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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자' 강헌, 개인과 시대의 운명을 조율하다



책/학술

    '명리학자' 강헌, 개인과 시대의 운명을 조율하다

    신간 <명리- 운명을 조율하다:심화편>

     

    만인의 명리학자화(化)를 꿈꾸는 강헌이 기초편에 이어 <명리-운명을 조율하다:="" 심화편="">을 출간했다.

    심화편은 기초편에서 다진 기본기를 바탕으로 독자가 자신과 타인의 성정과 욕망을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운명을 깊이 있게 분석할 수 있도록 한다.

    심화편은 문재인에서 서태지까지, 국내외 정치인·기업인·방송인·작가·예술가 등 180여 명에 이르는 유명인과 일반인의 실제 명식 풀이를 담고 있다. 2017년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상당수 인물의 명식 해설도 만날 수 있다.

    강헌은 미래를 예측하고 있는가. 아니다. 명리학을 바탕으로 각 인물을 분석하고, 그들 사이의 관계와 흐름을 읽어냈을 뿐이다. 그는 명리학이 세속의 실용학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욕망을 분석하고, 인간관계의 조화와 충돌을 읽어내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명리학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존립 근거를 지닐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인간 성정의 특성과 욕망의 지도를 읽고자 하며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소명과 잠재력을 가장 아름답게 꽃피울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고자 하고, 나아가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효율적인 준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명리학에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진정 궁금해 하고 고민하며 제시할 질문은 ‘어떤 선택이 합리적이고 정의로운가’, ‘지금의 결정이 다음 순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강헌은 기초편에서도 강조했듯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명리학은 인간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운’과 주어진 ‘명’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어나가도록 돕는 학문이다. 따라서 명리학이 미래를 읽을 수 있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과장이며 거짓말이다. 인간의 자기결정성을 배제한, 부패한 독선일 뿐이다. 명리학은 그렇게까지 위대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는 삶의 많은 순간 실수를 저지르고 잘못된 판단을 하며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배신당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결정해야 하며, 결정의 주체인 개개인을 사랑하고 존엄한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명리학은 동양의 오랜 시간과 광활한 공간 속에서 임상을 통해 우리가 최선의 결정을 하는 데 참고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는, 최선의 부교재일 뿐이다.

    막비명야(莫非命也). 무릇 ‘명’(命) 아닌 것이 없다. 명리학에서 중요한 것은 ‘운’(運)과 ‘명’의 조화다. 사주(四柱)와 팔자(八字)로 이루어진 원국에서 우주로부터 부여받은 ‘명’이 그 사람의 본질이라면, ‘운’은 명이 시시각각 조우하는 현실적 조건이다. 명리학에는 타고난 기질과 그 기질이 수행해야 할 소명뿐 아니라 소명의 주체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과 조건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강헌은 음양오행에 기반을 둔 명리학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서 적용되는 첫 단계는 바로 명리학적 관점에서 보는 개인의 성격에 대한 고찰이라고 말한다. 대개 여기서 처음으로 명리학적인 설득력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음양과 오행만으로도 나의 생각과 마음, 천차만별인 타인들의 반응과 선택, 그리고 그로 인한 인간관계들의 얽힘과 설킴을 학문적 원리에 따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심화편을 통해 음양과 오행의 성격과 원리를 파악하고 천간과 지지, 십신과 십이운성, 신살, 용신과 대운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이른다면 명리학을 자기 삶의 내비게이션으로 톡톡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명리학이 더더욱 매력적인 것은, 더 많은 통찰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한 개인의 범주를 벗어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규명하고 해석하는 문을 열어준다는 데 있다. ‘궁합’(宮合)이라고 부르는 남녀론은 정통적인 명리학 에서는 존재하지 않았고 세속의 역술가들의 지극히 도식적이거나 자의적인 영업 비전(秘典)으로 암약해왔는데, 이 또한 폐해가 만만치 않았다. 누가 누구를 잡아먹는다는 식의 폭력적인 논리로 멀쩡한 연인 사이를 파괴하고 부모 자식 간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데 일조해왔다. 한 사람의 가능성도 무한한데 두 사람이 빚어내는 화학작용의 가능성은 얼마나 광대하겠는가? 이것을 여덟 글자의 틀로 규정하려 든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만용이다. 궁합을 넘은 인간관계론이야말로 명리학이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야 할 분야다. 인간의 상처와 고통, 기쁨과 행복, 성취와 좌절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에 말미암기 때문이다.
    - ‘PROLOGUE 명리, 인간의 욕망 지도를 읽다’에서

    오행별로 목은 신맛, 화는 쓴맛, 토는 단맛, 금은 매운맛, 수는 짠맛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목이 용신이면 신맛이 나는 음식을 즐겨 먹는 것이 좋은데, 특히 솔잎순식초가 효과가 좋다. 하지만 자신에게 필요한 음식 만 골라서 섭취하는 것은 좋지 않고, 건강을 위해 조화와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몸이 원하는 것을 찾는다. 식사 후 자주 탈이 나거나 불편함을 느낀다면 자신의 식생활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오행별 음식의 종류와 자신의 음식에 대한 선호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임상적으로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에게 필요한 기운의 음식을 적절히 섭취하고 있는지, 혹은 자신에게 과다하거나 불필요한 음식을 단지 선호한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섭취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인지할 수 있다.
    - ‘제7강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에서

    사실 왕의 운명은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삶,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삶이라는 점에서 거지의 운명과 같고, 그래서 그 과정과 결과가 다를 뿐 왕과 거지의 명식은 다를 바 없다. 어떤 사람의 원국을 보고 “크게 될 왕의 명식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평생 빌어먹을 거지 팔자네요”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같다는 소리다. 하지만 우리는 토 신강의 사주를 볼 때 군왕, 제왕의 사주만을 기억한다. 그것은 거지의 삶이 자족적이며 걱정 없는 삶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동의와 상관없이 자분자족하며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사는 거지가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직업에 명리학적인 틀을 적용할 때는 이런 극단적 양면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고 세속적인 잣대나 사회적 편견이 끼어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구체적인 직업에 대해 명리학적으로 접근할 때는 보다 치밀하고 성숙한 프레임을 가지고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상담하는 과정을 통해 상담자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에 대해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
    - ‘제8강 하고자 하는 바, 기운의 발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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