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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되세요'로 탈출구 찾던 우리, 자살률 고공행진 불렀다"



책/학술

    "'부자 되세요'로 탈출구 찾던 우리, 자살률 고공행진 불렀다"

    노명우 "1997년과 98년 사이 치솟은 자살률…개인 아닌 시대로 눈 돌려야"

    (사진=자료사진)

     

    "1998년 이후 요지부동인 자살률은 병든 사회가 진단과 처방을 간절히 바라며 사회에 보내는 알람이다. 하지만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사회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성장을 향해 앞으로 돌격!'만을 소리친다. 국가는 청진기를 들고 병든 사회가 뱉어 내는 고통의 소리를 경청해야 함에도, '경쟁 또 경쟁!'을 확성기를 동원해 세뇌시키기에 바쁘다." - 노명우 저 '세상물정의 사회학' 중

    매년 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로 얼룩진 한국 사회. 우리네 일그러진 초상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그려지기 시작했을까.

    아주대 사회학과 노명우 교수는 저서 '세상물정의 사회학'(사계절·2013) 중 '그리고, 자살은 계속되고 있다' 챕터를 통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작은 비극들 간의 관계에 눈 뜨는 순간, 우리는 섬뜩한 의문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개개의 자살들이 모여 빚어내는 관계는 인구 10만 명당 자살 건수를 나타내는 자살률에 흔적을 남긴다. 자살률은 설명해야 할 대상이자 커다란 진실을 담고 있는 틀이다. (중략) 하지만 개개의 자살을 이어 하나의 별자리를 그리기 위해서는 한 개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로 눈을 돌려야 한다." (173쪽)

    노 교수에 따르면, 1987년 이후 한국 자살률의 추이를 봤을 때 석연치 않은 사실이 발견된다. 1987년 한국의 자살률은 19.67명이었다. 1987년부터 1997년까지 자살률은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극적인 변동 없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1997년 19.69명이었던 자살률은 1998년 돌연 26.69명까지 치솟았다.

    그가 "대체 1997년과 1998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라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경제위기와 만난다. 1997년 5.8퍼센트였던 경제성장률이 1998년 마이너스 5.7퍼센트로 급추락할 정도로 한국을 엄습한 경제위기는 대단했다. IMF라는 기호는 저승사자와도 같았다. 가족은 해체되었고 노숙자는 늘어났고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한국인들의 오래된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경제 성적표'와 '고도성장'이라는 박정희 시대 이후 신념화된 믿음은 충돌했다." (175, 176쪽)

    ◇ "자살을 개인의 비극으로만 해석하는 사회는 방법 찾아낼 수 없다"

    세상물정의 사회학ㅣ노명우ㅣ사계절

     

    "여러분 부자 되세요. 꼭이요!" 1990년대 말 시작된 절망의 시기에 큰 인기를 얻은 광고 문구다. IMF 관리체제에서 사람들은 이 '덕담'에서 탈출구를 찾았다는 것이 노 교수의 진단이다.

    "높은 경제성장률이 빈곤은 치료할 수 있지만, (커진 욕망과 좌절된 욕망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아노미적 상황에서 자란 박탈감은 성장률로 다스릴 수 없다. 돈 벌기가 유일한 삶의 목적인 사회, 승리만 한다면 과정의 정의로움은 묻지 않는 사회, 이유는 모르는 채 경쟁만 해야 하는 사회, 승자는 있는데 명예는 땅에 처박힌 사회는 아노미라는 중병을 앓는다. 사회가 아노미의 상태에 빠지면 사회 속의 개인 또한 아노미적 상황에 감염된다. 사회가 병이 들면 개인도 병이 들기 마련이다." (177쪽)

    앞서 언급했듯이 노 교수는 "1998년 이후 요지부동인 자살률은 병든 사회가 진단과 처방을 간절히 바라며 사회에 보내는 알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가의 의무를 역설한다.

    "국가는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사실'을 해석할 의무를 지고 있다. 학자는 자살률을 설명하지만, 자살률을 낮출 수 있는 방법 찾기는 국가와 정책입안자의 몫이다. 만약 이들이 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자살방조죄로 기소되어야 하며, 또한 그들을 기소하지 않은 사회는 범인은닉죄로 고발되어야 한다." (180쪽)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노 교수는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자살을 대하는 우리 사회와 언론의 추악한 민낯을 들춰내고 있다.

    "사회학이 자살 속 '사회적 사실'을 설명할수록 사회학자는 무기력감에 빠진다. 사회학자의 설명은 모든 일이 일어난 이후의 '사후약방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감행한 자살의 집합체인 자살률이 세계 1위에 도달해도 심각성을 따지지 않던 언론은 유명인이 자살하면 그때서야 '베르테르 효과'를 입증할 자살들을 찾아낸다고 요란을 떨고, 전문가에게 자살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한다. 사회학자가 아무리 열심히 1987년 이후 높아진 '사회적 자살'을 설명해도, 자살을 '사회적 사실'로부터가 아니라 개인의 비극으로만 해석하는 관습에 빠진 사회는 자살률의 고공 행진을 멈추기 위한 방법을 찾아낼 수 없다." (180,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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