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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부검 결정, 민주화의 계기 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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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복지

    "박종철 부검 결정, 민주화의 계기 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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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환 "민주화의 젊은 영웅 박종철·이한열 열사…잊혀지는 게 안타까워"

    - '솔직하게 말해봐라'했더니 대뜸 "고문은 안 했어"
    - 시체보존명령 내린 밤…"청와대, 안기부 發 협박전화에 밤새 시달려"
    - 경찰병원에서 故 박종철 시신 두고 실랑이…결국 사체 압수수색 영장까지 발부
    - 사표 쓰고 끌려갈 각오까지 한 이유? "더이상의 의문사는 안 된다"
    - 청년들, 어느 자리에서건 법치주의에 맞도록 처신하고 감시해달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8년 1월 12일 (금)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최환 변호사 (1987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
     
    ◇ 정관용> 요즘 영화 1987이 큰 화제입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으로 촉발된 6월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죠. 내일모레 1월 14일이 바로 박종철 열사의 기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아마도 이분의 선택이 시발점이 돼서 세상에 드러난 게 아닐까 싶은데요.
     
    박종철 군의 시신 보존 명령을 내리고 부검을 지시해서 사건의 은폐를 막은 분이죠.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이셨던 최환 변호사, 영화에서는 하정우 씨가 연기를 했는데요. 하정우 씨하고 본인하고는 많이 다르다고 주장을 하시네요. 그래서 뭐가 같고 뭐가 다른지 오늘 좀 확인해 보려고 최환 변호사를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최환> 안녕하십니까? 최환입니다.
     
    ◇ 정관용> 하정우 씨하고 뭐가 제일 달라요?
     
    ◆ 최환> 우선 저보다 키가 커요. 머리 반절은 더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나이가 젊고요.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제가 30년 전으로 거슬러갑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본다면 언뜻 생각하면 동생 같은 생각이 들어요. 이건 뭐 외모상의 얘기고 영화를 가만 보니까 그건 영화의 특수성 때문에 혼자 마음 속에 뭐 생각을 품었다는 것은 영화에서는 모르거든요. 그걸 뭔가 행동으로 보여줘야 되니까. 그래서 그때 하정우 배우가 그거를 연기하면서도 고민 많이 했던 게 뭐냐 하면 바로 이겁니다.

    저는 시체를 몰래 덮어서 암장하는 거라든가 해서 의문사 숫자를 하나씩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입니다. 아니, 사람이 세상을 버리고 떠났다면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 합당한. 명분도 있어야 되고. 그래서 이제 저한테 두 사람이 와서 평상시도 다른 업무연락 때문에 제가 알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 정관용>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에 있던 분들.
     
    ◆ 최환> 그렇죠. 밤늦게 다 퇴근하고 나밖에 안 남아 있는데 왜 오셨냐 했더니 저희 좀 도와주십시오, 그래요. 사람이 죽었는데 여러 의사들이 다 보느라고 시간이 걸렸다고 그러는데 그건 약간 좀 저한테 피하려고 한 소리고.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급해서 자기들은 부산에 가서 박종철 군의 아버지를 만났대요. 만났더니 아버지한테 설명하면서 조사 받다가 그냥 쓰러져서 죽었습니다 하니까 그러면 할 수 없지요. 어떻게 할까요 하니까 화장을 해 주십시오. 화장해서 이제.
     
    ◇ 정관용> 그렇게 아버지가 동의했다.
     
    ◆ 최환> 그럼요. 그래서 유골이 나오면 그건 이제 아버지한테 줘서 가루 만들어서 그렇게 하면 아버지가 장례 치르겠다. 그렇게... 박정기 옹이죠, 아버님. 그분이 그렇게 순순히 얘기를 해 주셨다, 경찰이 안심하고 그냥 합의서 도장 찍어달라고 올라온 거예요.
     
    ◇ 정관용> 그러니까 그날 화장하는 것을 수사지휘권 갖고 있는..
     
    ◆ 최환> 저한테 와서 받아야죠.
     
    ◇ 정관용> 공안부장의 도장을 찍어야만 되는 거죠?
     
    ◆ 최환> 그렇죠.
     
    ◇ 정관용> 그러니까 도장 찍어달라고 경찰관들이 가지고 왔는데 그 당시 공안부장으로서 서류만 딱 보고서도 이거는 바로 화장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신 거잖아요.
     
