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총괄선대위원장이 21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지역 후보들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힘 4‧10 총선 공천을 두고 '보수의 성지' 대구 시민들이 엇갈린 채점표를 내놨다. 박근혜 전 대통령 측 인사로 불리는 도태우 변호사가 '5‧18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으로 대구 공천이 취소된 데 이어, 이종섭 주호주대사와 대통령실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논란, 비례대표 명단 문제로 이른바 '윤-한 갈등'이 불거진 데 대해 지지자들의 반응이 갈린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1일 대구를 찾았을 때 그를 둘러싼 시민들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은 이같은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한 위원장은 이날 윤재옥 원내대표(대구 달서을)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방문한 뒤 곧장 서문시장과 동성로로 향했다. 다양한 연령층의 대구 시민들을 만날 만한 상징적인 장소들이다.
한 위원장을 바라보던 다수의 대구 시민은 우선 그의 행보에 긍정적인 점수를 줬다. △도태우 변호사 공천 취소 △해병대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이종섭 대사의 귀국 △'언론인 회칼 테러' 언급 논란을 일으킨 황상무 전 수석의 사퇴 등에 대한 한 위원장의 입장에 동조한 것이다. 비례대표 명단을 둘러싼 한 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 측의 갈등 기류에 대해서도 한 위원장의 손을 들어주는 의견이 나왔다.
서문시장 상인 정모(68)씨는 "도 변호사 공천 건이나 이 대사, 황 수석 문제 모두 한 위원장이 너무 잘 결정한 거라고 본다"며 "지금은 이렇게 조용해야 국민의힘이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총선도 있는데 지금은 윤 대통령이 다소 뜻을 접더라도 한 위원장에게 맞추는 게 맞다"라며 "한 위원장이 힘을 받아야 나중에 대통령도 빛을 받는다. 서로 겨루려고 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시장에서 한 위원장의 등장을 지켜보던 시민 김모(71)씨는 한 위원장에 대한 평가를 묻는 말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서 "선거도 며칠 안 남았는데 빨리 마무리하는 게 국민 보기에도 좋다"는 한편,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갈등에 대해서도 "한 위원장은 전체를 보는 사람이고, 정도(正度)를 가는 사람"이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동성로에서 만난 김지율(24)씨는 "(총선 관련 결정 과정에서) 총대를 메는 건 한 사람이어야 하고, 그건 당 대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총대를 멘다면 오히려 그만큼 리스크가 커지지 않겠나"라며 한 위원장에게 힘을 실었다.
하지만 싸늘한 반대 기류도 이에 못지않았다. 보수 지지층 입장에서 공천 과정과 결과를 비롯한 한 위원장의 행보에 '서운함'을 표한 것이다.
서문시장 상인 최창순(55)씨는 "50대 보수로서 도 변호사 공천 취소 등은 너무 과한 대응이었다고 본다. 어쩔 수 없이 지지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서운한 일"이라며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의견을 잘 들어가면서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윗사람 입장에선 아랫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면 '자기 정치'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성로의 시민 전모(46)씨는 "민주당 공천은 국민의힘보다 더 심각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크게 잘못된 게 없다고 생각하던데, 우리는 왜 그렇게(공천 취소 등) 해야 하나"라며 "이 대사 건도 부당하다고 본다. 한 위원장이 공정하고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보수 지지층으로서 최근엔 아쉬운 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21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총괄선대위원장의 방문을 앞두고 '국민의힘 빼는 국민의짐 대구시민 분노한다'라는 손팻말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일부에선 더 과격한 반응도 나왔다. 이날 한 위원장의 방문에 몰려든 인파 속에선 '집토끼도 뛸 줄 안다' '대구시민 분노한다' '대구시민은 던져 주면 꼬리 흔드는 개가 아니다' 등의 현수막이나 피켓을 든 사람들의 반발도 있었다. 이들 곁에서 "5‧18은 폭동인데 한동훈이 민주화혁명으로 치켜세우고 있다"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같은 대열을 바라보던 대구 시민 최모(63)씨는 "당을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을 비례대표로 챙겨줘야지, 그걸 딱 잘라버리면 앞으로 누가 당을 위해 힘을 쓰겠나"라며 "(도 변호사 관련) 옛날에 문재인(전 대통령)에 대해 말 좀 몇 마디 했다고 공천을 하루아침에 번복하는 게 말이 되나"라고 날을 세웠다.
대구 민심이 이처럼 엇갈린 가운데, 한 위원장의 현안 대응 방식 자체에 비판적인 젊은층의 의견도 있었다. 한 위원장의 방문 시점에 동성로에 있던 석민상(25)씨는 "사람으로서 한 정치인을 보고 싶은데, 국민을 대상으로 자꾸 말장난식의 말씀을 하신다. 기자들의 질문에 되묻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며 "이 대사 사건은 누가 봐도 '도피성'이 맞는데, 그런 식으로 정당성을 강조하는 건 청년 입장에선 기만적으로 들린다"라고 말했다.
오정영(24)씨 역시 "한 위원장이 의제를 전개하는 방식이 폭력적으로 보인다"라며 "대통령과의 알력 다툼을 국민에게 드러내 보이는 점도 문제다. 국민으로서 보기 부끄럽기까지 하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