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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냐 자위냐" 묻는 이 여자…기어코 밤을 쳤다



문화 일반

    "섹스냐 자위냐" 묻는 이 여자…기어코 밤을 쳤다

    [인터뷰] 영화 '밤치기' 각본·연출·주연 정가영
    한 남자 향한 하룻밤 구애기…직설적 대사 향연
    성역할 전복 신선한 일탈 "그날밤 후회 없어야"

    영화 '밤치기' 감독 겸 배우 정가영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끈질기게 구애하는 하룻밤 여정을 그린 영화가 1일 개봉했다. '밤치기'라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끈다. 현실 사회에서 흔히 요구되는 여성상은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전복된 성 역할이 주는 묘한 일탈의 경험은 신선하다.

    이 영화의 각본·연출·주연을 맡은 정가영(29) 감독에게 왜 제목이 '밤치기'냐고 물었다. 최근 서울 을지로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이뤄진 인터뷰 자리였다.

    "마치 힘차게 뛰어올라 밤하늘을 치는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나요? (웃음) 끈질기게 구애하는 데 걸맞은 강렬한 느낌. '밤치기'라는 단어가 갑자기 떠올랐어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그날을 되돌아봤을 때 '그래, 내가 그날 밤을 기어코 쳤지!'라는,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다는 느낌이 좋았죠."

    '밤치기'는 정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영화감독 가영(정가영 분)이 새 영화 자료조사를 핑계로 진혁(박종환 분)을 만나 그와 하룻밤을 보내려고 애쓰는 과정을 그렸다. 극중 가영이 진혁에게 시나리오를 쓰는 데 필요하다며 던지는 물음들은 꽤나 직설적이다. "하루에 자위 두 번 한 적 있어요?" "섹스가 좋아요, 자위가 좋아요?" "오빠랑 자는 거 불가능하겠죠?"

    장 감독은 "촬영할 때는 시나리오에 98% 정도 입각한, 사실상 애드리브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시나리오가 잘 다듬어져 있어야 현장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영화를 설득하는 데도 좋은 근거가 되니까요. 저 역시 각본 작업을 굉장히 즐거워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요. 감독들마다 다를 텐데, 나는 현장에서 변수가 없고, 밀도가 높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각본대로 최대한 유지하려는 편이죠."

    ◇ '조신한 여성' 판타지에 한방…"나 역시 늘 고백하는 편"

    영화 '밤치기' 포스터(사진=레진엔터테인먼트 제공)

     

    극중 직설적인 대사를 두고 정 감독은 "재밌고 신선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만 갖고, 최대한 머리를 굴려서 시나리오를 썼다"며 "관객들이 지루해 하지 않아야 좋은 영화라는 일념 하나로 (각본을) 쓰는 편"이라고 했다.

    "특별히 '여기서 이런 재미를 추구해야지'라고 계산하지는 않아요. 그냥 손 가는 대로, 아무말 대잔치 느낌으로 막 쓰는 편이죠. (웃음) 특히나 '밤치기' 시나리오는 진혁 역으로 미리 박종환 배우를 염두에 두고 썼어요. '이 밤에 이 매력남을 어떻게 꼬실까'라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갔죠."

    극중 가영 캐릭터가 보여주는 적극적이고 직설적인 구애 과정은, 남성 중심 현실 사회에서 익숙하게 소비되는 이른바 '조신한' 여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정 감독은 "나 역시도 늘 대체로 먼저 고백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내게는 어릴 때부터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죠.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극중 캐릭터 이름도 가영이고, 제가 직업 연기를 하는 만큼 완전히 다른 사람은 아닌 셈이죠."

    '밤치기'에는 진혁 외에 영찬(형슬우 분)이라는 남자 캐릭터가 한 명 더 등장한다. 가영의 구애가 진혁을 향한다면, 영찬의 그것은 가영에게 꽃혀 있다. 서로 물고 물리는 구애 현장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가영이는 진혁이 아니더라도 다른 남자와 그날 밤을 보낼 기회가 생겨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고 싶다는 가영의 선택을 보여주고 싶었죠. 가영과 진혁의 대화 위주로 끌어 온 흐름에서 제3의 인물이 등장해 이상한 대화를 펼쳐 놓으면 또 다른 영화적 재미를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 "20대 내 머릿속은 온통 '사랑'과 '영화'…이젠 입체감 더하고파"

    영화 '밤치기' 감독 겸 배우 정가영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정 감독은 "지난해까지 아르바이트를 정말 열심히 했는데, 올해부터는 알바를 안 하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돈 나올 데가 없으니까 생활비 벌려고 알바를 정말 열심히 뛰었죠. 그런데 올해부터는 연출료·상영료 등 영화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조금씩이나마 생기더군요. 그걸로 생활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영화로 돈을 벌어보자!'고 마음먹고 있어요. (웃음)"

    그는 "20대 정가영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주제는 '사랑'과 '영화'"라며 "그렇게 찍은 단편 영화를 유튜브 채널 '가영정'에 모두 올려놨는데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첫 장편 '비치온더비치'는 '전 남친이 찾아와 자자고 조른다', 이번 '밤치기'는 '끈질기게 구애를 한다'처럼 한 줄로 설명이 가능해요. 이 한 줄이 지닌 매력도 상당하지만, 앞으로는 관객들이 영화를 본 뒤 재미뿐 아니라 '이상하다' '저게 맞는 걸까' 싶은 신선한 입체감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정 감독이 20대 끄트머리에 선 올해 촬영을 마치고 내년 개봉을 준비 중인 세 번째 장편 독립영화 '하트'는 그러한 입체감을 지닌 영화의 신호탄 격이다.

    "즐겁게 찍은 불륜 이야기예요. 역시 내가 주인공이고 '꿈의 제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이석형 배우와 호흡을 맞췄죠.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기존 내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고, 상대적으로 촬영 장소도 많고, 컷도 더 재밌게 들어간 부분이 있어요."

    미투 운동을 통해 젠더 감수성에 무딘 한국 사회 민낯이 드러나고, 성평등을 외치는 여성과 성소수자 그리고 이들과 연대한 남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지금, 정 감독 영화의 주제의식은 이러한 시대정신과도 공명하는 모습이다.

    "반대하는 이슈와 묶이면 적극적으로 '내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할 겁니다. 하지만 나 스스로도 페미니즘 이슈를 통해 많이 달라졌어요. 신선하고 입체적인 그 이슈 안에 내 영화가 묶이는 일은 고맙죠."

    그는 "사실 '젠더 이슈를 주제의식으로 삼겠어'라고 마음먹었다기 보다는 '내가 잘 풀어낼 수 있는 신선한 이야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며 "나 역시 페미니즘 이슈에 많은 관심을 가진 만큼, 내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그 이슈와 연결 지어 생각한다면 반가운 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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