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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 농락당한 소련…히틀러, 침공을 결심하다



책/학술

    핀란드에 농락당한 소련…히틀러, 침공을 결심하다

    [임기상의 역사산책25]전 국민이 똘똘 뭉친 핀란드, 독립을 지키다

    소련 폭격기의 공습을 받아 헬싱키 시가지가 불타고 있다.

     

    ◈ 백주대낮의 핀란드 폭격…'겨울전쟁' 막을 올리다

    운명의 1939년 11월 30일 오전 9시 15분.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련 공군의 폭격기들이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폭탄을 투하했다.

    같은 시간에 러시아 군대 26개 사단 55만명이 1,500대의 탱크와 함께 인접한 핀란드 국경을 넘어 침공했다.

    여기에 맞서 핀란드는 10개 사단을 동원했지만 대포, 무전기, 심지어는 포탄까지 부족했다.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전쟁은 1944년까지 5년을 끌게 된다.

    강추위가 엄습한 3달간 벌어져 '겨울전쟁' 이라고 이름 붙인,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았던 이 전쟁은 왜 시작된 걸까?

    핀란드군의 대공포에 맞아 격추된 소련 폭격기. 손재주가 좋은 핀란드인들은 이를 개조해 소련을 공격한다.

     

    ◈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좋게 동유럽과 북유럽을 나눠 먹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과 몰로토프 외상(왼쪽). 히틀러와 손잡고 약소국 사냥에 나선다.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기 3개월 전.

    소련과 나찌 독일은 상호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이들은 비밀협약을 통해 폴란드를 동과 서로 나눠 갖고, 동유럽과 북유럽의 세력권을 갈랐다.

    이 협약에 따라 소련은 폴란드 동쪽을 침공한 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을 통째로 삼켜 먹었다.

    이어 몰로토프 외상은 핀란드 파시키비 외상을 모스크바로 불러, 레닌그라드 북쪽의 칼레리아 지구 등 주요 영토와 군사 요충지의 소련군 진주 허용을 요구했다.

    당연히 협상은 결렬됐다.

    몰로토프는 이렇게 경고했다.

    "이제 내 역할은 끝났소. 나머지는 붉은 군대가 말할 것이요"

    ◈ 혹한과 눈보라, 스키부대 앞에서 무너지는 소련군

    핀란드로 진군하는 소련군. 곧 매서운 맛을 보게 된다.

     

    1,000Km에 달하는 국경을 넘어 소련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인구 350만명의 작은 나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들은 자만하고 있었다.

    어느 지휘관은 "너무 달려가다 핀란드 국경을 넘어 스웨덴까지 넘어가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소련군은 금방 전쟁이 끝날 것으로 보고 여름철 군복을 입고 참전했다.

    백색 위장 전투복은 물론 혹한에 대비한 군수물자도 없이 북극권의 나라로 밀고 들어갔다.

    처음에는 전진이 순조로왔다.

    그러다 강력한 적을 만나게 된다.

    바로 '스키부대'다.

    방독면과 백색 위장복을 착용하고 스키로 미끄러지듯 언덕을 내려오는 핀란드군. 어린 시절부터 스키를 익힌 핀란드 보병은 소련군을 상대로 뛰어난 기동력을 발휘했다. (사진=책미래 제공)

     

    핀란드 군인들은 숲이 우거지고 눈이 많이 내리는 지형 속에서 스키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면서 소련군을 공격했다.

    대전차포 대신 화염병을 이용해 소련군 탱크를 공격했다.

    또 도로를 따라 전진하는 소련군을 숲속에 숨어 따라가다 측면에서 기습했다.

    이에 따라 고슴도치 모양으로 숙영해야만 하는 소련군 막사에 이번에는 저격병이 총알을 날렸다.

    겨울이 깊어지면서 영하 40도가 넘는 강추위가 엄습하자, 전사자보다 더 많은 동사자가 속출했다.

    중부전선의 교통요지인 수오무살미에서 참패한 소련군의 잔해.

     

    겨울전쟁은 1939년 12월부터 1940년 1월 사이에 한달간 벌어진 '수오무살미 전투'에서 절정에 오른다.

    소련군 2개 사단과 1개 전차여단이 눈보라 속에 고립된 채 혹한과 핀란드군의 공격을 받아 전멸했다.

    3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어마어마한 야포와 기갑장비가 핀란드군 수중에 넘어갔다.

    ◈ 핀란드의 비밀병기 '몰로토프 칵테일'

    겨울전쟁에서 소련군 전차에 던진 사제폭탄 대전차 수류탄과 몰로토프 칵테일

     

    지금은 '화염병'으로 불리는 '몰로토프 칵테일'은 스페인 내란 때 처음 사용되었다.

    이 무기는 병 입구에 헝겊을 두른 유리병에 휘발유를 넣은 것이다.

