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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사고…"하청은 징역, 원청은 집행유예"



경제 일반

    산재사고…"하청은 징역, 원청은 집행유예"

    [일터 사망, 이것만 없었어도…⑤] 위험 떠넘기는 원·하청 관계가 대다수 산재 불러

    컵라면도 못 먹고 일에 쫓겨 혼자 일하다 사고를 당한 김 군, 그런가하면 김 군의 아버지뻘인 건설노동자들은 지하에 가득 찬 가스가 폭발해 목숨을 잃는다. 안전보건공단 통계에 따르면 오늘도 일터에서는 하루에 평균 대여섯명 꼴로 사망사고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산재사망사고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CBS는 기획시리즈를 통해 5차례에 걸쳐 과거의 산재사망사고를 되짚어보고 그 사고를 촉발한 원인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빨리빨리'만 없었어도…목숨걸고 달렸던 18살 배달알바
    ② "그게 메탄올이었다고?" 메탄올 실명, 안전교육만 받았어도
    ③ 장마때면 떠오르는 '그 사고'…노량진 수몰사고의 악몽
    ④ 119 돌려 보내는 희한한 일터…관행화된 산재 은폐
    ⑤ 산재사고, "원청은 무죄"…하청에만 떠넘기는 위험

    (자료=안전보건공단 산재예방안전수칙 가이드북 발췌)

     

    새벽 1시, 12미터짜리 제철공장 전로(電爐)에 내화벽돌을 쌓는 작업이 끝났다. 이제 위쪽부터 작업대를 철거하는 작업만 남았다. 20여분 지났을까 작업대를 철거하며 4미터쯤 내려가자 갑자기 작업자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5명의 작업자 모두가 쓰러져 숨졌다.

    사인은 질식사. 작업도 끝나기 전에 누군가 밸브를 열어 전로 내에 아르곤 가스를 흘려보낸 것이었다. 아르곤은 공기보다 무거워 아래부터 차곡차곡 쌓인다. 작업자들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면서 산소결핍으로 쓰러졌다. 전로 공사는 아침 7시까지 완료해야 했었다. 급하게 공사기간을 단축하려다보니 작업도 끝나기 전에 가스배관 점검을 하려다 발생한 어이없는 사고였다.

    지난 2013년 5월 발생한 현대제철 가스누출 사고는 2년 뒤인 2015년 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2심 판결이 나왔다. 원청인 현대제철에는 5천만원의 벌금,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였던 A부사장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원청의 안전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를 결정했다.

    ◇ 안전책임 있지만…원청은 집행유예

    2013년 7월에 7명이 익사한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내려졌다. 2014년 1월 서울중앙지법은 하청업체 현장소장에게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원청업체 현장소장은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 책임감리관에게도 금고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같은해 11월에는 여수의 한 대형 화학공장에서 포대 해체작업을 하던 중 500kg이 넘는 포대에 깔려 하청업체 직원이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법원이 아예 원청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원청에도 안전관리에 관한 책임이 있다"면서도 "원청의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아 범죄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결했다.

    대형 산재사고가 발생해도 원청 업체에 대한 책임은 그야말로 ‘솜방망이’다. 자기 사업장에서 일하다 사람이 죽어도 수천만원의 벌금만 내면되고, 안전 책임자도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러났다. 원청업체들이 위험한 일을 하청업체에 맡기는 이유다. 기본적으로 비용을 줄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산업재해의 책임을 떠넘기는데도 ‘위험의 외주화’는 상당히 유용하다.

    16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상수도관 공사 수몰사고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위한 배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자료사진)

     

    ◇ 하청업체 산재 비율 계속 증가세

    앞서 기획 시리즈를 통해 살펴본 대표적인 산업재해들도 대부분 하청 관계에서 일어났다. 메탄올 실명 사고는 인력파견업체가 보낸 파견 노동자들이 피해자다. 노량진 수몰사고로 숨진 건설노동자들도 하도급 업체 소속이었다. 지게차에 치인 사고를 은폐했다가 결국 직원이 숨진 청주의 화장품 업체는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하청 업체였다. 최근에는 배달앱의 등장으로 배달업마저 음식점과 별개로 배달대행업체 위주로 외주화되고 있다.

    결국 대형 재해사고의 원인이 된 '빨리빨리', '안전교육 부재', '오늘도 괜찮겠지', '산재 은폐' 등도 알고 보면 외험을 외주화하는 원·하청구조에서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비정규직이 산재를 당하는 비율도 갈수록 높아진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따르면 중대재해 사망자 중 하청업체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2년 37.7%에서 2014년 38.6%로 높아졌고, 2015년 6월 현재 40.2%로 40%를 넘겼다.

    ◇ 원청책임 강화하고 위험 외주화 줄여야

    게다가 산업재해 피해가 20대 청년층과 60대 이상 고령층에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안전보건공단 자료에 따르면, 18~24세 연령층에서 재해자 수(사망자)는 2012년에는 3291명(22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3557명(33명)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60세 이상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서 2012년 1만4162명과 273명이던 재해자와 사망자는 지난해들어 1만7914명과 292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2015년 8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20대에서 74.3%로 가장 많고, 이어 60세 이상에서 67.4%에 달하는 현실과 연결된다. 즉, 청년과 은퇴한 고령층에서 업무숙련도가 낮고 위험한 작업에 쉽게 노출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고, 그래서 산재 피해자도 늘고 있는 것이다.

    늦었지만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통해 산재 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7일 입법예고된 개정안은 원청이 모든 사업장에 대해 산재 예방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면 징역 5년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 수위를 높였다. 또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원청인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안전관리비를 실질적인 수준으로 보장해주고, 안전관리비가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지 감독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하고, 나아가 아예 안전이나 생명에 직결되는 업무는 원청이 외주화를 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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