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딸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헐레벌떡 집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와플 하나가 들려 있었다. 재택 근무중인 정모(45)씨가 아이의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엄마, 쇼핑몰 1층에 있는 여행사 알지?"
"응. 그 계단 옆에 있는 00여행사 말하는 거야?"
"맞아, 거기. 사람들이 줄 서 있길래 뭔가 봤더니 와플을 팔더라고. 그런데,..."
코 앞으로 와플이 쑥 들어왔다. 달콤한 생크림 냄새 너머로 딸아이가 눈을 반짝였다.
"웬만한 카페에서 파는 와플보다 훨씬 맛있어! 가격도 엄청 싸. 그래서 엄마 것도 사 왔어. 먹어봐."
2천원이 안 되는 가격의 와플에는 크림과 잼이 가득했다.
경기도 화성의 한 복합쇼핑몰 1층에 위치한 여행사.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9월부터 와플을 팔고 있다.(사진=조혜령 기자)
경기도 화성의 복합쇼핑몰 1층에 위치한 '00여행사'는 지난 9월부터 사무실 안에서 와플을 팔기 시작했다.
여행사 대표 조모(45)씨는 구청에 '휴게음식점' 신고를 내고 샵인샵 방식으로 사무실 한 켠에서 와플을 만들고 있다. 1500원 크림 와플과 2천원 생크림 와플이 가장 인기 메뉴다.
와플과 아이스크림 등 7가지 메뉴 외에도 작은 꽃다발과 화분도 판매중이다. 코로나19로 지난 3월부터 매출이 전무했던 여행사가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조 씨는 "어차피 비어있는 매장을 최대한 활용해보자는 생각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간식 메뉴를 팔아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행사는 현재 와플 판매액과 조씨 부부가 각자 아르바이트로 번 수익으로 임대료를 충당하고 있다. 와플은 조 씨 부부에게 "코로나가 언젠가 끝나면 다시 여행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불씨인 셈이다.
"백신 나오면 다시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으로 버티는 거죠. 9월부터 시작해서 아직은 동네분들만 찾아주고 있어요"
◇"최악의 보릿고개는 이제 시작" 암울한 전망 나오는 여행업계백신이 나오면 코로나가 곧 종식될 거라는 희망과는 달리 코로나19 확진자가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여행업계가 고사 직전에 내몰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여행업종 상장사 6곳의 직원 수는 4758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400명 가량 줄었다. 이 중 하나투어의 직원 수가 2354명으로 146명(5.8%) 줄었고 모두투어 91명(7.9%), 노랑풍선 75명(13.6%), 레드캡투어 48명(10.8%), 참좋은여행 26명(7.0%), 세중 14명(11.0%) 순으로 감소했다.
매출 실적은 최악의 수준이다. 지난 11월 4일 공시된 3분기 실적에 따르면,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의 매출액은 101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95% 하락했다. 영업이익은 -302억원(-992%)을 기록했다. 업계 2위로 꼽히는 모두투어의 매출액은 29억원, 영업이익은 -75억원(-239%)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진짜 고비는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부지원금이 종료되는 12월이 여행업계의 '보릿고개'가 될 거라는 말이다.
여행업계는 정부의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원에 따라 기존 60~70% 수준의 월급을 고용유지지원금으로 받고 있다. 하지만 지원 기간인 180일이 끝나면서 일부 여행사들은 이번달부터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6월부터 필수인력을 제외하고 무급휴직을 이어온 하나투어는 무급휴직을 내년 3월까지 3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 모두투어는 지난 8월부터 전체 직원 1천여명 중 90% 이상이 무급휴직중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이 종료되면 직원들의 수익은 '제로'가 된다.
때문에 내년에는 여행업계에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이 있을 거라는 암울한 예측도 제기되고 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직원들이 7~8개월 동안 회사를 못 나가다 보니 여러가지 임시직이나 택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며 "빅데이터를 공부하거나 일부는 창업을 하기도 한다"고 사정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에서는 구조조정은 안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고민이 있을 것"이라며 "상황이 계속 안 좋아지다보니 직원들이 많이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비행기 티켓 쿠폰 받고 호텔 도서관에서 독서…호텔이지만 호텔 아닌 듯한 서비스호텔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여파로 세미나와 연회, 각종 연말 행사가 취소되면서 호텔업도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서울 강남의 첫 특급 호텔인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호텔'은 내년 1월 영업 40년만에 문을 닫는다. 마포구의 서울가든호텔도 지난달부터 희망퇴직을 받고 인력을 정리하고 있다.
9월 말 현재 상장사 호텔 중 호텔신라 직원 수는 2397명으로 192명(7.4%), 신세계는 2714명으로 49명(1.8%) 감소했다. 롯데지주는 153명으로 26명(14.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 심리가 위축되면서 호텔 예약률이 다시 떨어지자 호텔은 비행기 체험, 도서관 등 색다른 경험을 전달하는 이색 패키지 상품으로 매출 올리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서울 신라호텔은 도서 정기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라이북'과 협업해 19층 라운지를 서재로 바꿨다.
서울신라호텔 북라운지(사진=서울신라호텔 제공)
'플라이 미 투 더 북(Fly Me to the Book)' 패키지를 이용하면 아늑한 분위기의 서재에서 여유롭게 독서를 즐기는 것은 물론, 포근한 객실에서도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대여 서비스가 제공된다.
신세계조선호텔의 에스케이프호텔은 해외여행을 꿈꾸는 소비자들에게 '여행의 느낌적 느낌'을 선사한다.
여행 준비부터 공항, 비행기, 여행지에서의 즐거움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윈터 패키지 '에어 레스케이프(Air L'Escape)'를 내년 2월까지 선보인다. 체크인한 고객에게는 비행기 티켓 모양의 쿠폰과 담요, 안대 등 '플라이트 키트'가 제공된다. 모든 패키지 고객은 맥주와 견과류, 라면이 포함된 밀 세트를 받아볼 수 있다.
레스케이프 호텔의 에어 레스케이프 패키지(사진=레스케이프 제공)
또한 호텔 내 7층 '에어 레스케이프 라운지'를 꾸며 고객에게 포토존 등의 다양한 여행 경험 컨텐츠를 제공한다.
에스케이프호텔 관계자는 "도심 속 해외 여행을 더욱 느낄 수 있도록 19세기 파리 부티크 호텔에 도착한 듯 창 밖의 에펠탑 도심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포토존과 공항 라운지 컨셉의 포토존을 꾸몄다"며 "일상을 벗어나 여행의 준비와 설렘을 느낄 수 있는 패키지 구성"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