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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에 갇힌 하청업체…계약서 미작성 관행 탓에 손실 떠안아



사건/사고

    족쇄에 갇힌 하청업체…계약서 미작성 관행 탓에 손실 떠안아

    원청 업체 횡포에 수억 빚더미…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

    A 씨가 운영하는 자동차 부품 공장. (사진=류연정 기자)

     

    대구의 영세한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이 원청 업체의 갑작스러운 거래 중단으로 수억원의 빚더미에 오를 위기에 처했다.

    서면 계약서를 쓰지 않고 하청을 맡기는 업계 관행과 하청에 재하청을 두는 산업 구조가 영세 업체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 "투자비 수 억 원 들였는데 어쩌라고"

    지난 2015년 대구에서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A(64) 씨는 직원 100명 규모의 B 자동차 부품 업체로부터 부품 가공을 의뢰받았다.

    해당 부품을 만들려면 새 기계와 치공구(부품 생산을 위해 필요한 공구류)를 장만해야 해 A 씨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B 업체는 매달 10만개의 부품을 맡기겠다며 설득했고 결국 A 씨는 빚을 내 기계와 치공구를 구입하는데 6억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그런데 납품을 시작한 지 2년이 채 안 된 지난해 8월, B 업체가 갑작스레 생산량을 3만개로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투자비조차 회수하지 못할 위기에 놓인 A 씨는 B 업체에 항의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남은 납품량마저 맡기지 않을까봐 냉가슴만 앓았다.

    그러던 차에 B 업체는 해당 부품을 쓰는 자동차의 생산이 중단된다며 거래를 완전히 중지하겠다고 알려왔다.

    보통 자동차 부품 업계에서 기계 구입비 등 투자비를 회수하는 데는 3년이 걸린다.

    때문에 하청 업체에서 새 기계까지 구입해 사업을 진행하면 원청 업체는 3~5년 동안 같은 하청 업체에 일을 맡기는 게 관례다.

    A 씨는 아직 투자비의 절반도 갚지 못한 상황. 그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서면 계약서 없는 거래…'을'은 침묵만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을 거래하는 원·하청 간에는 서면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이 일상화돼있다.

    A 씨 역시 투자비 보전 기간을 담보하기 위해 계약서를 작성하고 싶었지만 B 업체에 요구하지 못했다.

    바로 원·하청 업체간 '갑을 관계' 때문이다.

    A 씨는 "이 바닥에서는 보통 구두로 납품 지시를 받고 3~5년 계약을 유지한다. 계약서를 써달라고 하면 번거롭다는 이유를 들어 다른 업체와 계약을 할 게 뻔해서 요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청 밑에 또 하청, 그 아래에 다시 하청을 주는 자동차 산업의 구조도 영세 업체들의 고충을 심화시키고 있다.

    가장 상위에 있는 완성품을 만드는 자동차 업체에서 생산 대수를 줄이거나 아예 중단하면 아래 하청 업체들은 그저 따르는 수밖에 없다.

    B 업체 역시 A 씨에게는 원청이지만 전체 구조로 보면 1차 하청 업체에 속한다.

    B 업체는 자신들의 원청 업체가 해당 부품이 들어가는 차량 생산을 중단한다고 해 어쩔 수 없이 2년 만에 납품을 끊었다는 입장이다.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하청 관계로 인해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 단계에 위치한 영세 하청 업체가 손실 대부분을 떠안는 구조다.

    특히 영세 하청 업체는 생산 중단을 통보받는 기간이 늦어져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비할 시간조차 없다.

    B 업체 관계자는 "우리도 생산 라인이 확 준다는 것을 늦게 파악하다보니 A 씨에게 이를 알려준 시점이 늦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A 씨가 B 업체에 납품한 자동차 부품. (사진=류연정 기자)

     

    ◇ 사업 정리만 도와달라는 외침도 외면…"스스로 자구책 마련해야"

    A 씨는 B 업체의 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라며 원청 업체에 사업을 정리하는 것만이라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기계 투자비는 손해를 좀 보더라도 중고로 처분할테니 치공구만이라도 인수해달라는 제안이었다.

    치공구의 경우 해당 부품을 제작하는 데만 쓸 수 있어 A 씨에게는 무용지물이기 때문.

    B 업체는 A 씨가 납품하던 것과 동일한 제품 일부를 자체 제작하고 있어 해당 치공구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B 업체는 매몰찼다. A 씨에게 몇 년 동안 납품을 받겠노라 약속한 적이 없고 갑작스러운 생산량 변경이 B 업체의 결정도 아니니 A 씨가 스스로 위기를 탈출해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해 A 씨는 "기계를 사서 납품을 하라고 권유할 때는 언제고 자기들은 그런 적이 없다며 내가 사업을 따려고 거액의 투자를 결정한 것이라고 하더라. 그 사람들이 꾀지 않고서야 내가 혼자 그 큰 금액을 투자하려고 마음을 먹었겠느냐"고 토로했다.

    이제 해당 부품을 만들 수 없는 A 씨에게 남은 치공구는 무려 1억원 상당.

    A 씨는 결국 원청 업체라는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 거래를 강요했다고 보고 공정거래위원회에 B 업체를 신고한 상태다.

    A 씨는 "일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지 않나. B 업체에서는 어차피 이 치공구가 필요할텐데 다는 안 되고 필요한 극히 일부만 사겠다고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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