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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하고 싶다" 잊혀져 가는 개성공단의 눈물



경제정책

    "우리는 일하고 싶다" 잊혀져 가는 개성공단의 눈물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한 뒤 철저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정작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휴직과 실업의 기로에 갇혀 "정부가 우리를 버렸다"며 한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개성공단의 한 유통업체에서 일했던 김모(38)씨는 지난 2월 설날 연휴를 잊지 못한다.

    경기도 파주의 집에서 연휴를 보내고 출근 준비를 서두르던 김씨는 '개성공단 폐쇄'라는 정부의 발표와 함께 한순간에 직장을 잃었다.

    당뇨병을 앓는 어머니 약값에 아파트 임대료 등을 합치면 아무리 아껴도 매달 80여만원의 돈이 필요하지만 김씨의 수입은 몇달째 '0원'에 머물러있다.

    아무런 이직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덜컥 직장을 잃은 30대 후반 여성이 새 직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김씨는 "하루종일 구인구직 사이트와 개성공단 뉴스만 본다"며 "겨우 면접을 봐도 면접관들이 대놓고 '나이가 많다'며 떨어뜨리니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회사를 그만 둔 직후에는 밤마다 이불을 차고 울었다"며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친구들과 술이라도 한 잔 하는 날이면 또 눈문을 흘리곤 한다"고 털어놓았다.

    또 "개성공단은 다른 곳과 달라서 정부가 원청이나 다름없는데 일방적으로 공단 문을 닫으면 부당해고한 것 아니냐"며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보상도 없이 원래 있던 지원책만 재탕해서 내놨다"고 억울해했다.

    이처럼 직장을 잃은 개성공단 노동자를 위해 정부가 마련했다는 지원대책은 크게 3가지.

    첫번째는 휴직자의 인건비를 정부가 보조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이고, 둘째는 회사를 그만둔 직원을 위한 실업급여, 셋째는 실업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노동자를 위한 긴급생계지원비다.

    하지만 3가지 모두 개성공단 사태와 무관하게 있던 기존 사회안전망 제도인데다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하고, 그나마 고용유지지원금에 통일부가 최대 6개월간 1인당 65만원씩 더해줄 뿐이다.

    개성공단의 의류업체에서 공장장으로 일했던 홍모(54)씨는 사표를 쓰는 대신 휴직을 선택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원금은 휴직자를 위한 돈이기 때문에 휴직 기간에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다시 나와 일해서도, 다른 일자리를 구해서도 안되기 때문에 오히려 홍씨의 발목만 잡는 '계륵'이 됐다.

    홍씨도 다른 사람들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까도 생각했지만,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일방적인 폐쇄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 분통이 터졌다.

    홍씨는 "하다못해 인수인계라도 하러 회사에 나갔다가 자칫 정부 감독에 걸리면 회사가 벌금까지 내야 한다"며 "일을 해야 회사를 되살리는데 정부가 사실상 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일부 업체 사장들은 직원들에게 어차피 월급을 줄 수 없으니 회사에 나오지 말라고 압박한다"며 "6개월이 지나 지원금이 끊기면 모두 해고될 운명"이라고 말했다.

    견디다 못한 홍씨는 지난달 18일부터 한 달 넘게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씨는 "얼마 전 어버이연합이 시위하라고 전경련, 청와대가 돈을 주고 지원했다는 기사를 봤다"며 "우리에게는 예산이 없다며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방치하는 사람들이 엉뚱한 곳에는 돈을 퍼주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더라"고 답답해했다.

    직원과 자재로 북적이던 한 개성공단 업체의 공장. 지금은 개성공단에서 가져온 짐들이 쌓인 창고로 변해 먼지만 수북하다.

     

    십여년 넘게 북한 땅에서 동고동락한 직원들을 떠나보내고 텅 빈 회사 사무실을 홀로 지키는 업체 사장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강동구의 한 공장 시설장비 제조업체. 한때 자재들이 오가느라 분주했던 회사 1층은 개성공단에서 급히 챙겨온 의자나 냉장고, 책상 등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창고로 변했다.

    이 회사는 첫 시범단지에 입주한 뒤 한국에 있던 생산시설을 모두 정리하고 80억원 넘게 개성공단에 투자했지만, 단 한푼도 건지지 못한 채 시설과 제품을 고스란히 놔두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 업체 대표 조모씨는 "대부분 2, 30년씩 함께 일한 직원들인데 떠나는 마음이 서로 오죽하겠나"라며 "팀장 가운데 위암에 걸린 직원도, 결혼을 앞둔 직원도 있는데 차마 내 손으로 해고할 수는 없어 휴직을 권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니 직원들이 출근할 수 없는데, 자연히 회사 운영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당장 월급 줄 돈이 없어 직원을 부를 수도 없는데, 회사를 회생시키려면 안 부를 수도 없어 고민하는 사이 회사가 말라죽어 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새 직장을 구하지도, 원래 회사에 나와 일하지도 못해 답답해하는 개성공단근로자협의회 등은 정부 보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준비 중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영기 변호사는 "개성공단 철수는 긴급한 상황에 따른 결과가 아닌 한국 정부의 일방적인 판단"이라며 "국가가 그 피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국민적 공감이 이뤄졌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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