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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오브제로 전하는 그 날의 광주…연극 '휴먼 푸가'



공연/전시

    몸과 오브제로 전하는 그 날의 광주…연극 '휴먼 푸가'

    소설가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푸가 형식으로 무대화
    신체, 물체를 통해 사회적 고통과 기억을 각인
    6일~17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

    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 모습 (사진=남산예술센터 제공/ⓒ이승희)

     

    "당신은, 나와 같은 인간인 당신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1980년 5월의 광주. 계엄군에 맞서 싸운 이들과 그 후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받는 내면을 그린 연극 '휴먼 푸가'가 무대에 오른다.

    6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초연되는 '휴먼 푸가'는 작가 한강의 6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원작으로 한다. 남산예술센터의 올해 마지막 시즌프로그램으로 '공연창작집단 뛰다'가 공동 제작했다.

    5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프레스콜과 함께 열린 전막시연에서 확인해 본 작품은 커다랗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광주의 진실을 비판하거나 규명하는 등 역사적 사실로 접근하지 않고 그날의 광주에 있었던 사람과 그 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상처와 고통을 오롯하게 전한다.

    이 같은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 또한 특별하다. 문학 속 언어를 그대로 연극이라는 테두리 안에 옮겨놓지만, 배우들은 노래하지 않고 연기하지 않는다.

    배우들은 절제되면서도 동적인 몸짓을 통해 무대를 장악하고, 흡사 무용수의 춤사위 같은 격렬한 몸부림을 통해 당시 광주의 이야기를 보다 강렬하게 전달한다.

    배우들은 또 여느 연극처럼 대사를 내뱉지 않는다. 읊조리듯 전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인물의 기억과 증언을 단편적으로 따라가게끔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며 당시 인물들 내면의 고통과 참혹함을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무대를 관통하는 피아노의 라이브 연주는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단순 건반을 통한 연주 뿐만 아니라 피아노라는 악기 전체를 통해 무대를 울리는 음악은 관객들의 감각의 확장을 꾀한다.

    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 모습 (사진=남산예술센터 제공/ⓒ이승희)

     

    전막시연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배요섭 연출은 "음악이라는 것은 퍼포머라고 생각한다"며 "말을 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퍼포머가 있다면 소리를 내는 퍼포머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길을 찾았는데, 세가지 중요한 단어는 '배우들은 연기하지 않는다', '무용수는 춤추지 않는다', '음악가는 연주하지 않는다"였다"면서 "그것들이 관습적으로 갖고 있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극에 등장하는 오브제 역시 독특하다. 유리병, 밀가루 등 다양한 물체가 서사의 요소요소에 녹아들며 상징성을 뽐낸다.

    이에 더해 배우들의 신체의 움직임과 오브제는 적절하게 어우러지고 증폭돼 고통의 기억을 실체화 한다.

    남산예술센터 '휴먼 푸가' 공연 모습 (사진=남산예술센터 제공/ⓒ이승희)

     

    배 연출은 "몸에 숨겨진 어떤 작은 변화들과 연결되도록 오브제를 사용했다"면서 "약간 전시적인 시각의 예술적 방향으로 접근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브제를 사용하면서 이것들이 갖고있는 물성들을 발견하게 됐다"며 "예를들어 한 퍼포머가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떠오르는 이미지로 유리병을 무대에서 써보니까 나오는 소리와 옮겨지는 행위 등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또 "하는 사람도 다르게 느끼고 볼때도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발견했고, 오브제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체험 등이 오브제를 무대에서 사용하게 된 이유다"고 부연했다.

    하나의 사건이 낳은 고통이 여러 사람들의 삶을 통해 변주되고 반복되고 있는 소설의 구조는 독립된 멜로디들이 반복되고 교차되고 증폭되는 푸가(fuga)의 형식과도 맞닿아 있다. 이 작품 역시 이 같은 형식으로 무대화 됐다.

    배 연출은 "푸가라는 것은 소설을 처음 읽었을때 떠올랐던 제일 중요한 단어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푸가라는 것은 '어디로 간다', '달린다'는 뜻으로 여러개의 다른 주제가 각기 다른 시간차를 두고 반복되면서 달리는 구조다"라면서 "한 주제가 시작하고 따라가고 변주되는 방식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광주를 겪었던 사람들이 지금 살아가는 삶 모습들이 푸가처럼 변주되고 반복되고 있다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배 연출은 또 "저는 원래 텍스트를 신뢰하지 않는다. 작가가 쓴 텍스트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고 몸으로 쓴 텍스트에 대해서 신뢰한다"면서 "하지만 이번만큼은 반대로 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작가가 쓴 텍스트 토시 하나 바꾸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서 배 연출은 "글자 하나하나에서 받은 감각들이 강렬했다"고 표현했다.

    이어 "저에게 굉장히 크게 위배되는 법칙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배우들한테 '절대 텍스트를 바꾸지 마라', '입에 맞추기 위해 말을 바꾸지 마라'고 말했다"면서 "텍스트 자체가 우리한테 굉장히 큰 소스이기 때문에 그대로 가져왔고, 그것이 갖고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제작진과 배우는 이러한 작품의 완성을 위해 지난해 1월 한강 작가와의 만남 이후,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폭력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보기 위해 여러 차례 광주를 방문해 자료를 조사했다.

    배 연출은 "사실 광주라는 이야기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분도 많고 실제로 그 안에서 어떤 것들이 발생했고, 어떤 사람이 지금 살아있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며 "그래서 실제로 배우들한테 몸의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광주에 가서 사람들 만나고 고문하는 지하실을 찾아 기운을 몸으로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배우가 경험했던 체험이 남아있지 않으면 발화될 수 없는 양식이라 생각해 그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서 "서너번씩 광주 가서 사람 만나고 공간 가서 머물러보고 오래 지켜보고 했던 시간들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연극 '휴먼 푸가'의 원작인 소설 '소년이 온다'는 지난 6월 폴란드에서 'The Boy is Coming'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바 있다. 이는 유럽에서 현지 연극인에 의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공연이 무대에 오른 것이다.

    폴란드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닮은 역사적 맥락이 있다.

    남산예술센터는 내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해 양국에서 제작한 공연을 교류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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