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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최순실 PC 구해왔다면 우린 보도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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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최순실 PC 구해왔다면 우린 보도할 수 있었을까"

    SBS·YTN·KBS 기자들, '최순실 게이트' 적극 보도 요구 '한목소리'

    '정치권력과 경영진의 보도개입 중단 및 공정방송 촉구 조합원 결의대회'에 참여한 언론노조 SBS본부 조합원들 (사진=언론노조 제공)

     

    "엊그저께 시청률 표를 열어봤을 때 다들 비슷한 느낌이었을 거다. 정말 참담했다. 짜증났다. 화도 났다. (SBS가 JTBC에) 시청률이 역전된 첫날 저희 기자들 게시판에 너무나 많은 글이 올라왔다. 분노가 폭발했다. 그게 이틀 이어지자 어제는 글이 하나도 없더라. 할 말이 없었던 게 아니라 이 상황이 참담했던 거다. 어정쩡한 1등, 1등하는 걸 스스로 외면했던 우리가 좋은 상대를 만난 것 같다. 사라졌던 MBC의 자리를 JTBC가 채워주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그들하고 경쟁하는 게 바른 이야기를 하는 거고 좋은 저널리즘을 경쟁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그들은 우리가 무시하고 외면할 상대가 아니다" - SBS기자협회 권영인 협회장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의 보도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지상파 방송사가 아니다. 한겨레는 지난달 20일 처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이름을 꺼냈고, 미르·K스포츠재단 관계자들을 단독인터뷰하며 꾸준히 의미 있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방송 쪽에서는 JTBC 활약이 눈부시다.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를 입수해 대통령 연설문 수정 및 인사 관여 등 새로운 사실을 밝히고, 청와대의 해명을 반박해 나가고 있다.

    한때 가장 영향력 있고, 파괴력 있는 보도를 해 왔던 지상파 방송사들과 보도 전문 채널은 맥을 못 추는 상황이다. KBS, MBC, SBS, YTN에서 모두 자사 보도를 비판하고 보도책임자의 각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 "JTBC와 경쟁하며 열심히 싸워나가는 게 바른 저널리즘 실현하는 것"

    28일 낮 12시 30분, 서울 양천구 SBS 사옥 1층 로비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본부장 윤창현, 이하 SBS본부)가 주최한 '정치권력과 경영진의 보도개입 중단 및 공정방송 촉구 조합원 결의대회'가 열렸다.

    그동안 SBS본부는 △세월호·총선 보도에서의 불공정성·기계적 균형 △이정현·김시곤 녹취록 축소보도 △대통령 스피커 노릇하는 보도 행태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타해 왔으나, 보도 방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응할 특별취재팀 구성 역시 기자들이 제안한 지 한달이 지나서야 만들어졌다. SBS본부 설명대로 이미 보도의 "격차가 벌어져도 너무 벌어진" 뒤였다.

    SBS기자협회 권영인 협회장은 "MBC한테 지면 안 되고 MBC보다 먼저 도착해 더 빨리 취재해야 했다. MBC보다 잘하는 건 시청률이 좋아지고 단독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저널리즘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었다. 더 바른 길을 전하는 길이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입사한 지 10년쯤 됐을 때 (SBS가) MBC보다 앞서 있었지만 그 다음이 더 문제였다. 1등이 됐어도 1등으로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던 것 같다"며 "그 사이 조롱하고 우습게 봤던 종편들이 성장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들(JTBC)은 우리가 무시하고 외면할 상대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JTBC가 하는 것과 우리가 하는 것, 매일매일 비교하면서 그들하고 경쟁하고 뒤처지지 않게 열심히 싸워나가는 게 바른 언론사, 바른 저널리즘을 실현하는 거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보도본부 박원경 기자는 "다른 게 아니라 '좋은 보도'를 하면 박수쳐 줄 수 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다른 쪽이 더 잘해서 좋은 보도를 했으면 정말 박수쳐 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피해서, 그 결과로 '눈 뜨고 물먹고 있는' 상황을 보니까 마음이 아픈 것"이라고 밝혔다.

