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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초점] 산이가 비판하고자 했던 건 '여성'이 아니다



가요

    [가요초점] 산이가 비판하고자 했던 건 '여성'이 아니다

    산이(사진=브랜뉴뮤직 제공)

     

    래퍼 산이가 이슈의 중심에 섰다. 산이를 이슈의 중심에 서게 한 것은 그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곡인 '페미니스트'(FEMINIST)다. 그는 이 곡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걸까.

    산이가 '페미니스트'를 공개한 것은 지난 16일이다. 그는 '이수역 주점 폭행' 사건 관련 영상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공유한 뒤 세간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린 상황에서 '페미니스트'라는 곡을 공개했다.

    '저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습니다. 혐오가 불씨가 되어 혐오가 조장되는 상황을 혐오합니다.' 산이가 이 같은 글과 함께 올린 곡의 가사 내용은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을 불러일으켰다. 자극적인 가사 내용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는 '재기해'라고 외치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재기해'는 고(故)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2013년 마포대교에서 투신한 사건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남성 혐오 커뮤니티 회원들이 남성을 비하할 때 쓰인다.

    시작점부터 논란의 단어가 튀어나오는 이 곡의 가사에서 산이는 '아이 엠 페미니스트'(i am feminist)라고 외친 뒤 '여자와 남자가 현시점 동등치 않단 건 좀 이해 안돼'라고 말한다. 주요 가사 내용은 이랬다.

    'I am feminist
    난 여자 남자가 동등하다 믿어
    봐 여잘 먼저 언급했잖아
    엄마 아빠에서 엄마가 먼저 오듯
    책도 한권 읽었지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
    멋진말이였어'

    '여잔 항상 당하며 살았어
    우리 남잔 항상 억압해 왔고 역사적으로도
    But
    여자와 남자가 현시점 동등치 않단건 좀 이해 안돼
    우리 할머니가 그럼 모르겠는데
    지금의 너가 뭘 그리 불공평하게 자랐는데'

    '야 그렇게 권릴 원하면 왜 군댄 안가냐
    왜 데이트 할땐 돈은 왜 내가내
    뭘 더 바래 지하철 버스 주차장 자리 다 내줬는데 대체 왜'

    '나도 할말 많아 남자도
    유교사상 가부장제 엄연한 피해자야 근데 왜
    이걸 내가 만들었어? 내가 그랬어?'


    뿐만 아니라 가사에는 여성가족부와 남성 혐오 커뮤니티 '워마드'를 거침없이 비판하는 내용도 담겼다.

    '여성부 좀 뻘짓 좀 그만하구
    건강한 페미들 위해서라두
    먼저 없애야해 남성혐오
    워마드'

    '거따 요즘 탈 코르셋 (huh)
    말리진 않어 근데 (but)
    그게 결국 다 남자 frame (what?)
    기준이라니 우리가 언제
    예뻐야만 된다 했는데
    지네가 지 만족위해 성형 다 하더니
    유치하게 브라 안차고 겨털 안 밀고
    머리 짧게 짤러 그럼 뭐 깨어있는 듯한
    진보적 여성 같애?'


    곡 말미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여자 편'이며 남들과 다르다고 강조한다.

    '난 여자 편야
    난 여잘 혐오 하지않아
    오히려 너무 사랑해 문제
    너포함 내 엄마 내 누나 내 여동생
    있는 그대로 respect'

    '난 절대적으로 인정해 남자들 잘못에
    강남역 밤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자, 건배'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페미니스트'라는 곡을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 켠에선 '가사 내용에 공감했다'며 산이에게 지지를 보냈고, 또 다른 한 켠에선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가사'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또, 미국 국적으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산이가 군대 이야기를 꺼낸 것을 두고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반응도 많았다.

    이런 가운데 제리케이, 슬릭 등 산이를 '디스'하는 래퍼들도 등장했다. '디스'는 '디스리스펙트'(Disrespect)의 줄임말로 랩 가사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힙합의 하위문화다.

    제리케이는 '노 유 아 낫'(NO YOU ARE NOT)이라는 곡에서 산이의 이렇게 '디스'했다.

    '한마디로 식상한 이 표현만큼 무가치
    맞는 말 딱 한 개 가부장제의 피해자
    것도 참 딱한 게 그걸 만든 것도 남잔데
    당연 그 아래서 님도 모르게 꿀 빤 게
    한두 갤 거 같애?'

    '36.7% 임금격차 토막 내
    그럼 님이 원하는 대로 언제든 돈 반반 내
    CEO 고위직 정치인 자리 대신에
    지하철 버스 주차장 자리로 내는 생색'

    '매일 계속되는 공포는 니 존재보다 확실해
    Fake fact는 이퀄리즘 어쩌구지
    없는 건 있다 있는 건 없다 우기는 무식
    없는 건 없는 거야 마치 면제자의 군부심'


     

    이에 산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유튜브에 '6.9cm'라는 곡을 추가로 공개했다.

    산이는 "제리케이 참 고맙다 너 때문에 설명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며 '6.9cm'를 통해 자신을 '디스'한 제리케이를 '맞디스'함과 동시에 '페미니스트'라는 곡에 대한 부연설명을 했다. 주요 가사 내용은 이랬다.

