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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간직한 이들이 만든 괴담 '호텔 레이크'



영화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 만든 괴담 '호텔 레이크'

    [노컷 리뷰] 영화 '호텔 레이크'(감독 윤은경)

    (사진=㈜스마일이엔티 제공)

     

    ※ 스포일러 주의

    고풍스러워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쾌하고 싸늘함을 감출 수 없는 호텔이 있다. 우아하지만 무언가 감추고 있는 듯한 호텔 사장, 그리고 부재의 아픔을 간직한 주인공. 각자의 상처를 가진 이들이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만들어낸 호러영화, '호텔 레이크'다.

    '호텔 레이크'(감독 윤은경)는 호텔을 찾은 유미(이세영)가 그곳에서 기이한 현상을 겪게 되는 섬뜩하고 소름 끼치는 사건을 그림 공포 괴담이다. '호캉스'(호텔(Hotel)과 바캉스(Vacance)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현대인들이 여가 장소로 애용하는 '호텔'을 2020년 새로운 괴담의 진원지로 탈바꿈시키며 공포를 자아낸다.

    취업을 준비 중인 유미는 자기 자신도 건사하기 힘든 여건에서 갑작스럽게 동생 지유(박소이)가 생긴다. 그러나 형편이 여의치 않은 만큼 엄마의 친구이자 호텔 레이크의 사장인 경선(박지영)에게 잠시 지유를 맡기기로 한다.

    5년 만에 찾은 호텔 레이크는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곳이자, 잊고 싶은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자리 잡은 곳이다. 미쳐버린 엄마, 그런 엄마의 부재, 그리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에 대한 감정 등이 여전히 유미를 힘들게 한다. 그런 유미에게 경선은 호텔에서 잠시 쉬었다 가라고 한다. 그렇게 유미는 괴이한 상황들과 마주하며 호텔에 감춰진 두려운 비밀, 그리고 엄마에 관한 진실을 알아가게 된다.

    영화에는 각자 가족에 관한 아픔과 슬픔을 지닌 이들이 나온다. 각자 자신의 마음속 상처를 다루는 방식도 다르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꾹꾹 눌러 담고 사는 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대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 낸 게 호텔 레이크의 공포다. 그리고 공포의 근원을 파헤쳐가는 과정은 사실 각 인물의 아픈 기억을 되짚어보고, 공포와 직접 마주하는 과정이다.

    (사진=㈜스마일이엔티 제공)

     

    영화의 배경이 된 호텔 공간은 제법 오싹하다. 나선형 구조의 호텔과 길게 뻗은 복도, 지하 공간으로 향하는 계단 등은 무언가가 나올 듯한 압박감과 으스스함을 선사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상황을 통해 관객들의 긴장을 한껏 높인다. 동시에 호텔의 반복되는 구조와 괴이한 분위기는 인물들의 트라우마를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영화는 오프닝부터 관객을 공포로 밀어 넣기 위해 노력한다. 버스정류장 아래로 보이는 다리, 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 맨발로 길을 가는 여인, 유미의 동생 지유가 자꾸 눈에 보이지 않는 아줌마를 언급하는 것, 호텔 내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방 405호, 자꾸 떨어지는 액자, 호텔에는 사람을 돌아버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메이드 예린(박효주)의 말 등 여러 가지 암시를 통해 궁금증을 유발한다.

    아쉬운 것은 각종 트릭을 던져놓고 관객과 잡힐 듯 말 듯 긴장감을 이어가며 술래잡기를 해야 할 공포 영화의 결말이 너무 빨리 관객에게 잡힌다는 데 있다.

    관객들이 비밀을 감추고 있을 듯한 인물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호텔 레이크를 비극과 공포의 장소로 만든 진짜 범인을 가리기 위해 눈속임을 시도하지만, 트릭들이 생각보다 헐거워 영화와 관객의 술래잡기는 생각보다 쉽게 끝이 난다. 조금 더 촘촘하게 엮어 팽팽하게 줄다리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세영, 박지영, 박효주 등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 내내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들의 연기를 보는 건 영화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 책임지기 힘든 혹은 싫은 존재가 생긴 복잡한 심경, 보이지 않지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서늘한 기운으로 압박받는 유미를 이세영이 섬세하게 그려낸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진실을 향하는 유미는 이세영을 통해 완성된다.

    호텔 레이크의 사장이자 유미 엄마의 친구 경선 역을 맡은 박지영은 원래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인물처럼 보인다. 그가 연기한 경선은 슬픔과 죄책감, 그리움과 고독 등 어둡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인 인물이다. 박지영은 그런 경선을 설득력 있게 연기한다.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여성 배우들이 극의 모든 것을 이끌어 나가는 모처럼의 호러영화라는 점에서는 반갑다. 각각의 여성 캐릭터가 자신 안의 외로움과 누군가의 부재를 이겨내기 위해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걸 지켜보는 것은 '호텔 레이크'를 바라보는 또 다른 방법일 것이다. 이번 영화로 장편 데뷔한 윤은경 감독이 다음에는 어떤 영화를 선보일지 기대된다.

    4월 29일 개봉, 100분 상영, 15세 관람가.
    (사진=㈜스마일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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