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당장 시작할까요?" 실패는 알아도 좌절은 모르는 이승현



농구

    "당장 시작할까요?" 실패는 알아도 좌절은 모르는 이승현

    고양 오리온스의 '슈퍼 루키' 이승현 선수 인터뷰

    고양 오리온스의 '슈퍼 루키' 이승현 (사진 = 황진환 기자 jordanh@cbs.co.kr)

     


    이승현(23·197cm)이라는 이름 석자가 농구계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2008년 3월에 열린 제45회 전국춘계 중고농구연맹전이었다.

    당시 용산고 1학년의 특급 유망주 이승현은 대회 개막전에서 라이벌 고교 경복고를 상대로 67-84 패배의 쓴맛을 봤다. 이승현은 33점, 16리바운드를 올리며 분전했지만 압도적인 전력을 갖춘 경복고는 넘기 힘든 산과도 같았다.

    이제 갓 고교에 입학한 선수가 당대 최강의 팀을 상대로 뛰어난 개인 기록을 올린 것 만으로도 주목받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그러나 이승현은 만족하지 않았다.

    용산고와 경복고는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이승현이 웃었다. 지난 경기와는 달리 개인 기록은 돋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용산고는 경복고를 80-66으로 완파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정상에 올랐다.

    "그 때는 우리가 경복고에게 상대도 안될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첫 경기에서 나 혼자 득점을 많이 했는데 그런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팀이 이기면 그만이고 팀이 이겨야 선수도 살아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항상 있었다. 이승현은 그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이겨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진정성을 갖고 마음 속에 담아두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좌우명 같은 것이 이승현에게 있었다. '팀이 먼저'라는 마음가짐이다.

    ◈"이승현은 왜 그러는거야?"

    2013년 여름, 이승현은 처음 성인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정확히 말하면 '연습용 유니폼'이었다. 이승현은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최종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당시 이상범 코치는 이승현에게 "네가 프로에 와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3점슛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조언했다. 이승현은 그 말을 흘려들었다. 얼마나 중요한 조언이었는지 몰랐다. 대표팀에서 하차하자 그 말의 의미를 알게됐다.

    한 달이 지나 제2회 프로-아마농구 최강전이 열렸다. 이승현은 프로 팀과의 첫 경기에서 3점슛 3개를 던져 2개를 림에 꽂았다. 이전까지는 3점슛 라인 근처도 가지 않았던 빅맨 이승현이다. 그 모습에 농구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상대팀 감독 역시 놀랐다.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공격 옵션에 당했기 때문이다. "걔는 왜 그러는거야"는 농담과 함께 허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가 바로 추일승 감독이다. 이승현이 현재 몸담고 있는 고양 오리온스의 사령탑이다.

    이승현은 "처음에는 이상범 코치님의 조언을 듣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대표팀에서 탈락한 뒤에야 자극을 받았다. 처음에는 '멘붕'에 빠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안되는 애였나, 생각이 많았다. 그때부터 3점슛 연습을 시작했다. 중거리슛을 잊으면 안되니까 섞어서 하루에 200~300개씩 던졌다. 그렇게 한달 연습하고 나간 대회가 프로-아마 최강전이었다"고 말했다.

    대학교 2학년 때까지 3점슛을 던져보지도 않았던 선수가 지금은 3점슛이 장기 중 하나가 됐다. 3일 현재 이승현은 3점슛 성공률 50%를 기록하며 당당히 KBL 3위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가 3점슛 연습을 시작한지 불과 15개월 뒤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고양 오리온스의 개막 8연승을 이끈 이승현이 29일 오전 경기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슈팅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 황진환 기자 jordanh@cbs.co.kr)

     


    ◈"나의 농구는 부모님께서 만들어주셨다"

    이승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유도를 시작했다. "어릴 때 남들보다 키와 덩치가 커서 유도부에서 제의를 받았다. 형도 유도를 했다. 체중이 불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10kg이 쪄서 실패로 돌아간 느낌이 있다"며 웃었다.

    이승현은 농구를 할 운명을 안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부친 이용길 씨와 모친 최혜정 씨는 농구 선수 출신이다. 처음에는 아들이 힘든 농구를 한다는 것을 반대했다. 이승현 역시 농구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 당시 이승현이 살던 대구의 계성중 코치가 부친의 친구였다. 농구를 시켜보자는 친구의 설득에 부모도 생각을 바꿨다. 이승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갔다.

    농구를 시키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이승현의 부모는 그 누구보다 더 열정적인 지도자로 돌변했다.

    이승현은 "아버지께서 구미에서 일하셨는데 주말마다 올라오셔서 같이 농구를 했다. 1대1도 하고 슛 내기도 했다. 정말 슛이 좋으셨다. 자유투는 지금 해도 내가 질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열정은 그 이상이었다. 이승현은 "평일 때는 어머니와 운동을 많이 했다. 아버지께서 직장에 다니신 관계로 더 많이 도와주셨다. 직접 공을 잡아주셨고 운동도 시키셨다. 스트레칭도 직접 해주셨다"고 말했다.