    ◆ 최환> 당연하죠, 제가 보니까. 저도 몇십 년 한 검사인데, 그 당시에. 그래서 안 되겠다.
     
    ◇ 정관용> 안 되겠다.
     
    ◆ 최환> 그래서 그동안 업무연락도 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한테 못 할 소리가 어디 있느냐. 다 털어놓아라 했더니 고문은 안 했어. 아니 고문 얘기도 안 했는데 고문은 안 했습니다, 이래요.
     
    ◇ 정관용> 그리고요?
     
    ◆ 최환> 쇼크로 죽었다.
     
    ◇ 정관용> 계속 털어놓지 않았어요?
     
    ◆ 최환> 안 해요. 그러니까 저기 심장마비로. 어떻게 보면 심장마비도 고문하다가 당하는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 두 분의 얘기가 갈팡질팡해요. 그러니까 제가 한눈에 이건 뭐 어떤 종류의 고문을 했는지는 몰라도 결국은 고문 때문에 죽은 것은 틀림없겠다.
     
    ◇ 정관용> 그렇구나. 그래서 화장해서는 안 되겠구나.
     
    ◆ 최환> 그래서 화장하면 안 된다. 그러면서 돌려보내면서 이건 내가 내일 밝은 낮에 정식으로 변사사건 발생 보고서를 써서 가지고 오라. 그랬는데 변사사건 발생보고서는 거기서 대공경찰이 쓰는 게 아니고 관할 경찰서장의 명의로 하는 겁니다. 용산경찰서장 이름으로 가져와라. .
     
    근데 그냥 돌려보냈다가는 완강히 하는 태도로 봐서는 저희는 내일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와서 보니까 사체가 없다. 어디 갔느냐. 화장하고 말았다.
     
    ◇ 정관용> 그럴 수도 있으니까.
     
    ◆ 최환> 자기들 둘은 거기 와 있는데.
     
    ◇ 정관용> 그렇죠.
     
    ◆ 최환> 다른 제3의 경찰관이 잘 모르고 했다. 이래버리면 핀잔이나 받을 일이지 큰일이거든요. 그래서 사체보존명령을 했어요. 지금도 사체 거기 있느냐 확인해 보고 있다 하니까 보존.
     
    ◇ 정관용> 보존명령을 내리고 내일 정식으로 용산경찰서장이 변사사건 발생보고서를 가져와라.
     
    ◆ 최환> 그래서 그다음 날 가져왔습니다.
     
    ◇ 정관용> 그다음 날 가져오기까지 그날 밤 사이에 여러 곳에서 전화도 오고 협박도 오고 그랬습니까?
     
    ◆ 최환> 그거는 당연하죠.
     

    영화 '1987'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정관용> 어디어디서 왔어요?
     
    ◆ 최환> 어디어디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고요. 저와 아는 사람들 혹은 중간중간 가면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한테서 전화가 오는데 어디가 그러면 압력의 시발점이냐. 그거는 청와대예요. 또 안기부고.
     
    ◇ 정관용> 최 변호사님한테 전화를 했나요?
     
    ◆ 최환> 저한테 바로 하는 게 아니라 저하고 아는 사람들한테. 예를 들어서 청와대에 관심이 크다. 그거는 영화에도 나옵니다. 그게 누구냐 하면 치안본부장.
     
    ◇ 정관용>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
     
    ◆ 최환> 강민창 당시 본부장. 그다음에 또 대공처장하는 박처원 씨한테 옵니다. 그 사람들이 공안부장한테 얘기하는데 잘 안 된다는 둥 이렇게 저렇게 하면 청와대 쪽에서나 이런 곳에서는 거기다가 압력 넣다가 안 되면 우리들도 내부에 장관 청장이 있으니까.
     
    ◇ 정관용> 법무장관, 검찰청장.
     
    ◆ 최환> 그런 식으로 은연중에 그거 대학생 하나 죽은 거 가지고 그렇게 복잡하게 하지 마라. 지금 시국이 개헌이냐 호헌이냐 하는 것도 있고 또.
     
    ◇ 정관용> 그러니까 직접 서울지검 공안부장의 직속 상관들한테.
     
    ◆ 최환> 얘기를 해서.
     
    ◇ 정관용> 연락이 온 거죠?
     
    ◆ 최환> 연락하니까 그분들이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 그래서 그날은 넘어갔어요. 넘어간 게 뭐냐 하면 이 사람들한테 내일 가져오면 내가 정식으로 변사사건으로 처리를 해서 부검 여부를 결정하겠다.
     
