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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터뷰]'벌새' 잇는 '빛과 철'…박지후의 미스터리



영화

    [EN:터뷰]'벌새' 잇는 '빛과 철'…박지후의 미스터리

    날카롭게 부딪혀 강렬하게 빛을 낸 사람들 ④
    영화 '빛과 철'(감독 배종대) 은영 역 배우 박지후 <상>

    영화 '빛과 철'에서 은영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박지후. 찬란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남편들의 교통사고로 그 아내인 두 여자가 얽히게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한 상황, 모든 것이 종결된 이후 둘은 새로운 국면에 놓인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중대한 변화 지점을 만들어 낸 것은 은영(박지후)이다. 은영의 아빠는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이 됐다. 그런 아빠를 위해 병원과 학교를 오간다. 엄마 영남(염혜란)과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아빠를 기다린 지도 어느덧 2년이다. 은영은 어쩌면 가족의 불행이 자기 탓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런 은영 앞에 희주(김시은)가 나타난다. 갑작스럽게 남편이 죽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남편이 가해자라는 사실에 고통받아 온 희주에게 은영은 자신의 아빠에 대한 비밀을 고백한다. 영남도, 희주도, 다른 어른들도 하지 않았던 진실을 은영만은 알리려 한다.

    어쩐지 미스터리하면서도 누구보다 용기 있는 은영을 연기한 건 '벌새'(감독 김보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배우 박지후다.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박지후를 만나 '벌새'의 은희와는 다른 '빛과 철'(감독 배종대) 은영을 구축해 나간 과정을 들어봤다.

    영화 '빛과 철' 스틸컷. 찬란 제공

     

    ◇ 박지후가 만들어 간 은영

    -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에 어떤 느낌을 먼저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되게 어렵게 느껴졌어요. 처음에는 '누가 가해자지?' '누가 피해자지?' 이것만 생각했는데, 계속 읽다 보니 그것보다 제가 연기할 은영에 대해 조금 더 파고들게 되더라고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제가 연기한 은영은 모두가 침묵할 때 진실을 밝히는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습니다."

    - 가장 오랫동안,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은영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은영은 아픈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아빠 병간호도 하고, 또 학교에서는 유령 같은 존재예요. 학교 끝나고 병원에 오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죠. 그러면서도 힘든 티 하나 안 내고 살아가는 은영이 어른스럽게 느껴졌어요. 은영은 2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미리 엄마한테 말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결국 용기를 내고 말하죠. 단단하고 강인한 아이예요."

    - '벌새' 이후 선택한 작품인데 부담은 없으셨나요? 배종대 감독님이 '벌새'의 은희와는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은영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구축해 가셨나요?

    "선배 배우님들과 함께 촬영하려 하다 보니 제 연기 실력이 누가 되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항상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었죠. 감독님이 관객들께서 은영의 의도를 몰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그런 미스터리한 인물로 연기하려고 은영의 감정과 상황을 최대한 떠올렸어요. 신마다 양심과 진실에 중점을 두고 연기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리고 감독님께서 제게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추천해주셨어요. 그 영화에도 어른 둘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또 알리려고 하는 딸이 나와요. 그 딸을 생각했어요."


    영화 '빛과 철'에서 은영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박지후. 찬란 제공

     

    ◇ 박지후가 바라본 은영, 그리고 영남과 희주

    - 엄마인 영남도, 희주도, 어른들은 모두 진실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만, 은영은 희주에게 아빠의 진실을 고백합니다. 무엇이 은영에게 사실을 고백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영화 속에서 은영 혼자만 학생이에요. 제가 친구들이나 저를 보면 그 나이대만의 충동적인 게 있어요. 어디로 튈지 모르죠. 또 순수한,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어른들에게, 죄책감에 시달려도 삭히면서도 한편으로 은영은 충동적으로 표출해냈다고 생각해요. 은영 혼자 이 상황을 못 견뎌서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 은영은 아빠가 사고로 의식불명이 되고, 원래 살던 곳을 떠나와야 했습니다. 엄마는 아빠를 간호하느라 은영과 제대로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고요. 은영은 아빠의 사고 이후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을까요?

