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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죽은 아이들이 야산에서 발견되는 '디스토피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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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죽은 아이들이 야산에서 발견되는 '디스토피아' 세상

    청주청원경찰서는 지난 19일 4살배기 딸이 사망하자 야산에 묻은 계부 안모(38)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진=장나래 기자)

     

    올 들어 불과 두 달 사이 부모가 자녀를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이 8건에 이르지만 시민들은 놀람과 한탄 속에 비난의 목소리만 높일 뿐 나라는 온통 선거 이야기뿐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분석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무너진 인륜과 비정한 부모 탓으로 돌리는 데 그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민속어 가운데 '아이를 가두거나 생매장해 죽이는 비정한 풍속'을 이르는 <살아속>(殺兒俗)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중기 함경도 지방에서는 사내아이를 낳으면 둘러업고 들판에 나가 통곡을 하면서 생매장하는 습속이 성행했다. 숙종 임금이 원인을 묻자 우의정 민정중은 "먹고 살기가 워낙 어려워 입 하나 줄이려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정지화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자애는 천성인데 자식을 죽이는 것은 그런 천성을 거스를 만큼 처절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덧붙여 천륜과 천성을 거스르도록 만든 처절한 사연이란 바로 '수탈과 토색'이라고 지적했다.

    수탈과 토색이 기승을 부려 '쌀 한 톨'이 귀하자 '입 하나'를 줄이기 위해 '아이'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조선 중기 문신 유계(兪棨)의 '시남집'(市南集)에 수록된 이야기다.

    갓 낳은 자식을 희생양으로 삼아야했던 조선 중기 함경도 지방의 음울하고 비참했던 가난은 가슴 떨리는 동병상련을 느끼게 한다. 늙으신 부모를 봉양해야 했고 노동력을 가진 성인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절, 희생양은 '아이'의 몫이었다.

    그로부터 500여 년 장구한 세월이 흘러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대국이 됐다. 이제 '입 하나' 줄이려고 어린 자녀를 희생양으로 삼을 일은 없다. 그런데도 부모가 자녀를 죽이는 일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생존의 문제도 아니고 질병의 문제도 아니다. 단지 책임지기 싫다는 개인주의와 생명존중에 대한 몰이해, 미움이라는 냉혹한 이기심 때문이다.

    조선후기 들어 '살아속'은 사라졌지만 자녀는 여전히 부모의 소유물이었다. 부모가 자기 아들을 '개 패듯이' 때려도 이웃이 간섭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인권과 주체가 없던 시절 "어린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하늘님을 때리는 것"이라고 가르친 사람이 '동학'(東學) 지도자 해월 최시형이었다.

    '어린이를 하늘처럼 존경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해월에게서 손병희에게 계승되었다. 그 후 손병희의 사위인 소파 방정환은 아이들을 지칭해 '어린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선포했다. 우리나라에 '어린이 날'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우리나라 사람 방정환에 의해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만들어진 '어린이 날'의 의미는 어린이가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이며 인격체라는 사실을 온 국민 앞에 공표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어린이날이 제정된 지 올해로 94년이 됐지만 어린이들의 유토피아가 펼쳐지기는커녕 디스토피아(dystopia)의 무서운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엄마 아빠에게 죽임당하는 아이들에 대한 원인 분석과 대응방안,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문제 의식 조차도 없어 보인다. 정치인들은 공천을 둘러싼 이해타산과 분노에 정신이 팔려 죽어가는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다.

    나라의 미래인 어린 새싹들이 부모에게 폭행당하고, 영하 10도의 날씨에 발가벗겨진 채 밖으로 쫓겨나고, 차가운 욕조 물에 고문을 받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데도, 어떻게 그 일이 뒷전일 수 있다는 말인가. 숨이 끊어져 싸늘해지자 야산으로 끌고 가 암매장하고 돌아온 매정한 부모들이 뻔뻔스럽게 거리를 활보하는데도…

    어린 새싹들에게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인격적이고, 냉혹하고, 매몰차며, 후진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어린이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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