    ◇ 정관용> 일단 하루를 번 거네요.
     
    ◆ 최환> 그렇죠.
     
    ◇ 정관용> 그래서 그다음 날 변사사건 발생보고서를 받아들고서.
     
    ◆ 최환> 받아서 제가 검사장한테 갔죠. 부처 상관이니까. 그분이 참 잘해 주셨어요.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니까 공안부장 얘기를 들어보니까 나도 고문에 의심이 간다. 그 말씀을 하셨어요. 고문이다 딱 얘기는 안 하시고. 그러면 공안부장이 알아서 하라. 저한테 아주 그냥 재량권을 주신 거예요.
     
    그런데 부검명령을 하는데 그런데 그 시신을 경찰병원에서 영안실에 놓고서는 내주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법원에서 부검을 하기 위한 사체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온 거죠. 받아서 처리를 하는데 그다음부터는 원래 우리 검찰 업무처리에 변사사건 발생할 때는 그것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형사부 검사가 합니다. 공안부에서 안 한다 이거죠. 공안부에서 그런 거를 하게 되면 우선 공정성에 의문이. . .
     
    ◇ 정관용> 의심이 갈 수가 있으니까.
     
    ◆ 최환> 의심이 가는 겁니다. 그래서 형사부 당직검사를 배정해 주셨어요. 정검사장님이. 그래서 누가 했나 보니까 용산경찰서 담당하는 부서가 형사2부입니다. 2부의 그날 당직검사. 안상수 검사입니다.
     
    ◇ 정관용> 안상수. 과거 새누리당 대표까지 했던.
     
    ◆ 최환> 물론이죠.
     
    ◇ 정관용> 그래서요?
     
    ◆ 최환> 그렇게 해서 저한테 배속을 시켜줘서 그래서 이제 경찰 병원에 있는 시신을 억지로라도 해서 한양대학병원으로.
     
    ◇ 정관용> 옮겨서. 영화에도 보면 시신 가져오라고 몸싸움하고 그런 게 다 나오더라고요.
     
    ◆ 최환> 그러니까 그 당시 경찰병원은 왕십리에 있었기 때문에 왕십리에서 제일 가까운 게 한양대학병원이거든요. 거기로 왔어요. 그것도 안 내놓으려고 하는 거를 제가 그랬죠. 아니, 경찰에서 조사받다가 죽은 사람인데 그래서 지금 고문 여부가 가장 중심적인 키포인트인데 그것을 경찰병원에서 부검을 하면서 경찰병원 의사가 나와서 집도를 하고 거기서 또 경찰 산하에 있는 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황적준 박사가 그때 부검을 합니다.
     
    ◇ 정관용> 그렇죠.
     
    ◆ 최환> 그 법의가. 그래서 그분이 나와서 만일 한다면 어찌됐건 부검 결과에 대해서는 누가 믿겠느냐.
     

    최환 변호사(1987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 (사진=시사자키)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래서 한양대병원으로 옮겨서 정식부검을 하고.
     
    ◆ 최환> 정식부검을 하는데 그 자리에 뒀다가는 똑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장소만 경찰병원에서 일반병원으로 왔다는 것 뿐이지 거기 집도한다는 사람은 또 같은 경찰 의사? 또 국과수의 황적준 박사 이렇게 하니까 제가 또 전화를 했어요. 한양대학부속병원장한테.
     
    ◇ 정관용> 뭐라고요?
     
    ◆ 최환> 부검 경험이 많은 의사 1명을 좀 지원을 해 달라.
     
    ◇ 정관용> 민간 의사를 참가시키도록.
     
    ◆ 최환> 그렇게 해 달라고 하니까 또 고맙게 해 주대요. 그래서 세 사람이 부검을 한 겁니다. 그 부검 하면서부터 제가 안 검사를 파견해서 거기서 특이한 소견이 나올 때마다 적어라, 좀. 의사가 보는 데서. 그리고 그 의사한테 사인을 받으라고 그랬어요. 그렇게 완벽하게 하니까 꼼짝을 못 하죠.
     
    ◇ 정관용> 완벽하게 그래서 사인이. . .
     
    ◆ 최환> 아니, 사인을 물고문으로 나왔더라도 그 당시 돌아가는 분위기는.
     
    ◇ 정관용> 덮어버릴 수 있으니까.
     