    "어쩌면 사고 전의 은영은 그냥 보통 딸들처럼 엄마랑 학원 이야기, 학교 이야기를 했을 거 같아요. 한순간에 교통사고가 벌어지고 아빠는 아프고, 그러면서 은영은 순식간에 혼자가 된 느낌을 받았을 거 같아요. 어린 나이지만 가족 걱정을 하며 중간에서 '나라도 잘 있어야 우리 가족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은영이가 아빠의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보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에서 누구보다 아빠가 일어나길 간절히 바란 게 은영이 아닐까 생각해요. 은영은 오직 가족만 바라보고, 아빠가 일어나길 바라며 보내온 게 아닐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기도 모르게 단단해진 것 같아요."


    영화 '빛과 철' 스틸컷. 찬란 제공

     

    - 은영의 시선으로 본 영남과 희주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은영과 엄마 영남은 사고 전에는 그냥 일반적인 모녀 관계였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딸에게 따뜻한 밥을 챙겨주고, 은영의 일상을 물어봐 주는 그런 관계요. 사고가 일어난 뒤에는 엄마도 힘들다 보니 딸에게 무심해지고, 자기 일을 하기 바쁜 상황이죠. 은영은 다 이해하지만, 엄마가 조금이라도 필요에 의해 하는 질문이 아니라 사적인 이야기를 해주면 어떨까 생각하는 거죠.

    은영은 2년 전 장례식장에서 희주가 괴로워한 걸 봤어요. 희주에 대한 죄책감, 괴로움을 갖고 있다가 공장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나서 은영도 엄청 힘들었을까 싶어요. 호기심에 충동적으로 따라다니다 인연이 돼서 관계가 계속 맺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라면에 밥 말아주고 차도 태워주는 희주가 그 당시 외로웠던 은영에게 힘이 돼 주지 않았나 싶어요. 희주는 은영에게 힘이 되면서도 애잔한 감정이 드는 인물이라 생각해요."


    - 은영은 공장 기숙사에 찾아가 희주에게 모두 자신의 잘못이고 벌은 자신이 받겠다고 말합니다. 희주는 그런 은영을 놔두고 나가고, 그 후 희주의 방 창문으로 은영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때 은영의 모습은 꽤 아슬아슬해 보이는데요. 은영은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감독님은 은영에게서 관객들이 아슬아슬한 감정을 느끼길 바라셨어요. 저 또한 묘한, 미스터리한 인물로 보이길 바랐죠. 은영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절대 그런 부정적인 건 아니라고 하셨어요.

    은영도 그 순간에 혼란을 느꼈을 거예요. '어떻게?'라는 질문을 다시 희주가 내놓으니 혼란스럽고 복잡하고 여러 감정이 들었을 거 같아요. 은영이 진실을 알리며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니까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질 거 같아요. 그냥 피하는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은영이가 멀리 가서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희주와 영남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영화 '빛과 철'에서 은영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박지후. 찬란 제공

     

    ◇ 인상 깊은 순간, 인상 깊은 엔딩

    - 박지후씨는 자신이 연기한 장면 중 감정적으로 가장 강렬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리고 영화 전체를 통틀어 박지후씨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병원 로비 신과 비 맞고 난 뒤 차에서 희주한테 처음 진실을 고백하는 신이요. 계속 마음속에 담아 왔던 걸 두 인물에게 털어놓죠. 계획하고 한 게 아니라 충동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말들이라서 더 혼란스러운 감정이 많이 나온 것 같아요.

    그리고 영남과 희주가 후반에 침대에서 격투를 벌이는 장면이 있는데, 분노로 격앙된 모습에 진짜 몸을 긴장하면서 보게 되더라고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까 조마조마하고, 두 배우의 열연이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며 끝난 마지막 장면에서 무엇을 발견했나요?

    "고라니가 되게 영롱한 눈빛으로 두 인물을 쳐다봐요. 그 장면을 보면서 저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떤 죄의식을 갖고 있고, 또 누가 피해자고 가해자인 게 무엇이 중요한지 계속 생각하게 됐어요. 감독님은 고라니에서 은영을 떠올리길 바라셨다고 했어요. 그 말씀을 듣고 보니까 영남과 희주에게 은영에 관해서 왜 아무 말도 없는지 일침을 날린 거 같아서, 진짜 많은 생각을 깊게 해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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