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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직후 국방장관 "난 허수아비"…5.18 美문서 추가 공개



국방/외교

    12.12 직후 국방장관 "난 허수아비"…5.18 美문서 추가 공개

    최규하 대통령은 '무기력한 대통령'…美대사관, 전두환 정권찬탈 과정 기록
    美, 처음엔 신군부와 거리두기…야당세력의 극단적 행동도 자제 요구
    발포 책임 등 규명할 美국방부 문서는 미공개…바이든 정부의 전향적 결정 기대

    전두환. 연합뉴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12.12 군사반란 직후 주영복 국방장관이 미국 고위인사에게 “나는 군부를 통제할 아무런 실권이 없다”고 토로한 사실이 미국 측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 역시 미국 측으로부터 ‘무기력한(helpless)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등 정부 시스템이 소수의 신군부 세력에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한 사실이 재확인된 것이다.

    미국 정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비밀해제된 국무부 문서(14건, 53페이지 분량)를 최근 외교부에 전달한데 이어 2일 주한미국대사관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공개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무기력한 대통령'…美대사관, 전두환 정권찬탈 과정 기록

    1980년 5월 광주 현장을 방문한 주영복 당시 국방부장관(왼쪽 세번째). 연합뉴스

     

    이에 따르면 당시 주영복 장관은 1980년 1월 7일 레스터 울프 미 하원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나는 군부를 통제할 아무런 실권이 없다. 당신이 나를 도와 달라”고 말했다.

    공군 출신인 주영복 씨는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신군부에 의해 장관 자리에 앉혀졌고 전군 지휘관들의 전폭적인 지지 성명까지 받았지만 실상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음을 실토한 것이다.

     

     

    2일 주한미국대사관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미 국무부 문서(14건, 53페이지 분량) 중 일부. 1980년 1월 8일 최규하 대통령과 레스터 울프 미 하원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의 접견 자리에 대한 내용을 답고 있다. 미 국무부 제공

     

    최규하 대통령도 이튿날인 1월 8일 레스터 위원장 일행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향후 사태를 전혀 예감하지 못한 듯 사태가 안정됐고 군 지휘체계도 복원됐다는 안이한 상황 인식을 드러낸다.

    그는 12.12 군사반란에 따른 더 이상의 상황 악화는 없을 것이고 군이 본연의 국가방위 임무로 복귀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주한 미 대사관은 본국에 보낸 '서울에서의 탄압(crackdown)'이라는 전문 중 일부. 미 국무부 제공

     

    하지만 전두환 신군부는 불과 넉달여 뒤인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이에 놀란 주한 미 대사관은 본국에 보낸 ‘서울에서의 탄압(crackdown)’이라는 전문에서 신군부 세력의 정권 찬탈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고한다.

    미 대사관은 신군부가 합법적 정부 권한을 무시하고 학생과 정치 영역 전반을 탄압하고 있는 반면, ‘무기력한’ 최규하 대통령과 그 내각은 신군부 결정을 재가하기에 급급하다고 평가했다.

    당시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은 비상계엄 확대 결정이 대통령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임을 미국 측에 시사하기도 했다

    최규하 전 대통령 서재. 황진환 기자

     

    ◇美, 처음엔 신군부와 거리두기…야당세력의 극단적 행동도 자제 요구

    이번 공개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씨가 실세임을 한동안 확신하지 못하다가 이듬해인 1980년 3월 무렵 전 씨를 군부 실권자로 인지했다.

    미 국무부는 한국 사정이 불안정할 경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를 연기할 수 있다는 점을 공식 채널 외에 전두환 씨에게도 전달해 압력을 행사하려 했고,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그해 3월 5일 전 씨를 면담해 의중을 탐색하기도 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2.12 직후에도 전 씨를 만나 전모 파악에 나섰지만 당시는 정권까지 찬탈할 만큼의 야심이 잘 드러나지 않던 시점이었다.

    미 국무부는 글라이스틴과 전 씨의 3월 5일 면담이 자칫 미국이 전두환 신군부를 지지하는 신호로 오해받을 가능성을 우려하며 전 씨와의 접촉에 신중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이런 사실은 미국이 10.26과 12.12 사태를 거쳐 이듬해 5.18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신군부의 동향에 그리 밝지 않았고, 처음부터 전 씨를 지지하는 입장도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1981년 3월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 대통령기록관 제공

     

    미국은 당시 냉전 상황에서 한국의 안정적 안보 관리가 중요했을 뿐 한국의 정치 민주화 등은 부차적 관심사였다.

    이는 글라이스틴 대사가 5.18 이후인 1980년 5월 23일 한국 국회의원 등과의 오찬에서 신군부의 극단적 행동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학생과 야당세력에도 극단적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밝힌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발포 책임 등 규명할 美국방부 문서는 미공개…바이든 정부의 전향적 결정 기대

    한편 미국 측은 지난해에도 국무부의 관련 비밀해제 문서 43건, 143페이지 분량을 공개했고 이번에 추가로 공개했다.

    다만 5.18 관련 단체와 연구자 등이 더욱 관심을 두는 미 국방부 문서는 아직도 미공개 상태다. 이들 문서에는 5.18 발포 책임과 진압군 투입 승인 등 진상 규명에 핵심적 내용들이 포함돼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이 광주 시민을 강제 진압하고 있다. 5.18 기념재단 제공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관계자는 “전두환, 노태우 정부를 거치며 (진상 규명에 필요한) 상당히 많은 부분이 유실되거나 변조됐지만 이 문서의 거울 이미지(복사판)가 한미연합사령부에 다 있다”면서 미국 바이든 정부의 전향적 공개 결정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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