    ◆ 최환> 덮어버리려고 그랬어요.
     
    ◇ 정관용> 그러니까 검사가 현장에서 다 메모하고 사인까지 받아서.
     
    ◆ 최환> 그리고 제3자인 한양대병원부터도 거기 있고.
     
    ◇ 정관용> 그랬군요.
     
    ◆ 최환> 그래서 그게 지켜진 겁니다. 저보고 그래요. 너 왜 이렇게 독하게 그렇게 말하냐. 이번에 저는 인권 보장을 해 주기 위해서 이제는 수사기관에서도 함부로 고문 못 하게 한 것입니다. 논란이 그걸 갖다가 제대로.
     
    ◇ 정관용> 그날 그런 일들을 하실 때 처음에 화장하는 것 동의 못 하고 시신 보존명령 내리고 변사사건 발생보고서 가지고 오라고 하고 그리고 부검 지시하고 시체도 안 주려고 하니까 압수수색영장까지 받아가지고 그다음에 민간 의사까지 참여시키고 이런 일들을 쭉 하시면서 나 이러다가 검사 옷 벗겠구나라는 이런 생각은 안 하셨어요?
     
    ◆ 최환> 옷 벗을 각오를 했죠, 제가요. 솔직히 검사로서 검사에 임관된 뒤로 남들 하기 어렵다는 공안부장까지 했으면.
     
    ◇ 정관용> 서울지검 공안부장 아주 좋은 보직이죠.
     
    ◆ 최환> 그렇다고 하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겠나. 그래서 사표 내라면 사표 내고 혼 좀 나라고 하면 또 끌려가야지 어떡합니까? 그래서 이제 각오를 했죠.
     
    ◇ 정관용> 나는 검사 옷 벗을지도 모른다. 어디 끌려갈지도 모른다라고 각오를 하고 그렇게 하셨다라고 했는데.
     
    ◆ 최환>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박종철 열사 사망 30주기 (사진=자료사진)
    ◇ 정관용> 그런데 동시에 또 그날 그 하루 사이에 이거의 고문의 진상은 밝혀야 되겠다라고 결심을 하시면서 그 일이 우리나라의 민주화의 결정적 어떤 계기가 되리라는 생각은 하셨어요?
     
    ◆ 최환> 그건 생각을 제가 했죠.
     
    ◇ 정관용> 그래요?
     
    ◆ 최환> 왜냐하면 이것은 그냥 단순히 어느 특정한 사람이 고문당해서 죽었다고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우리 민주 절차에 어긋나는 짓이거든요.
     
    ◇ 정관용> 그럼요.
     
    ◆ 최환> 사람이 잘못해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으면 몰라도 그게 어떻게 사람이 죽는다는 것까지 우리가 용인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그 당시 상황은 고문도 많이 그게 일어나고 있었고 그다음에 더 안타까운 것은 어떻게 해서 죽었는지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의문사가 많았어요. 그러니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되려면 형사 절차, 사법 절차도 민주화되어야 한다. 말은 거기에 헌법에 적혀 있고 형사소송법에 나와 있어도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렇게 운영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그것을 막아야겠다.
     
    ◇ 정관용> 그 원칙을 세워야겠다.
     
    ◆ 최환> 그걸 막는데 그걸 위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표 쓰고 나가든가 끌려가서 조사받든가 그렇게 하고.
     
    ◇ 정관용> 나도 해야 되겠다.
     
    ◆ 최환> 해야 되겠다 그래서 만일 이게 되면 그게 민주화의 단초가 되는 거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 당시 최환 변호사님의 그런 결단으로 완전히 미궁에 빠지고 그냥 화장 처리될 뻔한 것을.
     
    ◆ 최환> 의문사로 끝날 일을.
     
    ◇ 정관용> 그것을 이제 밝혀내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그다음에 또 치안본부 쪽에서 진범을 다 감추고 이런 과정들이 쭉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이 이 영화에도 등장을 합니다마는 옥중에서 이부영 전 의원이 교도관들의 도움을 받아서 외부에 있는 김정남 씨를 통해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으로 가고.. 이 과정. 이 과정에는 직접 관여는 안 하셨습니다마는.
     
    ◆ 최환> 제가 그건 관여를 안 했고 그것도 관여하는 것을 위에서는 싫어했습니다. 그게 뭐냐면 사망원인만 네가 밝혀냈으니까 그다음에는 형사부에서..
     
