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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시도해야죠, 닿지 않고 노력만 남을지라도"



공연/전시

    "계속 시도해야죠, 닿지 않고 노력만 남을지라도"

    [노컷 인터뷰] 연극 '키스' 신재훈 연출

    2015년부터 세월호를 기억하는 동시에 현재진행형의 참사로 인식하고자 기획초청공연을 해온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이 올해는 세월호와 관련 없이 쓰인 고전을 원작으로 10주간 세월호를 이야기한다. 이 역시 세월호를 기억하고 사유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세월호로 우리의 세계가 재구성되었듯 이전 창작물 역시 '세월호'라는 관점을 통해 재구성하는 시도이다. 공연을 마친 뒤 연출에게 직접 들은 뒷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세월호는 '그곳'에 있는데, 달라진 건 당신일지도" - 연극 '벡사시옹+10층' 윤혜진 연출
    ② "'세월호'는 기억하면서, '남은 자'는 잊지 않았나" - 연극 '행복한 날들' 송정안 연출
    ③ "그래도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일은 그만두어야" - 연극 '광인일기' 김수정 연출
    ④ "계속 시도해야죠, 닿지 않고 노력만 남을지라도" - 연극 '키스' 신재훈 연출
    (계속)

    연극 '키스'. (사진=전진아 제공)

     

    2015년이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며칠 앞둔 4월의 어느 날,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이 노란 잠바를 입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필이면 그날 날씨가 너무 맑았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그들 뒤로 청와대가 너무도 또렷이 보였다. 나의 시선은 그들을 향하려 했지만, 결국은 그들 뒤에 보이는 청와대를 향했다.

    가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청와대 앞으로 행진하려 했지만, 번번이 가로막혔다. 그들이 멈춰선 광화문 광장 북측에서 청와대는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그래서였을까, 더 화가 났고, 더 허무했다. 눈에 보이는데 닿지 않는 건 그런 기분이었다.

    윤영선 작가의 <키스>(1997)는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감우성 분)과 공길(이준기 분)이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라는 대사로 널리 알려진 희곡이다.

    서로 닿지 않지만 다가가려는 너와 나의 노력을, 원작에서는 키스로 표현한다. 안타깝게도 그 키스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저 닿으려는 노력만 남는다.

    '나, 너, 여기, 거기, 너, 나, 거기, 여기' 등의 말장난 같은 말의 반복은 보는 이들에게 처음에는 답답함을, 곧 이어 분노를, 결국은 닿지 못함에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연극 '키스'. (사진=전진아 제공)

     

    윤 작가의 <키스>를 세월호의 관점으로 재구성한 신재훈 연출의 연극 '키스'는 닿을 수 없는 관계의 안타까움과 분함 그리고 허무함을 원작과 같은 방식으로 전달한다.

    다만 한 가지 추가된 점이 있다면, 여자에게 '끝내 닿을 수 없음'에 허무해진 남자에게 '닿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새 인물이 등장하는 것으로 극이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참사 이후 4주년이 지나도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는 남아 있고,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 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닿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비록 닿지 않고 노력만이 남을지라도. 이 고통은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다. 그러니 잠시 머물러서 다가가자" 고 신 연출이 강조하는 것이다.

    다음은 신재훈 연출과의 1문 1답.

    신재훈 연출. (제공 사진)

     

    ▶ <키스> 작품을 선택한 계기는.
    = "원작은 윤영선 작가의 <키스>(1997)이다. 원작에서는 남녀가 서로 사랑을 얻기 위해, 끊임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으로 닿으려고 시도하지만, 결국은 닿지 못하는 내용의 반복이다. 서로 갈망하지만 닿지 못하는 연인을 '미수습자'와 '미수습자 가족 혹은 애인'으로 가정해, 서로 닿을 수 없는 인물 관계로 설정했다."

    ▶ 연극은 원작을 어떻게 각색했나.
    = "원작은 3장면인데, 연극은 4장면으로 구성했다. 앞서 3개 장은 '세월호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우리는 말하지만, 어쩌면 바다 안에 있는 미수습자들은 모르지 않을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했다. 미수습자들을 인격체로 가정하면, 그분들은 '이런 일이 왜 발생했는지, 무슨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는지 모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는 '잊지 않겠다'는 우리의 말이 낯선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극은 두 사람의 관계를 부부로 설정했다. 남편은 떠난 아내가 생전에 남긴 '에이, 씨팔'이라는 말을 계속 추적하는데, 결국은 닿지 못한다.

    이어 4장에서는 부부 말고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 괴로운 분들에게 필요한 건 우리의 관심과 위로이지 않을까 싶어 추가한 장면이다. 남편이 여자(아내) 옷을 입고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때 새 인물이 '너와 내가 같이 있다'며 계속 닿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수습자들과 가족들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방법이 그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닿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연극 '키스'. (사진=전진아 제공)

     

    ▶ '거의 아무 것도 없다' 할 정도로 최소화한 무대에서, 눈에 띄는 유일한 소품이 시계이다. 어떤 의미인가.
    = "세월호가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객관적인 시간 8시 50분경으로 시계를 멈추어 놓았다. 저 시간으로부터 남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시계에 조명이 비칠 때가 있는데, 남자가 여자를 생각하는 장면이나 캐리어에서 물건을 꺼낼 때이다. 캐리어는 여자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다."

    ▶ 남자 역은 그대로 두고 여자 역만 바뀌는 식으로 구성했다. 같은 역할인데도 다른 인물이 연기하는 이유가 뭘까.
    = "참사가 일어난 순간 여자는 다른 사람이 됐다고 상상을 했다. 미수습자분들에게는 참사가 일어난 순간부터 시간이 멈춰있지는 않을까 싶었다. 때문에 기억하고자 했을 때 뭘 기억해야 하는 걸까, 다른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참사 이후 아직 수습되지 못한 분들은 그런 의미에서 다른 인물일 거라 생각하고 배우를 분리했다. 우리가 상상한 내용이 괜객에게 잘 읽힐지는 모르겠다."

    연극 '키스'. (사진=전진아 제공)

     

    ▶ 세월호 참사에서 연출이 '미수습자'에 유독 천착하는 느낌이다.
    = "세월호 참사가 많은 사람을 바꿔냈다. 정권을 바꾸는 데도 기여했고, 기억을 통해 큰 의미화가 이루어졌다. 물론 이 참사의 진상 규명 등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많지만, 그런 의미화 전에 최소한 아직 뭍으로 나오지 못한 분들의 안타까움이 먼저 떠올라야 하고, 그분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분들이 인격체로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라는 질문이 계속 들어서 이렇게 구상을 했다."

    ▶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관객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사회적 참사는 그동안 계속 있었는데, 세월호가 달랐던 건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의미화시켜 곱씹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고통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구나', '그게 가까운 사람일 수 있구나'를 느꼈다. 안산만 가도 볼 수 있지 않나. 그러니 우리가 잠시 머물러서 관심을 갖고 고통을 느끼려고 노력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비록 닿지 않고 노력만 남을지라도."

    ※ 4주차 공연 '키스'는 13일부로 공연이 끝났다. 5주차인 이번 주에는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링크)가 5월 17일부터 20일까지 대학로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한다. 1만 원~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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