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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나 헌신을 사랑이라 믿어온 그대에게



책/학술

    섹스나 헌신을 사랑이라 믿어온 그대에게

    [신간] '러브 온톨로지: 사랑에 관한 차가운 탐구'…강요된 환각 벗겨내기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사랑이 뭐죠?"라는 질문을 받은 그대는 어떠한 대답을 내놓을 텐가. 섹스? 애정? 혹은 헌신? 신간 '러브 온톨로지'(지은이 조중걸·펴낸곳 세종서적)의 지은이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나는 먼저 정의가 불가능한 것이 사랑에 대한 1차적인 정의라고 말하겠다. 거기에 사랑이라고 말해지는 것은 있다. 말해지는 정도가 아니다.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범람은 무엇을 말하기보다는 무엇을 덮고 있다. 나일 강의 범람이 농지를 덮듯이. 그러나 나일 강은 곧 제자리로 돌아가고 본래의 토지를 드러낸다. 우리 언어의 범람도 이와 같다. 무엇인가를 덮고 있다. 고집스럽게. 무지와 기만에 힘입어.' (39쪽)

    '존재론'이라는 뜻의 온톨로지(ontology)가 붙은 제목과 '사랑에 관한 차가운 탐구'라는 부제는 이 책이 면도날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논리로 채워졌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술, 종교, 철학 등을 탐구해 온 지은이는 "우리의 사랑은 이기심, 욕구, 감상, 탐욕, 집착, 질투 등의 혼합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한다.

    '사랑 그 자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모른다. 어쩌면 거기에 사랑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 외에는. 따라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 그것에 대해 마치 본질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떠버리의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 (48쪽)

    지은이는 "언어는 사유를 위장한다"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말을 토대로 사랑을 면밀히 분석한다. 이 책에서 사랑이 '침묵 속에서 지나쳐야 하는 것'으로 분류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자, 여기서 요리사에게 희망이나 꿈이나 하느님을 들이댄다고 하자. 그것으로 요리를 해달라고. (중략) 요리사는 말할 것이다. 그것은 요리의 재료가 아니므로 자신의 요리와는 관련 없는 것이라고. 자기는 사실 그러한 것들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이것들이 바로 침묵 속에서 지나쳐야 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우리 감각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실증적이지 않다. 물론 이런 꿈 같은 언어를 남발하는 겉멋 들거나 감상적인 사람들이 있다. 언어의 인플레이션이며 소비되는 낭만주의이다.' (27, 28쪽)

    지은이는 "헌신, 자기희생, 친근감, 그리움, 애정, 질투, 실망, 분노 등이 사랑 자체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는 곧 사랑의 본질, 의미, 형태, 한계 등에 대한 철학적 분석으로 이어진다.

    '섹스가 사랑과 관련되지는 않는다. 나는 물론 말한 바대로 사랑이라는 초월적인 어떤 것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섹스가 그 자체로 초월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큰 환락을 주고 얼을 앗아간다 해도 초월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마약도 초월적인 것이다. (중략) 섹스는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이다. 많은 사람이 사랑 없는 섹스의 부도덕성에 대해 말하고 섹스의 원인으로서의 사랑에 대해 말한다.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 섹스 없는 사랑이 있다. 사랑 없는 섹스도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없다. 사랑과 섹스는 아예 질을 달리한다.' (99, 100쪽)

    ◇ "환각을 벗겨내기 위해선 자신의 환각을 먼저 벗겨내야 한다"

    러브 온톨로지ㅣ조중걸ㅣ세종서적

     

    이런 식으로 이 책은 섹스, 혈연 간의 사랑, 남녀 간의 애정 등을 다루며 그 실체와 기원을 짚어본다. 이는 곧 그 실태에 대한 폭로로 이어진다. 그렇게 모든 것이 파괴된 자리 위에서 지은이는 사랑을 덮은 베일을 벗기기 위한 통찰을 내놓는다.

    '사랑은 하나의 심적 경향이다. 세계와 하나가 되는 가운데 우주 만물이 모두 인연으로 얽힌 하나가 되고자 하는 심적 경향. 사랑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을 구하는 나는 있다. 죽음은 없고 죽어가는 나만 있고 삶은 없고 살아가는 나만 있듯이. 따라서 사랑은 희구와 열망이지 손에 쥐어지는 어떤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아를 세계 속에서 소멸시키는 것을 전제한다. 무엇인가와 하나가 되려는 열망으로. 소멸은 수양이고 열망은 사랑에의 충동이다. 이 둘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 아슬아슬하게 사랑의 희끄무레한 가능성을 제시할 뿐이다.' (227쪽)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사랑을 분석하려 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사실은 배타적인 이기심과 감상을 뼈대로 만들어진 탓에, 위험한 신념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그의 우려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신의 의미 가운데 많은 잔인한 일들을 저질렀고, 히틀러는 민족이라는 의미로 대량 학살을 저질렀고, 가족이라는 의미는 삶을 냉혹하고 이기적인 전쟁터로 만들었다. 어디에도 의미가 부여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의미가 아니다. 실제가 아닌 것이 어떻게 존재를 얻을 수 있겠는가? 예수가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할 때 거기 어디에 사랑의 의미가 있는가? 예수의 사랑은 스스로를 포함한 무수한 만물이 세계이고 그것에 대한 인식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242, 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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