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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직진의 정치인'을 떠나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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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직진의 정치인'을 떠나 보내며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인식이 엄수된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유가족 및 측근들이 고인을 배웅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민주화의 거목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파란만장한 88세의 삶을 뒤로한 채 26일 오후 영결식을 끝으로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9선의 의회주의자였던 고인의 마지막 국회 등원길을 국내외 귀빈과 유족 1만여명이 지켜봤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직진의 정치인’이었다. 만 25세에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그는 굴곡진 현대사의 고비고비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때론 협력하고 때론 경쟁하면서 민주화의 한 길로 나아갔다.

    직진의 정치인을 가능케한 힘의 원천은 결단과 용기였다.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에는 “오늘 죽어도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맞섰다.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83년, YS는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23일간 죽음을 건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군사조직인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를 정권 1년차에 전광석화처럼 해치웠다. 1995년 일본 정치인이 망언을 하자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치겠다”는 간담을 서늘케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을 정도다.

    특히 3공-5공-6공을 거치며 군사정부의 잔재가 국가조직과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룻밤에 별을 50개나 날리는 하나회 척결작업은 대통령 취임 11일 만에 전격적으로 단행됐다고 하니 DJ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은 그의 결단과 용기를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옳고 그름의 대의가 정해지면 거칠 것 없이 정면돌파해서 반드시 이루어내고야 마는 결기를 보였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구속과 총독부건물 철거,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등 일련의 조치를 좌우 눈치 살피지 않고 밀어붙인 것은 한번 방향이 정해지면 직진하는 YS 특유의 리더십 때문에 가능했다.

    김 전 대통령은 소통과 포용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문민정부 초대 통일부장관을 지낸 한완상 전 부총리는 26일 CBS 인터뷰에서 노동법 날치기 파동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문민정부가 노동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킬 당시 너무 가슴이 아파서 ‘정치적 치매에 걸렸느냐’는 신문칼럼을 썼는데 YS가 격노했다고 한다. 그때 YS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표현이 과했다’며 자신에게 불만을 제기하긴 했으나 전후맥락을 설명하니 수용하더라는 것이다. 한 전 부총리는 “YS의 장점은 소통”이라고 평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밖에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지론에 따라 다양한 인재도 수혈했다.

    {RELNEWS:right}이제 그를 떠나보내지만 고인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인 ‘통합과 화합’은 후세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고질적인 지역주의와 계파정치를 해소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세우고 후퇴 조짐을 보이는 민주주의를 바로잡는 일이 포함될 것이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영호남으로 쪼개지고 이념대결로 갈라져서는 국가의 에너지를 결집할 수 없고 세계 속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도 없다.권력집중이 여야 대결정치의 근본 원인이라면 현행 대통령중심제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편도 과감히 손질할 필요가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군사정부’시대와 닮은 꼴로 간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후퇴도 우려스럽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현 정치권은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대의(大義)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관계에 매몰돼 주판알만 튀긴 채 한발짝도 실천하지 못하는 모습이 ‘대도무문’의 YS와 다른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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