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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성불구로 만든 여인, 장희빈(전편)



문화 일반

    아들을 성불구로 만든 여인, 장희빈(전편)

    고궁 전각에 얽힌 재미있는 뒷 얘기 시리즈⑱ 창경궁 통명전

    조선 역사에서 장희빈은 가장 드라마틱하고 격정적인 삶을 살다간 여인으로 기록된다. 삶이 극적이었던 만큼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장희빈과 인현왕후, 숙빈 최씨 사이에 벌어진 여인들의 암투, 그리고 그 배경에 깔린 정치적인 음모와 ‘여인천하’를 살아온 임금 숙종의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중전의 침전으로 쓰인 창경궁 통명전.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저주하며 해괴한 물건을 주변에 묻는등 악행을 저지르다 결국 사사되고 만다. (사진=문영기 기자)

     

    ▲아들을 성불구로 만든 여인?

    중전의 침소인 통명전 주변에서 괴이한 물건들이 발견됐다. 끔찍한 모양을 한 각시인형과 죽은 붕어가 나온 것이다. 통명전 북쪽에서도 비슷한 물건이 나왔다. 쥐의 사체와 죽은 새가 묻혀있었다.

    궁궐이 발칵 뒤집혔다. 이 기괴한 물건들이 어째서 왕비의 침전에서 나왔는지, 나인과 궁녀들에 대한 문초가 시작됐다. 희빈 장씨의 궁녀들이 끌려왔고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한 궁녀들의 자백이 쏟아졌다.

    궐에 무당까지 끌어들이며 인현왕후을 저주해 온 희빈 장씨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임금 숙종은 세자를 낳은 희빈 장옥정을 중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사하고 말았다.

    천한 궁중 나인으로 시작해 인현왕후를 몰아내고 중전의 자리까지 올랐던 장옥정은 결국 그렇게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희대의 악녀로 알려진 희빈 장씨는 역관인 인동 장씨의 딸로, 어머니가 여종이었기 때문에 천민의 신분이었다. 역관이면서 재력가였던 삼촌과 남인세력의 추천으로 장렬왕후의 나인으로 궁궐에 들어왔다.

    타고만 미모 때문에 임금의 눈에 띠어 궁녀에서 종2품 숙의까지 오른 장씨는 기다리던 아들을 생산하면서 일약 빈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임금 숙종의 정치적인 계산과 맞물려 발생한 이른바 ‘기사환국’으로 남인 세력이 조정을 장악하게 되자,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밀어내고 결국 중전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드라마 '동이'에서 등장한 경종의 모습.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다 후사도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캡쳐)

     

    하지만 노론을 등에 업은 숙빈 최씨의 등장과 극악스런 그녀의 성격에 지친 숙종마저 등을 돌리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장희빈은 왕후로 복귀하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하다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야사에 따르면 장희빈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왕족의 혈통을 단절시키겠다며, 자신의 아들인 세자를 성불구로 만들어버렸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실제로 왕위를 물려받은 경종은 후사가 없다.

    경종이 승하한 뒤, 이조판서 이덕수가 쓴 일대기에는 “선대왕(경종)이 전혀 여인을 알지 못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임금이 성불구였음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세자의 친모인 장희빈을 죽이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라는 중신들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인 숙종이 냉정하게 사약을 내리자, 이때부터 경종은 점차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하고, 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종의 불행이 어머니 장희빈 때문이었는지 아버지 숙종 때문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아무튼 권력투쟁의 틈바구니에서 힘들게 살아온 한 임금의 처연한 모습이 그려진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의 한 장면. 장옥정은 권력에서 밀려난 남인세력이 권력을 되찾기 위한 방편으로 궁녀로 키워진 여인이다.(홈페이지에서 캡쳐)

     

    ▲장옥정은 궁녀로 만들어진 여인

    조선 중기는 사색당쟁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정사는 뒷전이고 각 당파는 조정의 주도권을 잡기위해 사력을 다해 권력투쟁을 벌였다.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여인들도 권력다툼에 이용됐다. 장옥정도 권력장악을 위해 만들어진 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장옥정의 집안은 역관(譯官)이다.

    그녀의 아버지 장형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숙이었던 장현은 당대 최고의 역관이었다. 조선시대의 역관은 단순히 통역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의 무역상 역할도 했기 때문에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엄청난 부를 쌓았다고 해도 신분제도가 엄격한 조선에서 신분상승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권력에서 밀려난 남인 계열이었던 장현은 권력에 가깝게 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장희빈은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소재다. 1대 김지미를 비롯해 당대의 최고 여배우들이 장희빈의 역할을 맡았다.

