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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면엔] 항공사 줄 파산 위기, 코로나 탓만 있을까



기업/산업

    [e면엔] 항공사 줄 파산 위기, 코로나 탓만 있을까

    LCC, 여행 대중화·운임 낮추는 데 기여했지만 '황금알 낳은 거위' 우후죽순 출범
    "LCC가 고속버스보다 많아질 판"…항공권이 커피 한 잔 값
    보이콧 재팬에 '휘청'…겹치는 운항 노선, 외부 변수에 대응 힘들어
    이스타항공, 노선 다변화에 노력했지만…코로나19 이전부터 완전 자본 잠식
    국토부 "노선 편중·과당 경쟁 우려→경쟁 촉진·혁신 기대" 2년 만에 바뀐 신규 LCC 허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애경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이스타항공노동자 7차 총력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정부 여당이 이스타항공사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올해 상반기 예정됐던 항공사 인수·합병(M&A)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7개월을 끌어온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는 사실상 제주항공의 '노딜' 선언만 남겨놨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겠다던 HDC현대산업개발은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협상가를 낮춰보려 계산대를 두드려보지만,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만약 두 M&A 모두 무산된다면, 이스타항공은 파산될 우려가 큽니다. 아시아나항공도 새로운 인수협상자를 찾아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무산이 현실화 되면, 가뜩이나 힘든 코로나 시국에 항공업계에 주는 타격은 상당할 전망입니다.

    상황이 이지경까지 된 것에 코로나19 탓만 하기에는, 석연치 못한 구석이 많습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이미 국적 항공사가 모두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국내 항공산업은 구조적 위기에 봉착했다"고 지적하는데요.

    코로나19가 오기 수년 전부터, 저비용항공사(LCC)의 근본적인 공급 과잉 문제는 계속돼 왔고, 지난해 일본 불매운동으로 여행 수요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결국 터질 게 터졌다"며 고개를 내젓습니다.

    ◇ LCC, 여행 대중화·운임 낮추는 데 기여했지만…'황금알 낳은 거위' 우후죽순 출범

    1969년 국영항공사였던 대한항공공사가 민영화된 뒤 1988년까지는 대한항공 독주 시대였습니다. 이후 1988년 아시아나항공이 출항하면서 복수 민항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후 2004년 8월 한성항공이 부정기노선을 띄우면서 사업자 등록을 했고, 곧이어 2005년 1월 제주에어가 설립된 건데요. 같은 해 8월, 한성항공이 청주-제주 노선 운항을 시작했고, 제주에어는 제주항공으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이후 2007년 8월 에어부산, 같은 해 10월에는 이스타항공, 2008년 1월 진에어가 출범했습니다. 2010년 한성항공이 티웨이로 사명을 변경했고, 2015년 에어서울이 설립됐습니다. 그리고 4년 만에 플라이강원,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 등 3개사가 추가되면서 LCC만 9개에 달합니다.

    LCC들은 항공권 가격 문턱을 낮춰 해외여행 대중화를 이끌고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독점했던 생태계를 경쟁 구도로 전환해 운임을 낮췄다는 점은 LCC 성장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힙니다.

    LCC 산업의 급격한 외형성장으로 항공 면허를 일종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게 되면서 우후죽순 생겨난 LCC는 독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신규 항공사 3곳의 면허 발급이 확정되자, 당시 기존 항공사들은 "현재도 LCC는 포화 상태인데 2018년 하반기부터 항공 수요가 꺾이기 시작했고, 경기 전망도 좋지 않아 어려워질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국내 LCC의 경우 내국인 비중이 90%라 경기가 나빠지면 항공 수요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 "LCC가 고속버스보다 많아질 판"…코로나에도 항공권이 커피 한 잔 값

    LCC가 많더라도 수요가 받쳐주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항공 여객은 국내선이 27%, 국제선이 73% 정도로 국제선 비중이 압도적입니다. 또, 국내선에는 외항사가 취항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6개 국적사 체제가 갖춰진 2016년부터 LCC 3개사가 신규허가를 받은 2019년까지, 국제선 여행객은 7300만('16) → 9038만 명('19)으로 23.8% 증가했습니다. 반면 6개 국적사의 국제선 공급 좌석은 5814만 → 7407만 석으로 27.4% 증가했고요. 여행객이 꾸준히 증가했지만, 공급량을 따라가진 못한 것이죠.

    이미 저가인 항공권이 초저가로 떨어지면서 업계 치킨게임으로 치달았습니다. 이렇게 힘든 코로나 시국에도 LCC들은 커피 한 잔 값 수준의 항공권을 팔며 출혈경쟁까지 불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업계에서는 "출혈 경쟁은 항공업계 공멸만 불러올 뿐 노선 유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국가 간 갈등 등 국제적 환경 변화에 따라 여객 수요가 출렁이는 것도 항공산업의 단점이기도 합니다. 2010년부터 연평균 12% 가까운 증가율을 보이던 국제선 여객 수요는 중국과의 사드 갈등이 있었던 2017년에는 5.4%로 급락했습니다. 이듬해 홍콩 민주화 시위가 터지고 연이어 '보이콧 재팬' 직격탄까지 맞았습니다.

