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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도 시청자도 울었던, '무도'의 짠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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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멤버도 시청자도 울었던, '무도'의 짠한 순간들

    [굿바이 무도-희로애락 ④] '우토로마을'과 '봅슬레이'

    4726일(12년 346일). 2005년 4월 23일 '무모한 도전'으로 첫 시작을 알린 후 '무한도전'이 우리와 함께한 시간입니다. 스스로를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고 부른 멤버들의 도전은 대한민국 예능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무한도전'을 떠나보내며, 희로애락의 순간 일부를 모아봤습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라는 노랫말처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굿바이 무도'-희로애락] '유재석·김태호'로 본 '무한도전'의 시작과 끝
    ② [굿바이 무도-'희'로애락] 단체대상·법안발의·우표발행…'무도'만의 빛나는 순간들
    ③ [굿바이 무도-희'로'애락] 음주운전부터 김치전까지…'무도' 웃지 못할 '흑역사'
    ④ [굿바이 무도-희로'애'락] 멤버도 시청자도 울었던, '무도'의 짠한 순간들
    ⑤ [굿바이 무도-희로애'락'] "우리에게 '무도가요제'는 'OO'이다"
    끝.

    ◇ 배달의 무도 - 우토로마을 (2015. 09. 05)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우리가." 유재석이 고개숙인 채 울먹이며 남긴 이 한 마디가 당시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이었다.

    일제시대 조선인 1300여 명이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징용되면서 생겨난 일본 '우토로마을'.1945년 해방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이들은 공사장 막일을 하거나, 폐품과 고철을 팔며 삶을 연명했다.

    조선인들만 사는 곳이었으니, 일본 정부로부터 극심한 차별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수도시설이 없어 우물을 파야 했고, 지대가 낮아 비만 오면 침수가 될 정도로 낙후됐다.

    그럼에도 50년을 살면서 우토로마을은 어느새 이들의 고향이 됐다. 하지만 1987년 일본 정부는 이곳을 주민 모르게 매각했고, 주민들은 강제 퇴거 위기에 몰린다. 이 소식을 들은 한국민들과 재일교포들이 성금을 모아 우토로마을 주민들에게 전달했고, 이 돈으로 일부 땅을 사 15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이날 유재석과 하하가 우토로마을을 찾았고, 유일하게 남은 1세대인 강경남 할머니를 만난다.

    하하는 할머의 고향 용현면의 영상과 사진을 준비해갔고, 영상과 사진을 본 할머니는 8세 때 일본 땅으로 건너왔음에도 눈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지만, 이 사진을 보고 죽는다면 편안히 눈감을 수 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우토로마을과 강경남 할머니를 통해 사과받지 못한 한국 근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 방송이었다.

    한 주 뒤 무한도전은 하시마섬(군함도) 편을 방송했다. 조선인 수만 명이 강제 징용돼 강도 높은 노동 속에 죽어간 곳이었다. 그렇게 무한도전은 예능의 영역을 벗어나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전했다.

    ◇ '무한도전, 봅슬레이에 도전하다'(2009.01.24~02.07)

    "형, 수고했어.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 (정형돈). 무한도전은 그간 여러 스포츠 특집을 진행했는데, 그중 가장 영향력도 컸고, 감동을 줬던 특집을 꼽으라면 바로 '봅슬레이'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앞서 2007년과 2008년에 '셀 위 댄스', '에어로빅' 특집이 각각 있었고, 고된 훈련을 진지한 자세로 임하는 멤버들의 모습 덕에 시청자들이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간의 특집은 리얼리티라는 측면에 집중해 연습과정과 결과물만을 반복해 보여주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봅슬레이 편은 결과보다는 과정 속에서 멤버들이 갈등하고 화합하는 장면이 여과없이 보이면서, 도전에 대한 진짜 의미를 되짚는 특집이 됐다.

    이 특집을 위해 멤버들은 4개월 여를 훈련한 끝에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전에 정식으로 출전했다. 결국 국가대표에는 선발되지 못했지만, 최종 연습 때보다 1초 이상 기록을 단축해냈다.

    (방송화면 캡처)

     

    마지막 도전에는 박명수, 정준하, 유재석 등 팀 내 최고령자 3인이 도전했다. 전진과 정형돈은 각각 어깨와 허리를 다쳤고, 노홍철은 타 방송 스케줄로 참여하지 못했다.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자책감을, 경기에 뛰는 멤버들은 부담담이 가득했다.

    ‘형’들이 무사히 완주하자 결승점에서 기다리던 정형돈은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몸이 아파 제 역할을 못한 데 따른 자책감과 안도감이 뒤섞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것이다. 박명수 역시 “나 원래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정말 울지 않을 수가 없다”며 다른 멤버들과 얼싸안고 감동을 나눴다.

    무한도전이 전한 도전의 진짜 정신과 팀웍, 그리고 열악한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의 전지훈련비를 제작비로 지원했다는 뒷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비인기종목이었던 '봅슬레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졌다.

    '무한도전'이 뿌린 씨앗은 이번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시아 최초로 은메달을 딴 봅슬레이 국가대표팀 전정린 선수가 "'무한도전'을 보고 도전이라는 정신이 좋아서 봅슬레이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축전을 통해 "전 선수에게 영감을 준 '무한도전' 팀에도 감사드린다"고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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