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北京 사스의 교훈⑪] "요즘 정부와 언론 믿는 사람 없어!"



아시아/호주

    [北京 사스의 교훈⑪] "요즘 정부와 언론 믿는 사람 없어!"

    사스 피해 커지자 중국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만 폭증

    2015년 6월 대한민국이 ‘메르스(MERS) 공포’에 휩싸였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3년 4월 중국의 심장 ‘베이징’도 ‘사스(SARS) 창궐’로 도시 전체가 공황에 빠졌었다. 당시 기자는 칭화대학에서 어학연수 중이었다. ‘메르스 방역’에 필요한 교훈을 찾고자 베이징의 상황을 날짜별로 되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왜 괴질 발생을 숨기나요?"
    ② "정보 통제…괴담만 키운다"
    ③ 뒤늦은 '실토'…'패닉'에 빠진 도시
    ④ '사재기'로 폭발한 공포와 혼란
    ⑤ 공포의 대상이 된 '대중교통'
    ⑥ '충격'과 '공포'…숨죽인 베이징
    ⑦ "아빠 꼭 와요"…의료진의 '사투'
    ⑧ 유학생 '썰물'…한인 상권 '초토화'
    ⑨ "유령 도시?"…베이징의 굴욕
    ⑩ '사스 공포'가 몰고 온 신풍속도
    "요즘 정부와 언론 믿는 사람 없어!"

    지난 2003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사스가 창궐하자 문을 닫은 상점들.(사진 촬영=변이철 기자)

     

    지난 2003년 5월 8일. 베이징 시민의 '사스 공포'가 극에 달하면서 중국 정부와 당, 그리고 언론에 대한 불만과 불신도 폭발 직전까지 쌓여갔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중국인 친구인 지앙춘레이(가명)와 진셩츠어(가명)가 기자가 묵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 기숙사로 오랜만에 찾아 왔다. 내부규정상 외부인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어 근처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화제는 당연히 '사스'였다.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기 위해 비자를 신청한 지앙춘레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무래도 사스 때문에 캐나다 비자를 받긴 다 틀린 것 같아. 사스가 이렇게 기승을 부리는데 어느 나라가 중국 사람을 받아주겠어? 그렇지 않아도 중국인이 외국 나가기는 하늘에 별 따기인데…."

    삼겹살과 곱창전골을 시켰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야! 일단 먹고 보자고!"

    또 다른 중국인 친구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내가 묵고 있는 기숙사도 비상조치를 내렸어. 앞으로 한 시간 이상은 외출할 수 없대. 기숙사 안에서만 생활하라는 거지. 큰 아파트는 물론이고 조그만 동네까지 주민증을 보여주지 않으면 통 들어갈 수 없으니 나가도 어디를 갈 수가 있나? 누구를 만날 수가 있나? 이거 영 답답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며칠 전 또 다른 중국인 지인 따오밍(가명)의 말이 떠올랐다.

    "얼마 전, 대련(大連)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 베이징 상황이 안 좋으니까 사스가 잠잠해질 때까지 여기를 떠나 대련으로 피해있으라는 거야.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갔지. 공항에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결국 호텔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어. 당국의 지침이 호텔에 묵으려면 15일 이상 숙박을 해야 하고, 이 기간에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는 거야. 그러니까 먼저 잠복기 동안 격리해서 사스 환자인지 확인을 하겠다는 거지. 결국, 친구 집에서 묵기로 했어.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더군. 북경에서 왔다니까, 친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경계를 하는 거야. 한마디로 '찝찝하다' 이거지. 불편해서 계속 있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이틀 밤 자고 그냥 돌아왔어."

    진셩츠어가 갑자기 중국 정부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초기대응에 완전히 실패했어! 전염병이 돌면, 빨리 국민에게 알리고 조처를 해야지. 계속 괜찮다, 괜찮다 하다 결국 이게 뭐야? 지금 다들 정부에 대해 불만이 엄청나게 많아. 캐나다와 미국은 그래도 신속하게 대처했잖아!”

    마침 TV에서 사스 관련 뉴스가 나왔다. 지앙춘레이가 혀를 차며 말을 잇는다.

    "신문과 방송도 다 소용없어. 상황이 심각한데도 제대로 문제점은 지적하지 않고 순전히 정부 홍보하는 내용이잖아! 특히 요즘 신문과 방송을 믿는 사람들은 정말 별로 없다고!"

    정부와 언론기관에 대한 불신의 골이 생각보다 깊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중국의 몇몇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있었다'고 말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관심을 보이면서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2003년 5월 중국 베이징의 한 시내버스 안. 기사는 마스크를 하고 있고 도로는 텅 비었다.(사진 촬영=변이철 기자)

     

    정말 잔인한 5월이었다. 당시 베이징에선 사람이 사람을 만나기를 꺼렸다. 당연히 집안의 대소사도 제대로 챙길 수가 없었다. 사무실에서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것은 물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것마저 찝찝해했다.

    찬거리를 사는 것도 수월하지 않았다. 특히 그날 벌어서 그날 먹고사는 사람은 생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식자층에서는 이번 일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국제적으로 퍼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도 들렸다.

    노동절 휴무였던 2003년 5월 4일, 일일 사스 환자수가 69명까지 줄어들었던 북경에선 이후 다시 하루 평균 100여 명씩 환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8일 기준으로 베이징의 총 사스 환자는 2,136명, 의심 환자 1,486명, 사망자 112명, 격리 인원 1만8,285명이었다.

    산시(山西)와 내몽고(內蒙古), 천진(天津)의 상황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중국 내지(內地)의 총 환자 수는 4,698명이었고 사망자 수는 224명에 달했다.

    늘어만 가는 사스 환자와 사망자 수만큼 중국 정부와 공산당에 대한 인민의 불만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