    박 기자는 "우리가 모여 있는 이유도 오래 전부터 예견돼 왔다. 세월호 참사 겪고 나서 좀 있다가는 (JTBC에) 역전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순치돼 왔던 것 아닌가 반성한다"며 "'위기는 기회'라는 말,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지, 이번에는 위기가 꼭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22일 경찰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파헤치고 물대포의 위험성을 직접 실험으로 입증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알'의 이큰별 PD도 이날 결의대회에서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자기검열의 늪'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PD는 "제가 제작현장에서 느낌 공정방송이란 당당하게 그만큼의 책임감으로 취재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검열에 빠지지 않는 것"이라며 "'어차피 이런 얘기 꺼내봤자 (보도) 안 돼'라고 생각할 때 말하는 능력, 현장에서 발로 취재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치열한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내고, 일에만 집중하는 조직문화가 꽃피웠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SBS본부 윤창현 본부장은 "이 자리는 그저 욕하고 한탄하고 규탄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기사 한 줄, 토씨 하나 갖고 싸워 주십시오. 부당한 지시를 거부해 주십시오. 거기서부터 우리 싸움이 시작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SBS본부는 △보도와 교양을 비롯한 모든 제작현장에서 민원성 제작지시와 로비활동이 내려올 경우 거부할 것 △부당 지시가 발생했을 때 노조에 알릴 것 △공정방송을 의미하는 리본을 사내에서 항상 달 것 등을 결의했다.

    ◇ YTN, KBS서도 긴급 총회 열려

    27일 저녁 YTN 뉴스퀘어 3층 보도국에서 열린 긴급 사원 총회 모습 (사진=언론노조 YTN지부 제공)

     

    중요한 이슈를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뉴스채널이기를 포기한 지 오래"라는 자성이 나왔던 YTN에서도 27일 긴급 사원 총회가 열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지부장 박진수, 이하 YTN지부)와 기자·카메라기자·보도영상인·기술인협회 등 4개 직능단체가 공동 주최한 사원 총회는 이날 저녁 7시부터 약 3시간 동안 이어졌다.

    경제부의 한 기자는 "만약 최순실 태블릿PC를 YTN 기자가 구해왔다면 보도할 수 있었겠나?"라며 "생긴지 얼마 안 된 회사도 저렇게 보도하는데 20년 된 우리는 못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정치부의 한 기자는 "정상적인 언론사라면 '취재에는 성역이 없으니 너 하고 싶은대로 다 하라'는 분위기여야 한다. 그런데 YTN에서는 뭔가 부담을 갖는다는 느낌"이라며 "최순실 특별취재팀도 검열될까 걱정이다. 취재한 것들을 다 보도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상취재부의 한 기자는 "YTN에서 공정방송은 단지 '가치'가 아니라 '생존'이다. 뉴스 하는 회사에서 뉴스를 저버리면 먹고 살 게 없다"며 "이번 기회 놓치면 영영 기회 안 올 수 있다. 꼭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YTN지부와 4개 직능단체는 △최순실 게이트 진실규명 보도를 이끌 자신이 없는 보도국 간부들은 즉각 자진사퇴할 것 △최순실 게이트 특별취재팀의 완전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충분한 인력을 보강할 것 △기자들은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긴급 보도 사안이 있을 경우 기자협회장이 긴급발제권을 행사하게끔 제도화할 것 △보도국장 임면방식 개선을 위한 총력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눈에 띄는 것은 강흥식 보도국장 등 보도국 보직간부들 일부가 참석했다는 점이다. YTN지부에 따르면 강 보도국장은 '여러분의 분노를 이해한다. 현재 YTN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유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원론적인 이야기여서 사원들의 허탈감을 달래기엔 부족했으나 소통의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같은 날, KBS에서도 KBS기자협회가 주최한 긴급 총회가 열렸다. 이날 총회에는 100여명의 기자들이 참석해 2시간 동안 현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기자들은 김인영 보도본부장과 정지환 보도국장 등 보도책임자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해명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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