     

    장현은 미모가 남달랐던 장옥정을 동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린 시절부터 글과 노래, 춤과 악기 연주들을 가르쳤고, 갖고 있던 금력으로 궁중에 나인으로 들여보내기에 이른다.

    장옥정이 궁궐에 들어갈 때 나이는 15세 전후로 알려져 있는데,당시 궁녀들이 10세 전에 궁궐에 들어갔던 점을 감안하면 늦은 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준비’된 궁녀였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궁궐에 들어간 장옥정은 타고난 미모로 곧바로 임금의 눈에 띠었고, ‘학습’의 효과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승승장구, 결국 중전에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사씨남정기’는 조선판 여론 조작사건?

    ‘사씨남정기’는 잘 알려진대로 서포 김만중이 한글로 쓴 고대소설이다. 중국 명나라때 한림학사였던 유연수라는 인물과 그의 부인 사씨, 그리고 첩실이었던 교씨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후실로 들어온 교씨는 간계를 써서 정실이었던 사씨부인을 모함해 그녀를 쫒아낸 뒤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외간남자와 눈이 맞은 교씨는 남편인 유한림까지 모함해 유배를 보낸 뒤, 재산을 갖고 정부와 도망을 치다가 도둑을 만나 재물을 모두 빼앗긴다.

    김만중의 소설 사씨남정기. 한글로 쓰여진 이 소설은 숙종과 장희빈, 인현왕후의 얘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유한림은 혐의가 풀려 복권되고, 쫒겨 났던 사씨를 찾아 정실로 다시 맞아들이고, 교씨와 정부를 처형한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다.

    이 소설은 누가 봐도 임금 숙종과 장희빈, 그리고 인현왕후의 얘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인현왕후와 함께 몰락한 서인세력은 이 소설을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 소설이 한글로 쓰여진 배경에는 이런 여론화 작업을 염두에 뒀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 ‘사씨남정기’가 백성들에게 회자되면서, 백성들은 장희빈에 대해 분노하기 시작했고, 상대적으로 인현왕후에 대한 동정은 더 커져갔다.

    그러던 중 궁녀 한사람이 이 작품을 숙종에게 전해 읽도록 하자,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복위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같은 일화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백성들의 분노는 장희빈과 그녀의 정치적 지지세력이었던 남인의 몰락을 가져왔다.

    ▲‘한국판 카사노바’ 김춘택

    사씨남정기를 백성들에게 전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저자인 김만중의 조카 김춘택이다. 김춘택은 노론의 핵심이었던 김장생의 5대손이다.

    문장실력을 타고난데다 머리도 비상했던 김춘택은 권력에서 밀려난 노론이었던 탓에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김춘택은 작은 아버지의 사씨남정기를 이용해 세를 규합하고, 장희빈을 몰아내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김춘택은 장안에서 내노라하는 미남이었다. 풍류를 좋아해 장안의 여인들과 숱한 염문을 뿌렸다. 북촌의 미남이 대궐에 들어서면 궁녀들에게도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RELNEWS:left}김춘택은 자신의 ‘미모’와 ‘재능’을 동원해 궁녀들을 손아귀에 넣고, 궁궐내의 사소한 일까지 알아내는 ‘첩보원’으로 활용했다. 정보를 장악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법이다.

    김춘택은 장희빈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던 장희빈의 오빠 장희재의 첩까지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에 이른다. 장희재의 첩은 남인들의 내밀한 움직임까지 김춘택에게 제공했다.

    결국 김춘택은 장희재의 첩을 통해 남인이 숙빈 최씨를 암살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를 공개해 남인세력을 밀어낸다. 장희빈의 죽음에도 김춘택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궁녀들을 동원해 장희빈이 인형왕후를 저주하며 통명전 근처에 해괴한 물건들을 땅에 묻었다고 조작했다는 것이다. 수년에 걸친 치밀하고 끈질긴 작업 끝에 결국 노론은 복권에 성공했고, 인현왕후는 중전의 자리를 되찾았다.

    하지만 노론 복권의 1등공신이었던 김춘택은 노론에게도 버림받고 귀양길에 오르고 만다. 그것은 그와 숙종의 부인, 숙빈 최씨와의 미묘한 관계 때문이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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