
◇ 채선아> 이 100명이 다 힘들어진다? 부담스러우시겠네요.
◆ 김혁> TV 방송으로 볼 때 좀 뿌듯했죠. 잘했다. (웃음)
◇ 채선아> 장면 2가지를 꼽아주셨는데요. 여름에 촬영하셨다고 했잖아요. 털 모자 계속 쓰는 거 괜찮으셨냐, 무겁지 않으셨냐, 이런 질문도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요.
◆ 김혁> 모든 갑옷과 모자들이 피부 호흡이 안 돼요. 그러니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또 추워요. 따뜻하지 않아요. 안이 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저희가 캐릭터를 만들고 멋진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더위나 추위 따위는 생각 안 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 그게 잘 어울렸는지 저보고 그 모자를 어디서 사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 채선아> 꼭 여쭤보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거란 황제와 장군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때는 우리 말을 사용해요.. 그러다가 대답을 하거나 "네 알겠습니다." 이런 거는 거란 말을 사용한단 말이에요. 그게 원래부터 섞어 쓰기로 되어 있었던 건가요?
◆ 김혁> 원래 제가 이 드라마에 캐스팅이 됐을 때는 거란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드라마에서 하기로 하고 캐스팅됐어요. 8회까지 대본이 나오고 그 거란어를 감정까지 집어넣으면서 외우고 있었는데요. 거란이 멸망을 하면서 거란어가 사어, 죽은 말이 됐대요. 현존하는 몽골어가 15% 정도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100% 고증이 안 된다고 해서 전쟁에서는 몽고 말을 많이 썼고 나머지는 우리 말로 연결했습니다.
◇ 채선아> 그게 좀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 김혁> 우리 말로 하니까 어떻게 보면 더 쉬울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억양하고 이런 것들이 조금 혼란스러웠어요. 다행히 우리 거란 용사들끼리 뭉쳐서 잘 해내왔습니다.
◇ 채선아> 거란 말로 감정도 다 준비했는데 바꾸기가 어려웠군요. 이 야율융서 캐릭터가 김혁 배우에게는 '인생 캐릭터'란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전에도 인생 캐릭터가 있었을까요?
◆ 김혁> 어떤 작품이든 배우가 역할에 들어갔을 때는 내가 아닌 인물을 소화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닉네임을 가지고 오래가는 것 같거든요. 제 이름이 김혁 본명인데 이 두 글자 김혁을 세상에 알리기에는 아직까지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현재도 무명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캐릭터를 많이 기억해 주시고 어떤 작품이든 다 인생작이 될 수 있는데 제가 8년의 공백기를 거쳐서 이 작품을 하다 보니 정말 올인을 했고 제 인생작이 되지 않았나.
◇ 채선아> 김혁 배우의 이름과 야율융서를 같이 기억해야 되겠어요. 예전에 '지구용사 벡터맨'이라는 드라마의 벡터맨 베어로 활동을 하셨는데 제가 바로 벡터맨 키즈거든요.
◆ 김혁> 1998년도였죠. 우리나라 특수촬영물에 한 획을 그었던 <지구용사 벡터맨>에 제가 또 베어 캐릭터로 연기를 했어요. 그때 당시에 몇 백 대 1 캐릭터를 뚫고 배역을 맡았는데, 그 벡터맨을 보셨던 분들이 이제는 애 아빠도 되고 다 성인이 되셨어요. 제가 야율융서로 나왔을 때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봤는데' 이랬는데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이 되고 하다 보니까 유튜브나 온라인상에서 '야율 베어'라고 나오고, 그당시 팬들이 더 기억을 많이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죠.
◇ 채선아> 야율융서를 보고 벡터맨 베어가 같은 사람으로 소환된다는 게 굉장히 놀랍거든요. 그 외에도 야인시대도 출연을 하셨어요.
◆ 김혁> 야인시대도 청년 이정재로 눈에 광선 나가는 역할을 했었죠.
◇ 채선아> 그리고 제5공화국. 여러 작품을 촬영을 하고 참여를 하시다가 갑자기 또 자취를 감추셨거든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 김혁> 배우도 하나의 직업이잖아요. 저희한테는 일이 끊임없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거예요. 그런데 잠깐 공백기가 찾아오고, 제 연기가 부족한 부분도 물론 있었겠죠. 모든 방송 시스템이 한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외주화가 돼요. 방송국에서 제작을 많이 안 하고 외주에서 제작해서 납품하는 형식이 되다 보니까, (공백기가) 1년이 2년 되고, 2년이 3년 되고. 기계에 비유하면, 그 기계가 멈춰 있던 거죠. 그 1년의 시간이 8년이 돼버렸어요.
◇ 채선아> 8년 동안 쉬셨군요. 8년 쉬시는 기간에 생활을 해야 되잖아요. 그 생활을 버티시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 김혁> 많이 내려놨어요. 우울증도 왔었고 공황장애뿐만 아니고 배우들이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있어요. 저도 거기까지 갈 뻔했어요. 화려한 삶과 꿈을 가지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초라한 모습이 되면 이겨내야 되잖아요. 저도 이기기 엄청 힘들었는데 버텼어요. 그때 느꼈던 게 뭐냐 하면 죽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 채선아> 오히려
◆ 김혁> 네. '살아야겠다' 그래서 모든 걸 내려놓고 제가 고아원 봉사할 때 정말 친한 형님이 있어요. 그 형님이 건설 인테리어를 하시는데 밑바닥 인생부터 다시 공사 현장부터 해서 지금까지 올라왔던 하나의 기틀이 되지 않았나.
