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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내게 초심 알려줘”



공연/전시

    정선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내게 초심 알려줘”

    [노컷 인터뷰] 뮤지컬 배우 정선아

    뮤지컬 배우 정선아가 1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지난달 초부터 한국에서 초연 중인 러시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옥주현과 함께 주인공 안나 역에 더블 캐스팅된 배우 정선아는 이 작품이 자신의 배우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고 꼽는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 한 눈 팔지 않고 뮤지컬 외길 인생을 걸어오며 수많은 주인공을 꿰찬 17년차 중견 뮤지컬 배우에게 ‘안나 카레니나’는 어떻게 초심을 깨우쳐준 걸까. 지난달 26일 이태원 한 카페에서 배우 정선아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공연 시작한 지 3주차이다. 소감은.
    = 음악, 무대, 조명 등 지금까지 뮤지컬과는 다른 특별함을 느낀다. 러시아 뮤지컬은 지금까지 접한 것들보다 선이 굵고 강렬함이 크다.

    ▶ 국내 첫 소개되는 러시아 뮤지컬이라 관심들이 많다. 배우 입자엥서는 러시아 스태프와도 처음 호흡 맞추는 거다. 다른 점이 있다면.
    = 직설적인 편이다. 연출(알리나 체비크)이 배우들의 감정 상하지 않게 하려고 좋게 얘기하려는 게 보통이다. 아니면 통역을 통해 순화되곤 하는데, 러시아 연출은 직설적이고 강하다. 그분을 통해 ‘안나’에 다가가고 있다.

    ▶ 연출을 통해 영감을 받았다니, 의외다.
    = 책이나 영화로도 ‘안나 카레니나’를 봤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러시아라는 나라와 러시아인에 대한 감각을 스태프들을 보며 느낀다. ‘러시아인은 감정이 풍부하고, 앞뒤 다름 없이 솔직하구나’, ‘보드카처럼 뜨겁고 열정적이구나’ 등. 저들을 보면서, 그래서 안나가 이토록 감정에 솔직하구나를, 밖은 춥고 눈이 내리는 겨울인데 반해, 내면은 여름처럼 뜨겁구나를 느꼈다.

    뮤지컬 배우 정선아가 1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 작품 연습 들어가기 전에 공부도 많이 했다던데.
    = 한 여자 일생에 대한 이야기, 거기에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톨스토이의 작품인지라 책임감이 들었다. 또 러시아 뮤지컬은 처음이니까 더 부담도 됐고. 러시아에 직접 가서 공연도 보고, 우리나라에 나온 책도 버전대로 다 읽고, 그림도 봤다.

    ▶ 공연 전에 항상 그림을 보나.
    = 예술은 다 통한다고 생각한다. 고상한 취미가 아니다. 작은 색채 하나에서도 영감을 얻는다. 음악이나 방송, 그림 하는 친구들에게도 공연을 보러 오라고 한다. 장르가 달라도 예술 하는 사람에게는 알게 모르게 스며들듯 통하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 러시아에서 직접 본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어땠나.
    = 트리플 중 더블을 봤는데, (러이사어 공연이라) 못 알아들었다.(웃음) 안나 역 배우들의 대사나 노래하는 톤이 허스키한 저음이라 놀랐다. 미국과는 다르다. 깊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매력적으로 본다. 노래는 어렵게 안 들렸는데, 막상 부르니 음이 무척 높았다. 그동안 귀엽고 사랑에 빠진 철없는 역할 많이 했는데, 이번엔 가슴 속 밑에서 나오는 묵직한 소리를 공부하고 있다. 하면서 나에게 이런 저음이 있었구나를 느낀다.

    ▶ 안나의 노래가 난이도가 높긴 높더라.
    = 고음과 저음을 수시로 오간다. 그런데 체력적으로는 다른 작품보다 쉽게 하고 있는 편이다. 다른 작품은 노래를 잘해서 박수 받아야지 하는 느낌인데, 이건 가사를 연기 대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사를 더 정확하게 잘 전달하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고, 노력 중이다.

    뮤지컬 배우 정선아가 1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 러시아 연출에게서는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나.
    = 싸운 거랄까.(웃음)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연습이라 서로 부딪히기도 했다. 편히 하는 방법이 있는데 한 단계씩 빼놓지 않고 하더라. 몸도 힘들고, 답답하기도 해서 울기도 했다. 그때는 이런 게 도움이 될까 했는데, 막상 공연 올라가고 나서는 왜 그렇게 했는지 알게 됐다. 연습을 얼마나 혹독하게 했는지, 보통 떨리는 첫 공연이 하나도 안 떨렸다.