    ◇ 정관용> 손 떼라?
     
    ◆ 최환> 너는 손 떼고 형사부에서 하라 하니까 형사부에서 자기들이 직접 해야 되는데 또 그리고 다 밝혀진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해야 되는데 그것을 경찰의 부서로 보냈어요. 당신들이 초동수사, 초벌수사를 해서 우리한테 보내라.
     
    ◇ 정관용> 그러니까 그렇게 엉망이 된 거예요.
     
    ◆ 최환> 그게 바로 경찰이 원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5명인데 둘로 축소하고 셋은 빼버렸지 않습니까. 이래 놓으니까 검찰이 도와줬다. 경찰이 축소하는 것을. 그러니까 결국은 검찰하고 경찰이 똑같이 처음에는 은폐하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그다음에는 축소 조작을 해서 똑같다. 그래서 우리 검찰도 한동안 욕을 많이 먹었어요.
     
    ◇ 정관용> 그렇죠. 그런데 이부영 전 의원 그리고 김정남 씨하고 우리 최환 변호사님하고는 서울대 정치학과 동기잖아요.
     
    ◆ 최환> 그게 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터지고 난 뒤에 어떻게 우리 친구들끼리 한 거지 처음부터는 알았더라도 그렇게 못하죠.
     
    ◇ 정관용> 참 정말. . .
     
    ◆ 최환> 하여간 이상하게 딱 맞아들어갔어요.
     
    ◇ 정관용> 훌쩍 30년이 흘렀습니다.
     
    ◆ 최환> 그렇습니다.
     
    ◇ 정관용> 오늘날 우리 사회는 30년 전보다는 확실히 좋아졌습니까?
     
    ◆ 최환> 좋아졌다고 봐야죠. 우선 그와 같은 종류의 물고문이라든가 이런 참혹한 고문이라는 게 사라졌잖아요. 그다음에 어쨌든 그 당시에 386들이 모여서 계속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을 하는데 어느 정도 좀 서서히 풀어주는 사회가 됐는데 그때도 제일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올림픽입니다. 올림픽인데 너무 심하게 할 수는 없다.
     
    ◇ 정관용> 요즘 젊은이들이 이 1987 영화, 자기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들을 보면서 눈물도 흘리고 그런답니다. 젊은이들한테 한말씀만 마지막으로 해 주신다면.
     
    ◆ 최환> 뒤늦게라도 젊은이들이 그 당시의 민주화운동이라는 걸 아주 확실하게 이해를 하고 그 뜻에 동참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도록 하는 데는 이 영화의 공이 굉장히 큽니다. 그런데 영화가 제작되기 전까지는 솔직히 말씀드려보면 저도 참 안타까운 게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라는 걸 서서히 전부 다 잊혀가는. 그리고 지금 50대까지는 대학생이 아니었거든요, 30년 전에는.
     
    그러니까 대학 1학년이라고 해도 쉰 살일 텐데 그러면 그 밑에 마흔 아래는 전혀 모르는 거죠. 초중고등학교 아니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하니까. 결과적으로는 제가 지금 볼 때는 그렇습니다. 박종철 열사하고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우리나라 민주화에 단초를 제공해서 문을 열어준 게 아니냐.
     
    ◇ 정관용> 기폭제가 됐죠.
     
    ◆ 최환> 그리고 저도 그런 죽음을 제가 미리 알았더라면 그런 고문 못 하게 해서 살려놓고 해야 되는데 그거를 못 했기 때문에 민주화에 그저 젊은 영웅이었다는 말이라도 나중에 그 두 학생들이 듣게 된다는 것은 제가 또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말 듣도록 하는 데도 조그마한 기여라도 했다는 데 의미가 있어서 이제는 그걸 젊은 사람들은 쭉 배우면서 참인간이 되도록 노력하고.
     
    어느 부서에 가더라도 우리 헌법적 가치를 보장하고 또 법치주의, 민주주의라는 건 또 중요한 게 법치주의거든요. 거기에 맞도록 우리가 처신도 하고 감시해야 되겠다. 그렇게 좀 해 달라는 얘기입니다.
     
    ◇ 정관용> 과거를 기억하면서 바르게 살도록 하자.
     
    ◆ 최환> 맞습니다.
     
    ◇ 정관용> 오늘 여기까지 말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최환> 감사합니다.
     
    ◇ 정관용> 최환 변호사 함께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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