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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숙청일, 코스피는 꿋꿋했다



경제 일반

    피의 숙청일, 코스피는 꿋꿋했다

    그들은 왜 공포를 조장하나

     

    북한 서열 2인자 '장성택'이 숙청당한 후, 한국엔 이런 말이 쏟아져 나왔다. '공포정치''불안''충격'. 한국의 국방부 장관은 '내년 초 도발가능성이 있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입에 담았다. 이쯤 되면 한국경제엔 '경고등'이 울리고도 남았어야 한다. 하지만 코스피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경제주체들은 담담하다. 왜일까. 많은 북한ㆍ경제전문가는 "북한의 지금 상황이 공포를 조장할 만큼은 아니다"고 말했다.

    '북한발 12ㆍ12 사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12월 12일 숙청당한 일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장성택 부위원장이 실각했다는 소문이 나돌 무렵,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는 '설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고모부를 처형하겠느냐'고 내다봤다.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장성택 부위원장은 구속된 지 하루 만에 처형됐다. 그러자 보수 진영에선 '김정은의 공포정치' '북한의 불안한 행로' 등의 분석을 쏟아냈다. '입지가 불안한 김정은'이 전쟁 등 돌발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요지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12월 18일 "내년 1~3월에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쏟아냈다.

    김정은 체제, '안정과 불안' 사이

    정부와 보수진영의 말만 들으면 전쟁이 당장 터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다. 이 정도로 정국이 불안정하다면 한국경제에도 '경고등'이 켜졌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장성택 숙청'에서 출발한 북한리스크는 한국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12월 11일 1977.97이던 코스피 지수는 장성택 숙청일인 12월 12일 1967.93으로 10.07포인트 떨어졌을 뿐이다. 그나마 일주일이 흐른 12월 19일엔 1975.65로 원상복귀됐다.

    정부ㆍ보수진영의 판단과 실제 현실이 이처럼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북한 내부사정에 대한 정부ㆍ보수진영의 판단이 다소 과하거나 왜곡됐기 때문이다. 홍민 동국대(북한학) 교수는 "수령체제의 기본은 일사불란한 직할관리"라며 "장성택 숙청 전의 김정은 체제는 김정일 측근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어 (수령체제 관점에서 볼 때) 불안정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현재는 숙청을 통해 수령체제를 복구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가 이전보다 안정적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연철 인제대(통일학) 교수도 '김정은 체제는 안정적'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공개처형이 충격적이긴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숙청은 권력을 강화하는 당연한 행위다. 때문에 숙청행위로 북한이 불안정하다고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 도발 가능성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데,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전쟁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는 상식이다."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유일지배체제인 북한의 현재 상황은 김정은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투항하느냐, 아니면 충성하느냐 갈림길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며 "어느 쪽이든 '김정은 지배체제'는 안정화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에서 김정은이 이번 숙청을 실제로 주도한 게 맞느냐는 의견이 나오지만 그건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고 전제한 뒤 "누가 주도했든 북한이 유일지배체제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가능성에 대해서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정일 사후 초기에 부인 리설주를 대동하는 등 파격행보를 보였던 김정은이 지배체제가 더욱 단단해지면 대외정책을 개방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홍민 교수는 "김정은 지배체제가 안정화에 접어들면 개혁ㆍ개방작업에 속도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연철 교수는 "북한의 내부상황이 국제정세를 바꾸진 못한다"며 "우리의 대북정책이나 주변국의 움직임에 따라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커지거나 작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정국이 불안정한 게 도발 가능성의 직접적 변수는 아니라는 얘기다.

    도발가능성 운운 '공포' 조장

    북한을 정밀하게 스크린하는 전문가들은 대체로 '김정은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이런 북한을 바라보는 경제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 '장성택 숙청 이후 코스피 지수가 떨어진 건 사실 아니냐'는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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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국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가하락이 북한 때문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장성택이 실각했다는 소문이 돌 무렵인 12월 3일부터 주가가 조금씩 떨어졌는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미국의 고용지표가 좋게 나온 날이다. 차익실현을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왔던 외국인 투자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간 게 주가하락의 첫째 원인이었다."

    은성민 메리츠금융그룹 리서치센터장도 "북한리스크 탓에 주식시장이 부진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환차익을 노린 외국자금이 빠져나간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했다. 한국경제의 내성耐性이 웬만한 대북리스크에 흔들릴 만큼 약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경제를 뒤흔들 만한 이슈는 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성공하거나 지속적으로 해오던 군사적 행동이 미국ㆍ일본ㆍ중국 등 주변국의 역학관계에 영향을 끼칠 때다. 이상만 중앙대 경영경제대학 교수는 "국내경제에 영향을 끼칠만한 북한리스크는 핵실험으로 인한 전쟁위협 말고는 없다"며 "미사일 개발이 성공해 주변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면 몰라도 다른 대북 리스크는 큰 변수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홍순직 연구원은 "북한 내부상황이 불안정해도 북한리스크의 영향은 단기간에 끝났다"며 "한국경제에 영향을 주는 건 글로벌 경제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입장도 경제전문가와 다르지 않았다. 북한리스크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개성공단입주기업의 관계자는 "북한에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처럼 예상한 보도가 많지만 개성공단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부와 보수진영의 과한 호들갑이 주식시장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상만 교수는 "시장에 별다른 반응을 주지 못하는 이슈도 정부나 언론에서 크게 떠들어대면 영향력이 달라진다"며 "'북한리스크'를 운운하며 공연히 우려를 쏟아내면 주식시장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계의 고삐 풀어선 안돼

    하지만 북한전문가와 경제전문가의 의견을 100%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북한은 예측 불가능할 때가 많고, 김정은의 리더십은 국제사회가 예측할 만큼 구체화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예측범위를 벗어나는 돌발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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