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서울 산업은행 본점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신청 관련 채권단 설명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고금리 기조와 건설경기 부진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전반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이 핵심 자회사 지분 매각이나 대주주 사재 출연 등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비판을 자초했다.
오느 11일로 예정된 1차 채권단협의회에서 워크아웃 개시 여부가 결정되지만 태영건설이 현재까지 보여준 행보로는 채권단의 워크아웃 승인이 어렵다는 부정적 전망도 나온다.
당초 채권단은 윤세영 창업회장과 윤석민 현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이나 SBS 지분 매각 등이 자구계획에 포함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3일 산업은행에서 열린 태영건설 채권자 설명회에서는 이런 내용이 모두 빠졌다.
이날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 소집 통보로 태영건설에 돈을 빌려준 채권단 400여곳에서 관계자 700여명이 참석해 윤세영 회장의 자구 계획을 직접 들었다.
하지만 윤 회장은 채권단 설명회에서 "최근 일부 보도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규모가 9조원으로 나왔지만, 실제 문제가 되는 우발채무는 2조5000억원 정도다. 어떻게든 정상적으로 사업을 마무리 짓고 제대로 채무를 상환할 기회를 주면 임직원 모두 사력을 다해 태영을 살려내겠다"고 감정적인 호소만 했다.
윤 회장은 "태영건설의 현재 수주잔고는 12조원이 넘으며 향후 3년간 연 3조원 이상의 매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영업이익률도 4%로 동종업계 상위권 회사들 평균보다 좋다"고 장미빛 전망만 강조했다.
하지만 태영건설이 이날 밝힌 자구계획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고 채권단도 크게 실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태영그룹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1549억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고, 계열사인 에코비트와 골프장 운영업체 블루원 매각과 담보제공 추진, 평택싸이로 지분(62.5%) 담보 제공을 약속했다.
하지만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이나 SBS 지분 매각 가능성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산업은행 측은 지난달 28일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당시의 자구계획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티와이홀딩스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자금 중 1549억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이중 일부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지주회사격인 티와이홀딩스 채무 변제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이날 채권단 설명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태영 측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저희는 원래 약속한 조항을 끝까지 지켜달라고 촉구했다. 오늘은 그에 대한 확약을 받고 채권단 회의에서 공표해주길 강력히 요청했다"며 "그러나 아쉽게도 태영 측은 채권단에 구체적인 자구 계획안을 제시하지 않고 단지 '그냥 열심히 하겠으니 도와달라'는 취지로만 말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언급했다.
강 회장은 "잘못된 경영판단에서 비롯된 만큼 태영건설과 대주주가 문제 해결을 위해 책임있는 자세와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특히 대주주는 뼈를 깎는 충분한 자구노력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피해가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데 태영 측이 당초 약속한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점은 주채권은행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런 상황"이라고 작심 비판했다.
강 회장은 또 "태영 회장을 직접 만나서 원래 약속한 (자구계획) 4개 조항을 지켜줄 것을 촉구했고 그에 대한 확약을 오늘 채권단회의에서 공표해주길 강력히 요청했다"며 "하지만 아쉽게도 태영 측은 구체적인 자구계획안을 제시하지 않고 단지 '그냥 열심히 하겠으니 도와달라'라는 취지로만 말씀하신 걸로 이해한다"고 꼬집었다.
양재호 산업은행 기업구조조정1실장도 설명회에서 "(티와이홀딩스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1549억원을 태영건설로 넣어야 했지만, 티와이홀딩스 채무변제에 활용하고 400억원만 넣었다"며 "오늘(3일) 낮 12시까지 1149억원을 넣으라고 했지만 티와이홀딩스 채무 변제에 계속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설명회에는 태영건설과 채권-채무 관계가 있는 금융사들이 대거 참석했는데 태영건설 자구안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비슷했다.
또 다른 채권은행 관계자는 "(태영그룹) 담당자가 자구책을 최선을 다해 내놓고 있다고 말했는데 (제가 볼 땐) 무엇을 내놓겠다는 말은 전혀 아닌 것 같았다"며 "산은에서 요구한 조건들도 안 지켜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원금 손실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자기들은 별로 하지도 않고 금융사에 (비용을) 부담하라는 걸로 밖에 안 보였다"며 "나이 90살 먹은 할아버지(윤세영 창업 회장)가 나와서 말을 했지만 사재 출연하면서 '제가 가진 게 이게 다 입니다"도 아니고, 그런 식이면 누가 듣고 있겠냐"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 여부는 오는 11일 열리는 1차 채권단협의회에서 결정되는 데 채권단 75%의 동의를 얻어야 된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지 못하면 법원의 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아야 한다.
자본시장연구원 황세운 선임연구위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전에 밝힌 내용 번복하게 되면 전반적으로 자구안에 대한 신뢰성이 훼손된다"며 "향후에도 잘 지켜지지 않을 것 아니냐면서 부정적인 평가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 위원은 또 "사재출연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자구안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오너 그룹의 사재까지 포함해서 자구안을 냈다면 진정성 있는 자구안이라는 부분에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며 "일반적으로 워크아웃 받아들이기 위한 자구안은 오너가의 사재 출연이 동반되는 경우가 다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모습에서 채권단이 이것(태영건설 자구안)을 받아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