    심지에 불을 붙인 후 탱크에 던지면 깨지면서 휘발유 방울 구름이 발생하고 여기에 불이 붙는다.

    핀란드 국민들이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이름을 붙인 사연은 이렇다.

    소련 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민간인들의 피해가 속출해 국제여론이 악화되자, 몰로토프 외상이 "우리는 원조용 빵을 던졌다"고 변명한 데서 시작됐다.

    이 얘기를 들은 핀란드인들은 "몰로토프~ 이거나 마셔라" 하면서 소련군 탱크에 칵테일을 선물했다.

     

    겨울전쟁 동안 군인들은 2만 개 이상 제작했고, 핀란드의 술 공장에서 염화칼륨과 착화제가 첨가된 '정식 제품'이 54만 개 만들어져 전선으로 수송됐다.


    ◈ 조국을 구한 위대한 지도자 '만네르하임 장군'

     

    핀란드에는 절묘한 자연조건과 애국심에 불타는 국민과 병사 외에도 또 하나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전 국민이 존경하는 천재적인 전략가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 장군이다.

    제정 러시아 장교 출신인 그는 누구보다도 소련군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만네르하임 장군이 이끄는 핀란드군은 이른바 '모티 전술'을 구사했다.

    통나무를 조각내듯 소련군 부대를 각개 격파하는 방식이다.

    핀란드군의 유격전술에 휘말린 소련군은 이 전쟁에서 2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반면 핀란드의 피해는 그 1/10인 2만명에 그쳤다.

    ◈ 지쳐버린 소련과 핀란드, 결국 평화조약 체결…끝나지 않은 전쟁

    스탈린은 침공군 사령관을 경질하고 9개 사단을 추가로 투입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양쪽 다 피해가 막심했고, 무엇보다 나찌 독일의 동향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었다.

    히틀러는 서유럽에 이어 남유럽까지 석권한 뒤 창끝을 동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결국 전쟁이 시작된 후 3달만인 1940년 3월 6일 모스크바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소련 요구대로 일부 영토를 넘겨줬지만, 폴란드나 발트 3국처럼 나라를 뺏기지는 않았다.

    ◈ 독일과 소련과의 전쟁 발발…핀란드, 독일편에 뛰어들다

    핀란드를 방문한 히틀러가 만네르하임 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히틀러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

     

    소련과 핀란드의 전쟁을 누구보다 흥미롭게 지켜본 이는 히틀러였다.

    그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게 그 막강하다는 소련군의 실력이야? 우리가 발로 차면 곧바로 무너지는 썩은 집 같은데…"

    그리고는 소련 침공을 결심했다.

    이어 비밀리에 핀란드에 소련 침공에 합류하지 않겠느냐는 의사를 타진했다.

    소련에게 이를 갈던 핀란드는 같이 보조를 맞추기로 하고, 독일의 지원을 받아 군비를 강화해 나갔다.

    노르웨이에 있던 독일 2개 산악사단도 핀란드로 들어왔다.

    독일이 제공한 군모와 대전차포를 들고 소련군을 공격하는 핀란드 병사들.

     

    드디어 1941년 6월 22일 새벽 4시.

    폭격기의 공습을 시작으로 독일 육군 300만명이 소련 영내로 쏟아져 들어갔다.

    사흘 후 핀란드군도 국경 남부지역에서 소련군을 기습 공격했다.

    그러나 겨울전쟁에서 빼앗긴 카멜리야 지구 등을 되찾자 그 자리에서 멈췄다.

    더 진군하자는 히틀러의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전선을 고착시켰다.

    우리는 침략군이 아니라는 얘기다.

    3년 후인 1944년 전황을 뒤집은 소련군이 재차 핀란드를 침공했다.

     

    핀란드군의 후퇴가 계속됐다.

    제2의 방위선인 VT라인을 포기한지 불과 1주일도 지나지 않은 6월 20일, 붉은 군대는 짧은 교전 끝에 제2 도시 바이푸리마저 점령했다.

    마지막 3차 방어선인 VKT라인마저 포기해야 될 상황에 몰린 것이다.

    핀란드는 다시 후퇴해서 방어선을 재구성하든지, 아니면 기존의 VKT라인을 사수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만네르하임 장군의 지시가 떨어졌다.

    "더 이상의 후퇴는 없다"

    소련의 잇따른 공세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때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연합군의 빠른 진군에 놀란 스탈린은 서둘러 군대를 서쪽으로 돌리고, 핀란드와 정전협상을 체결했다.

    두번에 걸친 전쟁 끝에 핀란드는 영토의 10%를 빼앗겼지만, 끝내 나라를 지켰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부 유럽과 발트 3국이 소련의 압제 하에서 신음하는 동안, 핀란드는 발전을 거듭해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우뚝 섰다.

    그 바탕에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통일된 독립국가를 지키려는 전 국민의 피와 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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