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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마의태자' 숨겨진 얼굴…전설이 된 '국권회복'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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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마의태자' 숨겨진 얼굴…전설이 된 '국권회복' 투사

    KBS '역사저널 그날'…아버지 경순왕과 아들 마의태자 엇갈린 운명 다뤄

    (사진=KBS 제공)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 그리고 그의 아들 마의태자. 1000년 역사를 자랑하던 신라의 멸망 앞에 부자는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우리는 신라의 운명을 둘러싼 두 사람의 엇갈린 선택을 통해, 망국(亡國)을 맞는 지도층의 올바른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오는 31일(일) 밤 10시 30분 KBS 1TV에서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 신년 기획 고대사 인물 열전 '선택'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로 경순왕과 마의태자를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927년 신라. 후백제의 견훤이 경주를 습격한다.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기던 신라 제55대 경애왕은 갑작스러운 침탈에 대비하지 못했고, 결국 견훤의 핍박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후 견훤은 직접 왕위에 오르지 않고 새로운 이를 왕으로 세운다. 그가 바로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었다. 당시 신라는 3대째 박씨(氏)계 인물이 왕위를 이었다. 김씨(氏)인 경순왕은 뜻밖에 왕위를 이은 셈이다. 견훤에 의해 선택된 경순왕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930년, 고창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한반도의 최강자로 떠오른다. 이후 경순왕의 청으로 3개월간 신라에 머문 고려의 태조 왕건은 경순왕과 신라 관료들에게 각종 물품을 선물하며 민심을 사로잡는다. 백성들은 "견훤이 왔을 때는 승냥이와 호랑이를 만난 것 같았는데, 왕공(王公)이 오니 부모를 만난 것 같다"며 왕건을 칭송했다. 고려와 화친을 유지한 신라는 그렇게 경제적, 군사적으로 고려에 크게 의존하며 망국의 길을 걷고 있었다.

    935년, 경순왕은 1000년 사직을 고려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태자는 항전을 주장하며 귀부를 강력히 반대한다. "나라의 존속과 멸망은 반드시 하늘의 운명에 달려 있으니, 어찌 1000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남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라는 태자의 반문을 '삼국사기'는 전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신라는 건사할 백성도, 영토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던 상황이었다. 결국 경순왕과 귀족들은 사직을 바치기로 결정하고 개성으로 떠난다. 이후 태자는 통곡하며 금강산에 들어가 '마의'를 입고 나물을 먹으며 생을 마친다. 이와 달리 경순왕은 태조 왕건의 딸과 혼인하는 등 고려인으로서 영화를 누린다. 신라의 멸망 앞에 정반대의 선택을 내린 부자는 왜 이런 선택을 내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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