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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맛] 삼계탕 집 사장님은 땡볕에서 주차관리 중



생활/건강

    [장사의 맛] 삼계탕 집 사장님은 땡볕에서 주차관리 중

    '호수 삼계탕' 백운기 사장

    외식시장의 전설로 불리는 사장님들이 들려주는 '장사의 철학', 그들의 이야기가 "장사나 해 볼까?" 생각하는 창업 꿈나무들과 장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700만 자영업자들에게 장사의 대한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칼럼을 시작한다. [편집자 주]

    3일 후면 초복이다. 삼계탕 한 그릇 먹기 위해 작렬하는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혹자는 현대인은 영양과잉이라 보양식이 불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복달임은 이제 보양식이 아니다. 그것은 축제다. 설날 떡국을 먹고 동짓날에 팥죽, 추석에는 송편을 먹으면서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축제 같은 것이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 하나의 메뉴로 승부하라

    서울에서 3대 삼계탕 집으로 꼽히는 집이 있다. 다른 집은 전기구이 등 닭 관련 음식이 종종 있는데, 이 집은 1년 365일 삼계탕 하나뿐이다. 바로 들깨 삼계탕으로 유명한 '호수 삼계탕'이다. 고소하면서도 걸쭉한 들깨 국물에 영계 한 마리가 퐁당! 빠져 있다. 비위가 약해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들도 즐겨 먹는단다. 나야 뭐, 삼계탕이 어떤 오장육부의 비위를 건드리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쳐 들깨 삼계탕 메뉴 하나만으로 명소가 된 호수 삼계탕의 위치는 유동인구가 적은 신길동 주택단지다. 소위 '목 좋은 곳'이 식당의 절대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곳이다.

    물론 이 집이 나름대로 궤도에 오른 것은, 인터넷 문화가 생기면서부터다. 음식을 찾아다니면서 먹고, 사진도 찍어서 sns에 올리고, 또 주소만 있으면 쉽게 찾아갈 수 있게 되면서부터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명물로 자리 잡은 많은 식당들은 오히려 '여기서 장사가 되겠어?'라는 의문이 드는 자리에서 시작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 많은 경험이 약이 되고 피가 된다

    좋을 호(好), 받을 수(受)란 명칭으로 개업한 호수 삼계탕은 백운기 사장의 아버지인 고 백남웅 씨가 1990년 창업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했고 연탄 배달부터 파지 줍는 일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삼계탕 집을 하기 직전에는 남대문 시장에서 우동 장사를 했다. 운 좋게 일본 현지인에게 우동 만드는 법을 배웠는데, 새벽시장에서 이 우동 집을 찾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돈을 조금 번 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일이 필요하다고 느낀 백남웅 씨는 세 들어 살던 집을 개조해서 테이블 8개로 가게를 시작했다. 낮에는 손님을 받고 밤에는 식구들이 이불을 깔고 잤다. 지금도 본점 옆 분점 위층에 가족들이 살고 있다

    "처음엔 칼국수 장사를 했는데, 어느 순간 아버지는 매일 삼계탕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먹였어요.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를 때도 많았죠(웃음)."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그때부터 백남웅 씨는 삼계탕 집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과 똑같은 것을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남녀노소 다 좋아하는 게 뭘까~?' 고민하던 아버지가 생각해 낸 건 '곡물'이었다. 들깨를 넣어 건강식의 느낌을 살리며 기름기도 없애고 땅콩가루로 고소함을 높여서 한약재 맛을 없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들깨 삼계탕이다.

    '들깨'란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백남웅 씨가 남대문 새벽시장에서 우동 장사로 자리를 잡기 전에 했던 수많은 일 가운데 방앗간도 있었다. 그래서 곡물에 대해, 들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아는 세상 안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기 마련이다. 많은 경험이 결국엔 약이 되고 피가 될 것이다.

    늘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2001년 조류독감 파동이 났을 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시련이었다. 하루 종일 파리만 날렸다. 당시 대통령(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삼계탕을 먹으면서 독려했지만 1년 이상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시 소규모 양계장도 많이 없어졌고, 수많은 삼계탕 집이 문을 닫았지만 곧 정상 궤도로 돌아올 거라는 믿음으로 버텼다. 그때도 백남웅 씨는 정직과 좋은 재료에 대한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그 시기를 극복하면서 더 성장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 사장님은 땡볕에서 주차관리 중

    처음 본 백운기 사장은 군대를 막 제대한 사람처럼 얼굴이 새까맸다. 여름 내 땡볕에서 주차관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침에 가장 먼저 출근해 가게 문을 열고 육수로 쓸 곡물가루를 만들어 놓는 것도 백운기 사장의 일이다.

    전국에 2대째 이어온 삼계탕 집은 열 집이 안 된다고 한다. 또 전문 경영인을 내세우고 오너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백운기 사장은 카운터를 지키지 않고 주차관리를 한다. 대를 잇는 가게에는 이런 정신이 필요하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아버지는 대를 잇는 아들에게 생전에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정직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죠. 좋은 재료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손님이 알아주기 마련이라고 하셨습니다."

    2010년 그해 추석, 백남웅 씨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향년 67세. 너무 이른 나이지만, 그는 오래 전부터 간이 좋지 않았고 사유도 간암이었다. 백남웅 씨는 가족들에게조차 자신의 병을 숨기고 살았다. 홀로 투병을 하면서,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왜 그것을 혼자 견딘 것일까. 우리 시대 아버지는 그렇게 외로운 남자들이었나 보다. 백운기 사장 역시 아버지를 닮아 책임감으로 무장된 사람이다.

    "제 좌우명은 나 외에 아무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뭐든지 결정도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집니다. 그러니 남을 탓할 이유도 없죠."

    백운기 사장은 아버지처럼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삼계탕은 이미 냉동포장 제품으로도 익숙한 음식인데 가맹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가맹점을 하면 당장이야 돈 좀 벌 수 있겠죠. 하지만 가맹점이라는 게 되는 가게도 있지만 안 되는 가게도 있기 마련인데, 어려운 살림에 가맹점 했다가 망하는 가게들 보면 엄두가 안 납니다."

    유난히 책임감이 강한 백운기 사장은 가맹점이 장사가 안 되면 모든 게 자기 탓이라며,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 뻔하다. 그러니 앞으로도 가맹점은 생기기 어려울 것이다. 들깨 삼계탕은 호수 삼계탕을 찾아가서 먹는 걸로!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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