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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여학생은 예쁩니까?"…北 스무 살도 똑같은 청춘



책/학술

    "이대 여학생은 예쁩니까?"…北 스무 살도 똑같은 청춘

    [저자와의 만남]'평양의 영어선생님' 펴낸 수키 김 "신은미 씨 강제출국 조치 과해"



    감시와 두려움. 지난 26일 만난 '평양의 영어선생님'(디오네)의 저자 수키 김(45)이 기자와 인터뷰 중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다.

    이 책에는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한 한국계 재미 소설가 수키 김이 2011년 7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6개월간 평양과기대에서 북한 특권층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담겼다.

    수키 김은 "평양 체류기간 중 늘 감시에 통제에 시달렸기 때문에 단 1초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감시엔 두려움과 공포의 감정이 뒤따른다. 수키 김은 "혹여 말실수를 하면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말하기 전 늘 자기검열에 시달렸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 역시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물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평양과기대 쪽으로부터 '이 책을 내지 말라'는 이메일을 몇 차례 받았다.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그럴 수 없다'고 답변했다. 작가는 그런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수키 김은 청춘과 사랑이라는 단어도 많이 썼다. 수키 김은 "비록 억압된 사회에 살고 있지만 내가 가르친 북한 제자들 역시 연애에 관심 많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평범한 스무 살 청춘이었다. 모두 사랑스러웠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재미 소설가 수키 김. 사진=박종민 기자

     

    - 책을 출간한 계기는

    "2002년 이후 다섯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처음 세 차례 방북 때의 경험은 실망스러웠다. 북한 당국이 외부인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만 보여 주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쓰는 조건으로 방북 취재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전하고 싶어 잡입취재를 결심했고, 평양과기대에서 영어를 가르칠 외국인 교수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입국 허가를 받았다. 2011년 7~12월 평양에 체류했다.

    - 한국 대학생은 학업, 진로, 연애 등을 고민한다.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어떤 고민을
    하며 사나


    고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때 나온다. 북한사회는 학생이 학업과 진로를 고민하기 힘든 구조였다. 국가에서 지정하는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 번은 입사지원서를 작성하는 숙제를 내준 적 있는데 한 번도 써본 적 없다고 하더라. 평양과기대는 남학생만 270명 있다. 연애에 대해 물으면 처음에는 '관심없다'고 하다가 맘대로 연락할 수 없는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언뜻 내비치기도 했다. 교수진과 학생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고, 가족 면회는 물론 전화 사용도 금지다.

    - 그럼 고민 상담은 누구와 하나

    학생들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다. 교내에는 감시원이 상주했고, 학생들 간에도 짝을 배정해 24시간 붙어다니면서 서로 감시하게 했다. 동료를 비판하는 생활총화 제도도 있었다. 영어를 가르친다는 핑계로 매주 한 번씩 영어로 편지 쓰는 과제를 냈다. 학생들은 간혹 편지에 고민을 적었다. 특권층 젊은이들인데도 고민 상담할 사람조차 없는 이들의 처지가 안쓰러웠고, 자유를 억압하는 북한사회에 겁도 났다.

    -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나

    그런 건 없었지만 뉴질랜드에서 온 교수가 구내식당에서 학생들과 밥 먹으면서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을 가르치려 하자 단체로 거부한 적은 있었다. 서양식 식사법을 배우고 싶어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집단에 반대되는 의견을 피력할 용기를 선뜻 내지는 못했다. 이곳은 식사, 운동, 학업 등 모든 것이 단체로 이뤄졌다.

    - 북한의 실상을 직접 보고 충격이 컸을 것 같은데

    나를 비롯 교수진 30명 모두 외국인이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평양과기대 기숙사에 들어갔지만 생각보다 상황이 열악했다. 툭하면 전기가 끊겼다. 감시원으로부터 늘 감시당했고, 구내식당에서 학생들과 하는 얘기도 보고됐다. 수업은 담당관(강의를 감독하는 북한 직원)이 허락한 자료만 사용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생활이 날 두렵게 했다. 자칫 말실수를 해서 학생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까봐 말하기 전이나 하고 난 후 끊임없이 자기검열 하는 것도 나를 지치게 했다.

    - 학생들이 궁금한 것이 있어도 멈칫한다. 바깥세상을 궁금해하지 않나. 아니면 궁금증을 감추는 건가

    똑똑한 스무 살 청년들이 왜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없겠나. 호기심을 나타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궁금증을 애써 억눌렀던 거지. '미국에는 TV채널이 몇 개 있어요?' 이런 질문도 맘대로 못했다. 한 번은 어떤 학생이 '생일날 로큰롤을 들었다'고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함께 앉아있던 학생들이 얼른 대화 주제를 바꾼 적이 있다. 개개인이 호기심을 표현할 때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무서웠다. 에세이 쓰는 법 가르치는 것도 힘들었다. 수령님에 대한 작문은 주장을 뒷받침할 논거도, 반론도 필요없으니까.

    - 책이 8개국(한국, 대만, 미국, 영국, 스페인, 덴마크, 폴란드, 헝가리)에서 출간됐다. 각 나라 독자들의 반응은

    이 책은 작년 10월 미국에서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Without You, There Is No Us)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미국 독자는 '이 책이 북한 대학생을 인간적인 면에서 접근해 좋았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미국에서 출간된 기존 북한 관련 책은 정치적인 색깔이 강하니까. 영화 '인터뷰'도 그런 예고. 이 곳에 있으면서 '국적에 상관없이 스무 살 청춘은 똑같구나'라고 느꼈다. 여학생들 얘기하면 깔깔대며 웃고, 나한테 '이화여대 학생들은 예쁩니까?' 묻기도 하고. 이 책이 북한 체제와 인권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한국 독자들은 이번주 토요일에 만난다.

    혹시 미모의 외국인 영어선생님에게 대시한 제자는 없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수키 김은 호탕하게 웃으며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스무 살보다 정신적으로 어리다. 가족 면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나를 엄마처럼 느끼고 대했다"고 했다. 이어 "제자 한 명 한 명이 모두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학생들을 보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름과 신분을 모호하게 처리했다"고 했다.

    재미 소설가 수키 김. 사진=박종민 기자

     

    - 영화 '인터뷰'에 대한 느낌은

    최악의 인권 탄압 국가인 북한을 코미디 영화로 만든 건 무책임한 일이다. '인터뷰'는 미국의 백인남성 두 명이 북한을 구하러 가는 내용인데, 남북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이 이런 영화를 제작한 것도 모순적이다. 북한을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면 이런 영화가 가능했을까 싶어 안타깝다.

    - 평양을 방문한 지 4년이 지났다. 남북관계가 나아졌다고 생각하나

    남북 모두 정권은 바뀌었지만 관계는 제자리 걸음인 것 같다. 내가 경험한 특권층 역시 고립되고 통제가 심했다. 남북 관계가 진전되려면 바깥세상에서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이 독자들이 북한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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