    ◇ 보이콧 재팬에 '휘청'…일본·중국 등 겹치는 운항 노선, 외부 변수에 대응 힘들어

    국내 LCC는 일본 비중이 높습니다. 그러나 여름부터 일본 불매 운동이 불면서 '성수기'가 사라졌습니다. LCC들은 서둘러 동남아·중국 등 노선으로 대체했지만 40%에 달하는 일본 수요를 만회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갈수록 대체 노선 경쟁은 심해지고, 탑승률은 떨어지고, 고정비는 증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는데요.​

    ​지난해 3분기부터 LCC 모두 적자를 냈습니다. 제주항공은 3분기 영업손실 174억 원, 진에어는 131억 원, 티웨이항공과 에어부산은 각각 102억 원, 195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LCC 3개사가 진입한 겁니다.

    LCC 수만 놓고 보면, 영토 크기나 인구수보다 포화 상태라는 지적입니다. 오죽하면 지난해 3개 LCC에 한꺼번에 허가가 떨어지자 "LCC가 고속버스 회사보다 많아질 판"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국제선 여객 실적을 보면 일본, 중국, 아시아 지역이 총 81.6%를 차지합니다. LCC 노선은 이 지역에 집중됩니다. 신규 허가를 받은 플라이강원과 에어로케이의 주요 노선도 중국, 일본, 대만 등지입니다.

    LCC 노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비용이나 정비 효율성 때문에 주로 중국,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등 중단거리로 한정됩니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과의 갈등이 빚어지면 노선을 변경하기 힘들어 직격탄을 맞게 되는 이유기도 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입니다.

    이스타항공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 이스타항공, 노선 다변화에 노력했지만…코로나19 이전부터 완전 자본 잠식

    노선 다변화를 위해 새로운 기종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스타항공은 2018년 12월과 2019년 1월 B737맥스 2대를 들여왔고, 2019년 말까지 4대를 추가 도입할 계획이었습니다. B737맥스 기종의 항속거리는 6500㎞ 정도로 중거리 노선 취항이 가능하기 때문에 타 LCC에 앞서 중거리 노선을 선점할 구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항공 등 737맥스 추락 사고가 연이어 터졌고, 전 세계 항공사들이 해당 기종의 운항을 금지했습니다. 미국 연방항공청 조사 결과 수평꼬리날개 제어 시스템에서 결함이 밝혀졌다.

    취항 3개월 만에 운항이 중단된 이스타항공의 737맥스 2기는 인천공항에서 주기료(비행기의 주차료)만 까먹었습니다. 한 푼의 수익 없이 리스료 5~6억을 포함해 매달 수십억 원이 날아갔고, 이스타항공은 이미 지난해부터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습니다.

    여기에 일본 불매 운동까지 닥치면서 '동양의 별'을 꿈꾸던 이스타항공의 날개는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무급휴직 등 구조조정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고, 결국 매각 절차를 밟게 됐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인수키로 한 제주항공마저도 경영난에 빠졌고,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가를 둘러싼 여러가지 의혹, 임금 체불 문제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M&A는 무산 위기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 국토부 "노선 편중·과당 경쟁 우려→경쟁 촉진·혁신 기대" 2년 만에 바뀐 신규 LCC 허가

    전문가들은 코로나19는 방아쇠가 됐을 뿐, 팬데믹 이전부터 항공업계 전반이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공급 과잉과 경쟁 과열이 코로나19 같은 외부리스크로 곪아 터졌다는 분석입니다.

    세종대 황용식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 규모에서는 FSC 1곳, 저비용항공사(LCC) 3곳 정도를 운영하는 게 가장 최적의 상태"라고 분석했습니다. 국가 경제 수준과 OECD 평균 항공사 수를 고려한 집계입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길을 우리가 밟고 있다고 하는데요, 1978년 카터 정부의 항공 자유화 이후, 미국에서는 1985년까지 신규항공사만 118개가 생겼습니다. 이후 99곳이 문을 닫습니다. 20세기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항공과 국내선 최강자 이스턴항공은 1991년에 파산했고, 운항 역사가 가장 긴 트랜스월드항공은 2001년 아메리칸항공에 팔렸습니다.

    국토부는 2017년 에이로케이와 플라이양양의 사업 허가를 반려하면서 '노선 편중과 과당 경쟁 우려'를 근거로 댔습니다. 그러나 2년 뒤 "사업자 신규 진입으로 경쟁이 촉진되고, 항공시장의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신규 항공사 3곳을 허가했습니다.

    수열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의 명목으로 정치권과 지자체가 합세했다"면서 "국회는 결국 '항공사업법'을 개정해 항공사업 면허 기준에서 '과당경쟁 우려' 조항을 삭제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경쟁력 확대를 명목으로 규제를 풀어 공급 과잉 상태를 만든 정책 실패가 첫째 원인"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스타항공에서 시작된 구조조정 위기가 다른 업체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큽니다. 하반기로 미뤄진 아시아나항공-HDC현산 M&A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입니다. 항공기 축소와 비수익 노선 등 자구책 등 시장 재편은 이제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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