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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소설, 성(性)을 교환하며 살아가는 소녀들의 생존 방식



책/학술

    김봄 소설, 성(性)을 교환하며 살아가는 소녀들의 생존 방식

    소설집 '아오리를 먹는 오후'

     

    2011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소설가 김봄의 첫 번째 소설집 '아오리를 먹는 오후'가 출간되었다.

    소설집 '아오리를 먹는 오후'에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상 궤도를 자꾸만 이탈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나이는 대부분 십 대로, 어른의 입장에서 ‘문제아’, ‘비행 청소년’이라고 편하게 묶어 부르는 존재들이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골치 아파하고,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치워 두고 싶어 한다. 눈앞에 띄지만 않으면 좋을 존재들. 김봄의 소설은 그들을 눈앞으로 불러낸다. 무자비하게 속도를 즐기는 오토바이 폭주족부터(「내 이름은 나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강간하는 히키코모리 소년(「문틈」), 조건 만남으로 돈을 벌고 파트너를 돌려 가며 섹스하는 가출 청소년 집단(「절대온도」)까지, 작가는 영리하고 예쁜 아이들만 보고 싶어 하는 세상에 소년 범죄자들의 만행을 핍진하게 기록한다. 이때 자신들의 범죄와 일탈을 털어 놓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담담하기 그지없다. 독자들은 그들이 들려주는 폭력의 장면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목소리 뒤에 숨은 비정하고 무책임한 어른들의 모습까지 보게 될 것이다.

    성(性)을 교환하며 살아가는 소녀들의 생존 방식
    소속되거나 기입된 곳 없는 아이들이 모여 만든 폭력의 세계. 그들끼리의 질서를 갖춘 이 세계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또다시 그 속에서 약자가 된 여자아이들이다. 어른들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여자’라는 성별을 지닌 이들은 더한 약자로 나타난다. 힘없고 “깡”만 있는 소녀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비슷하다. 폭력의 세계에서 남자아이들처럼 직접 내지를 주먹이나 휘두를 권력이 없는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성(性)을 교환하여 자리를, 생존을, 애정을 얻는다. 남자아이들의 “내 꺼”가 되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여자아이들의 방식은 그들이 폭주족 무리 안에 있든, 공평하게 돈을 걷어 월세 방을 얻은 “팸”에 있든 모두 흡사하다. 작가는 사회의 무관심과 보호자의 부재로 인해 ‘문제아’로 낙인찍혀 고립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는 와중에 유독 폭력의 먹이사슬 최약층에 있는 여자아이들의 모습에 주목한다.

    왜 하필 아이들인가? 김봄의 소설 속 십 대 화자들은 2000년대 초 한국소설에 등장했던 김애란이나 김영하의 발랄하고 가벼운 유형의 십 대 화자들과는 다르다. 입체적인 성격이나 특별한 역사 없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저 진술하는’ 아이들. 이 당혹스러운 아이들은 그야말로 현재의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유도 모른 채 강요당한 신분 상승과 계급의 중요성을 이제는 아이들이 먼저 내면화하는 시대. 소설집 '아오리를 먹는 오후' 속 ‘나쁜 아이들’은 바로 그 가치만을 주입시킨 무책임한 어른들에게 되돌려 주는 무시무시한 아웃풋(output)이다. 주체 없는, 유령 같은 아이들을 조명함으로써 볼 수 있는 더 무서운 그림자는 바로 비정한 어른들의 태도다. 김봄의 소설집 속 어린 화자들의 목소리는 습관적으로 아이들에게 미래란 좋은 대학과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말해 온 어른을 향해 울리는 사이렌이 될 것이다.

    수록 작품 중 일부 소개

    내 이름은 나나 : 그녀의 이름 ‘나나’는 수완이 붙여 준 이름이다. 수완의 오토바이에 매달려 속도를 즐기는 것이 인생 전부의 쾌락이자 의무이다. 한바탕 폭주를 돌고 돌아온 그날 밤 등장한 경찰 ‘김 반장’은 폭주족 아이들을 전부 통제하며 수완과 나나 사이에 갈등을 지펴 놓은 채 떠나고, 다시 날은 밝아 온다.

    아오리를 먹는 오후 : 풀숲에 누워 시간을 헤아리는 소녀가 있다. 소녀가 기억하는 시간은 하굣길의 시간이다. 엄마의 애인인 삼촌이 데리러 왔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드라이브를 했다. 삼촌은 다리 한가운데에 차를 세우고 소녀와 함께 웃고, 그러다가 점점 소녀에게 몸을 붙여 왔는데, 그 이후 소녀는 지금까지 혼자다. 혼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문틈 : 어느 저녁, 중년 남자 두 사람이 거실에 마주 앉아 서로의 아들과 딸의 문제를 상의한다. 소년은 아주 좁은 문틈으로 그 대화를 엿듣는다. 소년은 눈 오는 새벽, 비밀스러운 외출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녀를 만났다. 사는 게 재미없다는 이유로 끝까지 가 버린 소년. 소년이 닫혀 있던 그의 방문을 열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RELNEWS:right}

    김봄 지음 | 민음사 | 288쪽 | 12,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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