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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당무 거부' 김무성, 'YS식 배짱'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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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당무 거부' 김무성, 'YS식 배짱' 가능할까

    추석연휴 여야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놓고 여당 내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지난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대표(우측)와 원유철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단단히 뿔났다.

    "청와대로부터 모욕을 당했다"는 불쾌감이 급기야 1일 공식 일정 전면 취소로 나왔다.

    당 최고위원회의 불참은 그렇다 치자.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기념식과 지역구인 부산 국제영화제 개막식까지 나타나지 않겠다는 것은 청와대와의 공천 갈등이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날 김 대표의 공식 일정 거부는 정치 지도자의 '칩거'에 해당한다.

    칩거란 유력 정치인들이 현직 대통령이나 거대 권력과 싸울 때 배수진 또는 일전을 벌이겠다는 각오와 절망감의 표출 방식이다.

    청와대와 친박계로부터 당한 수모를 수차례 참았다는 김 대표가 국군의 날 기념식에 불참하고 당무를 거부한 것은 작심하지 않고서는 결행할 수 없는 정치적 '승부수'다.

    칩거를 통한 배수진은 김무성 대표의 정치적 스승이자 아버지 격인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전매특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한국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은 YS 파동이 그러했다.

    지난 1990년 민자당 대표이던 YS는 3당(민정당, 통일민주당, 자민련) 합당 당시 합의한 내각제 각서가 언론에 유출돼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자 음모론을 제기하며 당무거부라는 초강수를 던졌다.

    YS는 고향인 마산으로 내려가 무학산에 올랐다. 그를 쫓아 무학산에 오르던 기자들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다 꺼낸 첫 마디가 "내 산 잘타제?"였다. 동문서답의 전형으로 지금도 회자된다.

    내각제 각서 유출을 정치 공작으로 몰아붙이며 마산 칩거를 통해 극적 반전의 계기를 잡은 YS는 '호랑이를 잡으려 호랑이굴에 들어갔다'는 말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노태우 대통령과 민정계의 항복을 받아낸 YS는 대표직에 복귀했고 2년 후 집권에 성공했다.

    지난 2004년 조순형 민주당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당직을 내던진 추미애 선대위원장과 지난해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칩거도 있었으나 '찻잔 속 미풍'이었다.

    이처럼 유력 정치인들의 칩거는 나름의 정치적 명운을 건 위기 돌파의 수단이었지만 권력자와 주변 인사들의 설득을 통한 적절한 타협으로 마무리됐다.

    김무성 대표의 당무거부는 지난 90년 YS의 당무거부와 마산행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당시 YS는 노태우 대통령의 청와대와 민정계로부터 협공을 당하고 있었다.

    김무성 대표 역시 청와대와 당내 친박계로부터 포위되고 있는 형국이다.

    김 대표가 YS와 비슷한 길을 걷고자 한다면 당무거부에 따른 칩거는 장기화될 것이고 박 대통령과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김 대표는 승부사 기질로 똘똘 뭉친 YS가 아닐뿐더러 YS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않다는 평이다.

    (사진=청와대 제공)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아닌데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콘크리트 지지율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 지지율은 50% 안팎이다.

    박 대통령이 김 대표의 격앙된 노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를 '진사 사절'로 보낼 것 같지도 않다.

    YS는 지난 90년 당시 PK(부산·경남)라는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권력 기반이 취약한 노태우 전 대통령과 민정계를 "쿠데타 주역들"이라고 공격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는 '김대중씨와 힘을 합쳐 당신들(노태우와 민정계)을 공격하겠다'고 협박할 수 있는 정치적 카드를 쥐고 있었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에겐 그런 정치적 자산이나 배경이 없다.

    무엇보다 시대 상황이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데다, 안심번호제 국민공천제 파동은 김 대표가 주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상표가 된 오픈프라이머리가 관철되지 못하게 되자 문재인 대표와 만나 안심번호제 국민공천제를 합의해 버린 것이다.

    "내가 있는 한 전략공천은 절대 없다"고 선언했으나 청와대와 친박의 공세를 돌파하는 데는 힘이 부쳐 보인다. 김 대표에겐 박 대통령이 큰소리 칠 수 있는 근간인 지역적 기반도 '섶을 지고 불 속에라도 들어갈' 호위무사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김 대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청와대와 친박계로부터 철저히 짓밟히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른바 '동정론'이다. 전략공천에 맞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다 당했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조짐이 1일자 일부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청와대가 새누리당의 공천까지 좌지우지하려는가'라는 사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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