◇ 채선아> 고생 많으셨네요.
◆ 김혁> 아니에요.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습니다.
◇ 채선아> 그 간극을 극복해야 되는 것 같아요. 카메라 앞에서 섰을 때의 그 화려함과 카메라가 없어졌을 때 스스로 느끼는 그런 초라함이 클 수밖에 없잖아요.
◆ 김혁> 이 꿈을 가지고 간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데 현실과 꿈은 항상 똑같지 않아요
◇ 채선아> 그 와중에도 오디션을 본다든지 계속 연기를 시도를 해보신 건가요?
◆ 김혁> 제가 방송을 떠나 있고 모든 작품 활동을 안 하고 내려놓고 있을 때 먹고 살아야 되니까 모든 일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 무대에 설 수 있는 희곡을 하나 받게 됐어요. 지인이 "이 무대로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있는데 한번 해볼래?" 너무 행복했죠. 그래서 희곡 받아가지고 준비해야 하는데 코로나가 왔어요.
◇ 채선아> 설마 취소됐나요?
◆ 김혁> 제일 먼저 공연장이 폐쇄가 됐잖아요. 그때 내려놓으면서 그 힘든 시기에 결혼도 하고요. 코로나가 왔지만 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아요.
◇ 채선아> '연기랑은 내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멀어졌을 수도 있는데 <고려 거란 전쟁>으로 아주 화려하게 복귀하셨단 말이에요. 그건 또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 김혁> 행운이죠. 미팅 한 번 하지 않고 저 김혁이라는 배우를 이정우 작가와 전우성 감독님, 김한솔 연출, 세 분이서 저를 믿고 캐스팅을 해주신 거예요. 제가 야율융서 왕 이전에 <꽃들의 전쟁>이라는 드라마(2013년작)에서 예친왕 도르곤 역을 만주어로 50회를 소화했거든요. 꽤 오래 전인데도 제작진분들께서 '저 배우라면 거란말을 하는 야율융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미팅도 안 하고 됐을 때 유언비어도 많았어요. '낙하산이다. 돈 내고 됐다.' 심지어 농담 반으로 우리 CP께서 "너 돈 내고 들어왔는 줄 알았어" 그러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 채선아> 처음에 촬영을 들어가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기분이 어떠셨나요?
◆ 김혁> 안 믿겼죠.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예전에 같이 일했던 매니저가 "형님 이번에 프로필이 들어가는데 잘될 수도 있어요." 그랬는데 제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려놨다. 너 같으면 8년을 쉬었는데 누가 쓰겠니? 자동차로 따지면 서있는 차야." 기대가 크면 실망도 더 클 것 같아서 기대를 안 했는데 이런 상황이 생겨서 너무너무 행복했죠. 지금도 자꾸 짠해요.
◇ 채선아>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네요. 그렇게 시작을 하게 됐는데 이번에는 정말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거나 다름이 없잖아요.
◆ 김혁> 글쎄요. 전성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일부러 겸손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이 작품 하나로 인해서 제 모든 걸 하고 싶었던 욕망을 다 풀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래서 좀 한 템포 좀 쉬어가려고 해요. 일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 지금 이거 하나 끝냈는데 내가 또 어떤 일을 가지고 하네 마네 실랑이 하기 쉽지도 않고요. 그리고 제일 컸던 게 저와 같이 카페 운영하면서 대사를 맞춰준 우리 와이프하고 여행 한 번을 못 갔어요.
◇ 채선아> 너무 바쁘셔서.
◆ 김혁> 너무 미안해서 와이프랑 제주도라든가, 잠깐 며칠이라도 좀 다녀오고 싶은 욕심 때문에 일단은 며칠이라도 조금 내려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 채선아> 지금 방송으로 질문이 계속 들어오는데 **님이 "야율융서라는 캐릭터가 고려와의 전쟁에서는 졌지만 실제로는 성군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캐릭터로 표현하려고 했는지 노력하셨는지 궁금하다"는 질문 보내주셨어요.
◆ 김혁> 처음에 대본을 받고 캐릭터를 받았을 때는 정말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은 기본이었는데요. 원래 사극을 하다 보면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돼요. 이 인물을 한번 찾아보니까 저희 고려 입장에서는 적장이었지만 거란 입장에서는 고려가 적인데 거란의 최고 부흥기를 만들었던 왕이었어요. 어머니 소태후와 함께 거란의 영토 확장부터 정치를 함에 있어서 노예 제도를 폐지하고 비리 관료들 다 문책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서 나라에서 정말 인정받았던 왕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으로 따지면 빌런이었지만 거란 안에서는 정말 최고의 성군이라는 표현을 들은 위대한 왕이었기 때문에 저도 빌런으로 생각하고 연기하지 않았어요.
◇ 채선아> 정말 성군처럼 거란의 황제, 그리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황제 느낌으로 계속 연기를 하셨나 보네요.
◆ 김혁> 고려에서 최수종 배우가 연기한 우리 강감찬 장군이 그랬잖아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저도 속으로 항상 그랬죠.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 반드시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이 욕심으로 저도 연기에 임했던 것 같아요.
◇ 채선아> 네. 그런 마음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가닿은 것 같습니다. 오늘 인터뷰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김혁> 드라마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요. 저도 야율융서가 아닌 배우 김혁으로 또 멋진 연기자로 시청자분들께 좋은 연기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이제 연기 시간이 정지하지 않고 꾸준히 갈 수 있도록 좋은 연기로 보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채선아> 저희도 배우 김혁이란 두 글자를 또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있도록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김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