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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영이 박사학위 딴 이유는…“돈으로는 박사모 못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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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진영이 박사학위 딴 이유는…“돈으로는 박사모 못 써요!”

    [노컷인터뷰①]가수 하고 싶어 공부시작…매니지먼트사 차리기 위해 무역학 공부

    MBC '우리결혼했어요 시즌4' 에 출연중인 가수 홍진영이 31일 오후 서울 목동 CBS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진환기자

     

    홍진영이 떴다! 지난 달 31일, 홍진영이 양천구 목동 CBS사옥에 뜨자 엄숙한 보도국이 술렁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기자에게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먼저 다가가 인사하는 미녀에게 어떤 기자가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홍진영이 떴다. 그는 한 때 ‘싼티’의 대명사였다. 그의 유일한 히트곡 ‘사랑의 배터리’는 표준어인 ‘배터리’보다 홍진영의 콧소리로 ‘빳데리’라고 강조할 때 한껏 맛을 살릴 수 있는 노래. ‘사랑의 배터리’ 발표 이후 장윤정의 뒤를 잇는 트로트 여가수로 주목받고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도 출연했지만 그는 여전히 기대주였다.

    그런 홍진영을 단번에 대세로 떠오르게 해준 프로그램은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다. 지난해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그는 독한 MC들을 무장해제시키는 애교와 다소 짧은(?)반말로 스타덤에 올랐다. 김구라로부터 “약 빨고 예능하냐”는 얘기를 들을 만큼 뛰어난 입담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그는 이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하더니 이제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남궁민과 짝을 이뤄 가상부부로 진출했다.

    뿐만 아니라 Mnet ‘트로트엑스’에서는 심사위원으로 나섰다. 나미애, 심신 등 기라성같은 옛 선배들을 심사하는 자리. 부담도 크지만 “현재 활동하는 트로트 여가수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수의 입장에서 전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방송노하우를 전수하겠다”라며 야무진 각오를 드러냈다.

    그야말로 홍진영 전성시대다. 하지만 홍진영이 ‘뜨기’까지는 지난한 무명의 시간이 있었다. 2007년 걸그룹 ‘스완’으로 데뷔했지만 팀은 두달 만에 해체했다. 그야말로 ‘백조’가 될 위기에 처했다. 딱 두 달을 놀았다. 한 달은 PC사양을 바꿔 게임에 빠졌고 다른 한 달은 슬럼프에 빠졌다.

    "나 홍박사야~" 홍진영은 가수가 되기위해 공부에 매진했고 내친김에 기나긴 무명시절 무역학 석박사 학위까지 땄다.(황진환 기자)

     



    그러나 타고난 긍정의 힘은 홍진영을 일어서게 했다. 그는 전공을 살려 무역학 석사과정을 밟았고 내친 김에 박사학위에도 도전했다. 혹자는 홍진영이 박사학위를 딴 것은 그의 부친인 홍금우 조선대 교수의 지원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어떤 악플러는 “돈으로 박사학위를 땄냐”는 빈정거림도 서슴지 않았다. 홍진영도 대중의 시각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악성댓글까지 다 읽어보는 바지런함까지 갖췄다)

    “하하, 저를 싫어하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그분들을 일일이 붙잡고 해명할 수도 없고...그냥 저는 그분들에게 몇 천 만원 드릴 테니까 박사학위 딸 수 있는지 없는지 한 번 시도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실 홍진영에게 무역학이란 전공이 어색해 보이기는 기자도 마찬가지. 하지만 홍진영이 무역학이란 학문에 대해 깊이있게 공부한 것은 기나긴 사연이 있었다. 공부가 너무 싫었던 고교시절,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뒤 턱걸이로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여전히 공부는 뒷전. 당시 홍진영은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하루 몇 천 명이 방문하는 온라인 스타였다.

    끼가 철철 넘치는 광주 미녀를 서울에서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한 기획사에서 홍진영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를 서울로 보내기엔 부모님의 걱정이 적지 않았다. 그의 부친은 홍진영에게 조건을 걸었다. 두 학기 장학금을 받으면 가수를 시켜준다는 것이었다.

    현역 트로트가수, 성공한 예능인에 이은 홍진영의 또다른 꿈은 매니지먼트 사장님이다. 황진환 기자

     



    “‘장학금 받으면 아빠가 가수생활 지원해줄게’라고 말씀하셨죠. 그때부터 난생 처음으로 공부란 걸 하기 시작했어요. 정말 말도 안되게 공부했죠. 그렇게 해서 장학금까지 탔어요. 얼마나 가수가 하고 싶었으면 그랬겠어요. (웃음)”

    그러나 무명시절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는 ‘사랑의 배터리’로 행사를 다니는 와중에 쉬지 않고 부친의 연구실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무작정 가수가 되고 싶어 시작한 공부였는데 ‘무역학’이라는 학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엔터테인먼트도 무역의 일부분으로 외화벌이를 할 수 있다는 점에 주안했다. 그의 박사논문 ‘한류콘텐츠의 해외수출방안’은 한류 콘텐츠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다뤄 학계에서 ‘신선한 시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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