    '곡 쓴 다음 널 떠올렸어
    곡 속에 남잔 feminist
    라고 하지만 사실 rap 가사 내용 같이
    속 마음은 여자 존중치 않는 파렴치'

    '책 한권 읽었단 내 가사 뜻 은 그만 큼 소견이 좁은
    화자의… 으... 그만하자
    굳이 이렇게 설명해야 이해하는 니 뇌 와 수준이하
    메갈리아'

    '어찌 그 노래가 혐오를 부추겨
    이해력 딸려 곡 전체를 못보고 가사나 봤겟지
    선입견 듣고픈대로 좀 더 깊게봤다면
    화자로 등장한 남자의 겉과 속 다른
    위선과 모순 또 지금껏 억눌린 여성에 관한 내용'


    무엇보다 이목을 끄는 지점은 산이가 '페미니스트' 속 화자가 자신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가사 내용 역시 자신이 주장하는 바가 아님을 밝혔다는 점이다.

    산이는 곡속에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겉으로는 페미니스트인 척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자를 존중하지 않는 위선적인 사람을 비난하고, 동시에 구체적인 '여성 혐오' 사례들을 짚은 것이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한 곡과 앨범을 선보이는 래퍼로 잘 알려져 있는 산이다운 전략이었던 셈이다.

    산이는 그러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6.9cm' 가사의 훅(hook) 부분과 두 번째 벌스에 담았다.

    '우린 혐오 사회 살아 편 가르고 죽이는 사냥
    안믿기면 댓글 가봐 끝으로 내가 하고픈 말은?
    정상적인 사람은 당연히 성평등에
    귀 기울여 함께 바꾸려 노력하지만 근데 메갈은

    뭐만 해도 남자가 여자를 공격하고 있다며
    거짓선동끌어들여
    그건 여성인권 아냐

    워마드 일베가 왜 어때?
    그게 너의 신념이면I respect
    대신 빨리 말해 선 긋게 quick'


    산이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한 바는 앞서 그가 '페미니스트'를 공개하며 올린 '저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습니다. 혐오가 불씨가 되어 혐오가 조장되는 상황을 혐오합니다'라는 글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즉, 산이는 특유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한 랩으로 특정성별이 아닌 '혐오 현상' 그 자체, 그리고 '혐오'를 부추기는 세력들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에선 산이가 처음 발표한 '페미니스트'의 자극적인 가사 내용에만 주목하며 그가 여성혐오 가사를 써 남녀갈등을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한켠에서는 새로운 '힙합 디스전'이 촉발했다는 부분에 더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숲이 아닌 나무에 더 중점을 둔 것이다.

    산이가 사회 문제를 소재로 랩 가사를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2년여 전 '나쁜X'(BAD YEAR)이란 곡을 발표해 큰 화제를 불러 모은 바 있다. 당시 '나쁜X'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떠오르게 하는 가사로 주목 받으며 음원차트 1위까지 찍었다.

    '왜 시국을 풍자하는 랩을 하는 래퍼가 없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질 때 보란듯이 '나쁜 X'을 발표하는 소신있는 행보를 보였던 산이다.

    산이는 지금도 여전히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거제 묻지마 살인' 등 각종 사건사고 관련 게시물을 올리며 분노를 표했고, 사회 비판곡 '워너비 래퍼'(Wanna be Rapper)를 음원사이트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공개한 '페미니스트'는 그와 같은 행보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산이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랩으로 현 사회를 비판하고자 한 셈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산이가 세간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린 상황 속 '페미니스트'라는 곡을 발표하면서 다소 과한 '비틀기'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페미니스트'를 다양한 장치를 심어 놓은 힙합 작품이 아닌 산이의 '공식입장 전문' 쯤으로 이해했고, 그로 인해 온라인상에선 며칠 동안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또, 산이는 자신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여성 혐오' 가사를 쓴 래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산이는 '페미니스트'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자 가사 전문을 해석한 게시물을 올려 곡의 취지를 분명히 밝혔다.

     

     

     

    결국 산이는 1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페미니스트' 곡과 관련한 입장을 정리한 게시물을 올려 직접 부연설명에 나섰다.

    해당 게시물에서 산이는 "작품을 내고 판단은 대중의 몫이기에 누군가 곡의 의미를 알고 분석해주겠지 그냥 가만히 있자는 제 솔직한 마음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팬들의 반응을 보고 입을 열게 됐다고 밝히며 '페미니스트'는 여성을 혐오하는 곡이 아니며 곡에 등장하는 화자는 자신이 아니라고 상세히 설명했다.

    산이는 "곡의 본래 의도는 노래 속 화자처럼 겉은 페미니스트, 성 평등, 여성을 존중한다 말하지만 속은 위선적이고 앞뒤도 안 맞는 모순적인 말과 행동으로 여성을 어떻게 해보려는 사람을 비판하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류의 메타적 소설과 영화를 좋아해 나름 곡에 이해를 위한 장치를 심어놨다고 생각했는데 설정이 미약했나보다"라며 "제 설명이 그 친구와 혹은 그 친구와 비슷한 상처를 느꼈을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소신만큼은 또 한 번 분명히 밝혔다.

    산이는 "('페미니스트' 속) 화자는 남자를 대표하지 않는다. 대부분 남자가 이렇다는 이야기 또한 아니다. 이성적인 남녀는 서로 존중하고 사랑한다"며 "'메갈', '워마드'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지만 그들은 절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성평등이 아닌 '일베'와 같은 성혐오 집단이다"라는 생각을 드러냈다.

    이어 "우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타겟이 되는 세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여자로 사는게 두렵고 무서운 매일을 견뎌야한다는 여자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놀라며 또 공감한다. 제가 여성성별이 아니기에 다시 태어나 여성성별을 갖지 않는 이상 모든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그러나 남자들 역시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범죄를 두려워하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게 모든 남성을 공격해야하는 타당한 이유는 결코 되지 않는다"며 "오해가 조금이나 풀렸으면 좋겠다. 나머지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히며 글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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