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北京 사스의 교훈⑬]중국 vs 대만…사스 대응 관전법



아시아/호주

    [北京 사스의 교훈⑬]중국 vs 대만…사스 대응 관전법

    대만 정부, 병원 통제 실패로 '사스 확산'에 속수무책

    2015년 6월 대한민국이 ‘메르스(MERS) 공포’에 휩싸였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3년 4월 중국의 심장 ‘베이징’도 ‘사스(SARS) 창궐’로 도시 전체가 공황에 빠졌었다. 당시 기자는 칭화대학에서 어학연수 중이었다. ‘메르스 방역’에 필요한 교훈을 찾고자 베이징의 상황을 날짜별로 되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왜 괴질 발생을 숨기나요?"
    ② "정보 통제…괴담만 키운다"
    ③ 뒤늦은 '실토'…'패닉'에 빠진 도시
    ④ '사재기'로 폭발한 공포와 혼란
    ⑤ 공포의 대상이 된 '대중교통'
    ⑥ '충격'과 '공포'…숨죽인 베이징
    ⑦ "아빠 꼭 와요"…의료진의 '사투'
    ⑧ 유학생 '썰물'…한인 상권 '초토화'
    ⑨ "유령 도시?"…베이징의 굴욕
    ⑩ '사스 공포'가 몰고 온 신풍속도
    ⑪ "요즘 정부와 언론 믿는 사람 없어!"
    ⑫ 사스 확산 막은 의료진의 헌신
    ⑬ 중국 VS 대만…사스 대응 관전법


    중국 베이징의 고등학교 학생들(사진 촬영=변이철 기자)

     

    2003년 5월 22일부터 졸업과 대학입시를 앞둔 중국 베이징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휴교 한 달 만의 일이다.

    아침 등교 시간에 교문을 통과하는 학생마다 모두 체온검사를 했다. 수업시간에도 학생들은 마스크를 착용한다. 중국 교육 당국은 교사가 학생과 3m 이상 떨어져서 수업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어쨌든 거리에서 교복(북경의 중고생들은 운동복을 교복처럼 착용했다.)을 입은 학생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건 반가운 일이었다.

    영업을 다시 시작한 음식점도 제법 늘었다. 이날 베이징 시내 인민일보 근처의 한 중국음식점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한 저녁 6시 반쯤 됐을까? 테이블이 40여 개 있는 큰 식당에 빈자리가 없었다. 우리에게 나눠 준 대기표에는 ‘六’이라고 적혀있었다.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손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유쾌한 표정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도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이 20여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공포'는 이미 사라진 듯했다.

    23일 중국 정부가 발표한 일일 사스 환자는 모두 20명이었다. 그 가운데 베이징이 15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당시 베이징의 일일 사스 환자는 10명을 기준으로 계속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신규 발생 사스 환자가 대부분 이미 격리 치료를 받는 '의심 환자'에서 나왔다. 23일의 경우, 신규환자 15명 중 14명이 격리치료를 받던 의심 환자였다. 그만큼 중국 당국이 사스 전염 경로를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중국 정부가 대내외적으로 베이징의 심각한 사스 상황을 공포한 것은 4월 18일이었다. 당시 후진타오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이날 처음으로 "사스 환자 발생 상황에 대한 은폐를 중지하라"고 각 보건당국에 지시했다.

    이틀 뒤인 20일에는 중국 당국이 베이징의 사스 환자 수를 비교적 정확하게 발표하며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21일에는 멍쉐농 베이징 시장이 해임됐고, 곧 장원캉 위생부장도 사임했다.

    뒤이어 중국 공산당 조직부는 "당 간부들과 정부 고위 관리 120명이 사스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해임되거나 정직 등 처벌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들은 사스 발생 이후 지난 1개월 동안 사스 늑장 보고와 늑장 대응, 근무지 이탈 등을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넘겨져 징계를 받았다. 이는 중국 공산당 수립 이후 관리들에 대한 최대 규모의 징계 조치였다.

    특히 사스 환자 치료에 나서기를 거부하고 근무지를 무단으로 이탈한 의사·간호사 등 베이징 의료요원 15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후진타오 당 총서기는 이처럼 초기 대응에 실패한 당 간부와 고위 관리들을 엄히 문책하고 사스 확산 방지를 위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2003년 4월 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문을 닫은 중국 베이징의 한 영화관(사진 촬영=변이철 기자)

     

    무엇보다 신문과 방송 등 언론 매체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활동에 주력했다. 또 초중고교에 대해 전격적인 휴교 조처를 내렸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밀폐된 공간인 극장과 노래방, PC방 등 유흥업소에 대해서도 영업중지를 명령했다.

    또 의사와 간호사의 근무 이탈을 엄금했고, 군(軍) 의무 인력도 대거 투입했다.

    이 밖에도 사스 환자가 발생한 건물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격리 조처를 내렸고 각종 국가시험도 연기했다.

    최고인민법원(대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대검찰청)도 고의로 전염병을 전파하는 자를 징역 10년 이상에서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엄벌 규정을 마련했다.

    이는 사스에 걸린 도시 이주 노동자들이 당국의 귀향 금지 경고에도 불구하고 귀향해 농촌 지역에 사스를 퍼뜨리는 일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전염병 환자 및 의심 환자가 검역이나 격리조치에 응하지 않거나 실수로 전염병을 옮길 경우에도 3∼7년의 중형에 처하도록 했다.

    중국 정부는 이처럼 초기 대응 실패를 인정한 후부터 사스 확산 차단에 필요한 일들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취해 나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면서 베이징의 상황은 크게 호전됐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당시 대만의 상황은 연일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대만 정부도 급증하는 사스 환자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무엇보다 병원과 의료 인력에 대한 느슨한 통제가 문제를 키웠다.

    해외 언론에서는 사스 감염을 우려한 대만 의료종사자의 대량 사직으로 응급시스템이 붕괴했다고 지적했다. 또 사스 환자의 격리 실패로 전염 통제가 이뤄지지 않은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일부 병원들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환자 감소를 우려해 아예 사스 환자 발생 사실을 숨기는 일도 벌어졌다.

    대만의 일일 발생 사스 환자 수는 이미 본토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만 정부의 허술한 위기 대처능력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사스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대만 정부에게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통제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중국과 대만 정부의 상반된 '사스 대응'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