    사춘기 시절에는 반항도 해봤다. 시키는 운동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이승현은 "하루는 새벽 운동에 나가라는 말을 안 듣고 반항했다가 일주일동안 어머니와 말을 안 했다. 그 정도로 독하셨다(웃음). 이후부터는 나가라면 그냥 나갔다"고 말했다.

    조기 교육의 성과는 컸다. 이승현은 "지금도 운동을 안 하면 불안한 감정이 생겨 체육관으로 나가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께 배운 슛 폼을 지금도 쓴다. 감독님들도 슛을 잘 배웠다고 한번도 건들지 않으셨다. 나의 농구의 80~90%는 부모님께서 만들어주셨다"며 고마워 했다.

    고양 오리온스의 '슈퍼 루키' 이승현 (사진 = 황진환 기자 jordanh@cbs.co.kr)

     


    ◈두 번째 대표팀 탈락 그리고 3개월 뒤

    이승현은 칠곡초 6학년 때 처음 우승을 차지했다. 그 경험이 이승현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때부터 완전히 농구에 빠져들었다. 우승이 엄청 좋았다. 유도와는 달리 나 혼자 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팀원들과 다같이 했다는 뿌듯함이 좋았다", 이승현의 말이다.

    이후 이승현의 마음 속에는 '최고'라는 단어가 마치 강박처럼 자리했다. 목표도 뚜렷했다. 언젠가 프로 무대에 나설 때 반드시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을 받는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꿈을 이뤘다.

    이승현은 "어릴 때부터 운동 세계에서는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다. 특히 어머니께서 절대 우승이 아니면 안된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승부욕이 발동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항상 1등이 돼야 한다는 마음은 자칫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승현은 어릴 때부터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극복해야 할 대상이 생기면 공을 들고 체육관으로 나간다. 이제는 습관이 됐다.

    이승현에게 또 한 번의 고비가 찾아왔다. 이번에도 대표팀이었다.

    "한 번 실패를 겪고나서 슛을 장착하고 돌아왔더니 이번에는 3번(스몰포워드)을 볼 줄 알아야 된다고 하더라", 이승현은 웃었다.

    평생 센터, 파워포워드로 뛰었던 이승현에게 스몰포워드는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될 리가 없었다. 마음이 불안하자 육체도 힘들었다. 이승현은 "1분이 지났는데 숨이 찰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결국 이승현은 최종 엔트리 목전에서 또 한 번 고배를 마셨다.

    또 괴로웠다. 그러나 무너지지는 않았다.

    이승현은 비디오를 보고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대표팀 내에 교과서같은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승현은 "대표팀에 있으면서 스몰포워드와 파워포워드를 모두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확실히 알게됐다"며 "문태종 형과 조성민 형의 움직임을 많이 봤다. 그 형들이 최고니까. 성민이 형은 빠른 편에 속해서 느리지만 정확하게 움직이는 태종이 형을 참고했도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이승현은 지금 오리온스에서 3,4번 포지션을 여유있게 왔다갔다 하는 선수가 됐다. 추일승 감독도 "스몰포워드로도 움직임이 괜찮다"는 평가를 내린다.

    두 번째 대표팀 탈락을 겪고나서 불과 3개월 뒤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고양 오리온스의 개막 8연승을 이끈 '슈퍼 루키' 이승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황진환 기자 jordanh@cbs.co.kr)

     


    ◈태극마크의 꿈 "세 번의 실패는 없다"

    오리온스는 요즘 '이승현 효과'에 즐겁다. 개막 8연승을 질주했고 시즌 초반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승현은 파워포워드와 스몰포워드를 오고가며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목표는 무엇일까. 질문을 하면서도 돌아올 답변을 예상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이승현은 "무조건 우승이다. 신인왕까지는 욕심을 내고 싶지만 신인왕을 안 받고 우승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좋다"고 말했다.

    우승이라는 목표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곳도 함께 보고있다.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는 없을까, 남들보다 더 노력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다.

    이승현은 요즘 울산 모비스의 포워드 문태영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자신에게 없는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비를 등 지는 포스트업 공격에는 자신감이 넘치는 이승현이다. 하지만 상대를 마주 보고 공격하는 페이스업은 아직 생소하다.

    "두 번 막아봤는데 태영이 형의 페이스업 1대1은 진짜 최강인 것 같다. 뭘 할지 예상이 안된다. 찾아가서 배우고 싶을 정도다", 감탄 또 감탄이다.

    문태영의 이야기를 하는 이승현의 표정은 마치 농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소년의 얼굴 같았다.

    이승현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있다.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다. 이승현은 "김선형 형도 두 번 떨어졌다가 세 번째에는 됐다고 하더라. 다음에도 안 되면 멘탈이 무너질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