    ▶ 연습 과정을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달라.
    = 보통 아침부터 연습하면 좀 쉬엄쉬엄 할 수 있다. 연습이라고 해도 모든 감정을 쏟지 않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게 없었다. 마치 온 몸을 쥐어짜서 수분을 다 바닥에 쏟아내는 느낌이랄까. 사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다시 한번 배우로서 초심을 깨우쳤다.

    ▶ 연습하며 제일 신경 쓴 게 있다면.
    = 드라마다. 노래가 16곡인데, 고음과 저음을 오가니 어렵다. 보통 뮤지컬은 한 곡을 부른 뒤 박수를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진다. 하지만 이 작품은 노래를 포기했다고 할 정도로 드라마에 집중한다.

    ▶ 노래 후 박수를 받는 시간이 나름 숨을 고르는 시간이기도 한데, 안나는 그런 게 없이 바로 이어지더라.
    = 그래서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이런 뮤지컬이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1막 마지막까지 다른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안나에 빠져 연기한다. 노래 끝나고 박수를 받는 경우가 없다. 바로 감정선이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작곡가가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다고 본다. 쉴 틈이 전혀 없는데 신기하게도 힘들다는 느낌은 안 든다. 노래보다 연기에 집중하기 때문인 것 같다.

    뮤지컬 배우 정선아가 1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 안나 통해 초심을 깨우쳤다고 했다. 뮤지컬 인생 이야기를 해보자. 배우로서 15년 이상을 쉬지 않고 활동했다.
    = 입에 발린 말일 수 있는데,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옆에서 도와주고 무대 위에서 함께 해준 동료와 선후배님들 덕이다. 예전에는 ‘내가 잘해서’라고 어리게 해석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뮤지컬은 합동 작업임을 깨닫는다. 내게 이 보석같은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포트해주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또 비싼 돈 들여 오시는 관객들에도 감사하다.

    ▶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었을 텐데.
    = 오늘은 몸이 좀 힘드니까 살살하자는 생각도 들법한데, 그럴 때마다 마음을 가다듬기 노력한다. 나에게는 매일하는 작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에 한번일 수 있다. 또 사랑하는 사람과 뮤지컬을 보러 오는 분들께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 이 길이 아니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 그래도 뮤지컬 배우로서 물음표가 생긴 적은 없나.
    = 당연히 있다. 힘들어서라기보다 행복하지 않아서였다. 꿈꾸던 것을 성취했고, 이 일로 돈도 벌고 있는데, 뭔가 행복하지 않았던 때가 있다. 뮤지컬 배우는 내가 어릴 때부터 꾸던 꿈이었다. 그 꿈을 잡았는데, 행복하지 않아 왜 이럴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감사하고 고맙다.

    뮤지컬 배우 정선아가 1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 작품에 대한 평이 많이 갈린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무대나 의상 등 볼거리 풍부하다는 호평을 받는 반면, 불친절하다는 혹평도 있다.
    = 거대한 스토리를 2시간 30분 안에 담기는 힘들다. 영화나 책에도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다. 뮤지컬은 사랑에 대한 안나의 감정을 현미경으로 보듯 세밀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나도 어떤 부분은 관객에게 조금 더 친절히 이해를 시켜주면 좋겠다고 느끼는 지점도 있지만, 사랑에 대한 느낌들을 극대화시킨 게 뮤지컬만의 장점이라고 본다.

    ▶ 열차에 몸을 던지는 안나의 마지막 선택은 개인 정선아로서 이해가 가나.
    = 이해를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 역할을 하면, 안나의 여정과 결정을 따라야 한다. 그녀의 눈으로 봐야하는 게 있다. 배우로서 그 텍스트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나가 겪는 사랑과 불행 그리고 죽음까지, 그 모든 여정을 함께하는 것뿐이다.

    ▶ 안나를 죽음으로 이끈 건 뭐라고 생각하나.
    = 연출이 내게 ‘왜 안나가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까’를 물었었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했는데, 홀로 남겨지면서 자신에게 남은 것도, 갈 곳도 없다는 불행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 안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건 사랑과 죽음뿐이었다. 그 중 사랑을 잃었으니 죽음밖에 남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선택했다. 물론 왜 두 가지 기로밖에 없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공연을 하면서 안나의 삶에서 중요한 게 그 두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 연출은 포기라고 말 안 한다. 안나에게 세상에서 숭고한 것은 사랑과 죽음뿐이었다. 그런 안나에게 사랑이 없어졌으니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매회 열차에 뛰어들고 있는데 나는 안나가 슬프다고 생각지 않는다.

    ▶ 안나와 정선아는 비슷한가.
    = 다르다. 나는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아무리 명예를 얻고 돈을 번다 해도 행복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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