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대한민국이 ‘메르스(MERS) 공포’에 휩싸였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3년 4월 중국의 심장 ‘베이징’도 ‘사스(SARS) 창궐’로 도시 전체가 공황에 빠졌었다. 당시 기자는 칭화대학에서 어학연수 중이었다. ‘메르스 방역’에 필요한 교훈을 찾고자 베이징의 상황을 날짜별로 되짚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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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왜 괴질 발생을 숨기나요?"② "정보 통제…괴담만 키운다"③ 뒤늦은 '실토'…'패닉'에 빠진 도시④ '사재기'로 폭발한 공포와 혼란⑤ 공포의 대상이 된 '대중교통'⑥ '충격'과 '공포'…숨죽인 베이징 ⑦ "아빠 꼭 와요"…의료진의 '사투'⑧ 유학생 '썰물'…한인 상권 '초토화'⑨ "유령 도시?"…베이징의 굴욕⑩ '사스 공포'가 몰고 온 신풍속도
2003년 5월 4일 자 베이징오락신보에 '사스가 우리를 바꿨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만평.
최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 공포가 확산하면서 우리 사회에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났다.
회식이나 술자리가 크게 줄었고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비타민을 챙겨 먹는 사람들도 늘었다고 한다. 한 대학교수는 메르스로 학교가 일주일간 휴강하자 아프리카TV를 통해 원격수업을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2년 전 사스가 창궐했던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도 시민들의 삶에 많은 변화가 일었다.
2003년 5월 4일 자 베이징오락신보(北京娛樂信報)에는 재미있는 만평이 실렸다. '사스가 우리를 바꿨다(非典改変了我们)'라는 제목이 달려있었다. 내용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가정에서 식사하는 모습 2. 자전거를 타는 모습 3. 두 사람이 신문을 읽는 모습 4. 운동하는 모습이다.
만평에 실린 그림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1.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사람은 적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 사람은 많다. 2.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은 적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많다. 3. '가라오케'나 '디스코장'에 가는 사람은 적고, 책이나 신문 보는 사람은 많다. 4. 여행 가는 사람은 적고, 운동하는 사람은 많다.
앞서 5월 2일 베이징청년보(北京靑年報)에도 '사스 신풍속도'에 관한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다음은 당시 기사 내용이다.
1. 야외혼례 유행
양복과 드레스를 차려입은 신랑, 신부가 건배한다. 장소는 길거리 한복판. 저 멀리 5층짜리 아파트도 보인다. 하객 30여 명이 의자에 앉아있다. 단상에는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사랑을 나눈 신랑, 신부가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들이 타고 갈 꽃차에도 “모두 한마음으로 사스와 맞서 싸우자!”라는 내용의 그림이 걸렸다. 행인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들의 특별한 결혼식을 축하했다.
2. 요리책 불티
가정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늘면서 요리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국내 한 유명 인터넷 검색사이트에 따르면, 최근 ‘건강’과 ‘요리책’에 대한 조회 순위가 각각 5위와 6위로 뛰어올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 15위 밖에서 맴돌았다. 4월 들어 '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건강과 요리 관련 서적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3. 패스트푸드 배달업체 호황
패스트푸드 배달이 대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패스트푸드 업체 이화콰이찬(梨花快餐)은 지난 4월 말에 배달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점심시간에 접수한 것만 5,100인분. 이날 배달한 것만 2만 명분이 넘는다. 사스로 비상체제에 돌입한 각 병원의 단체 주문이 주요인이다.
2003년 5월 베이징의 상점들에는 '소독 완료'라는 광고문구가 나붙었으나 손님을 끌어들이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사진=변이철 기자)
4. ‘소독완료’ 광고문 유행
5월 1일 베이징 왕푸징(王府井) 거리의 한 의류매장에 “본점 소독 완료! 안심하고 들어오세요!”라는 광고문구가 진열장에 나붙었다. 최근 들어 베이징의 각 상점과 음식점 등 공공장소에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와 같은 광고문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 밖에도 사스가 몰고 온 변화는 많았다. 당시 중국인들은 ‘지폐’를 만지거나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것을 극히 꺼렸다. ‘지폐’와 ‘공중전화’를 통해서도 사스에 걸릴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다. 아예 장갑을 끼고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공중전화도 이용자가 뚝 떨어졌다.
'다리 네 개 달린 것은 책상과 의자만 빼고 다 먹는다'는 광동인(廣東人)의 식습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사스의 발원지가 광동지역으로 전해지면서 모두 광동인에 대해서 한두 마디씩 불만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