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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뛰는 '환풍구'가 죽음의 길…규정조차 없다



사건/사고

    걷고 뛰는 '환풍구'가 죽음의 길…규정조차 없다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시청역 1번 출구 앞 인도에 설치된 환풍구 위를 시민들이 무심코 지나가고 있다.(서울신문 제공)

     

    위험의 사각지대 환풍구.

    판교 야외 공연장의 환풍구 참사를 계기로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환풍구 천지다.

    인도를 걸을 때 환풍구 위를 걷지 않은 시민이 없을 정도로 환풍구와 매일 접촉하며 살고 있다.

    19일 낮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인 덕수궁 앞에서는 시민과 관광객들이 환풍구 위에 서서 대한문의 수문장 교대식을 볼 정도로 시민들은 환풍구를 인도로 인식하고 있다.

    판교에서 변이 났는데도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이나 환풍구 위에 올라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관계자도 없었다.

    한 달 전 대한문 앞 환풍구에 서서 수문장 교대식을 아들과 함께 봤다는 한 시민(42)은 "환풍구 위에 서 있었는지도 몰랐으며 환풍구가 그렇게 위험한 곳인지 이번에 알았다"고 말했다.

    명동역도, 오목교역도, 눈여겨보면 시민들은 시내 도처에서 환풍구 위를 걷거나 서 있다.

    20대 직장인 여성은 “바쁠 때면 환풍구든 도로든 뛰었다”며 “환풍구가 그처럼 위험하냐”고 되물었다.

    판교 인근 주민들과 직장인 30명가량이 공연을 보기 위해 아무런 생각없이 환풍구 위로 올라갔다가 변을 당했는데 ‘죽음의 길’로 통하는 환풍구가 서울에서만 6,000여 곳에 이른다.

    지하철 환풍구 2,240곳을 포함해 아파트와 건물 지하 주차장, 대형 상가와 공원 등의 환풍구를 합치면 6천여 곳이다.

    종로와 명동, 대한문 앞 환풍구는 사실상 인도나 마찬가지로 인도처럼 사용되고 있다.

    서울시내 도로 주변의 환풍기 3분의 2는 인도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다.

    지하철의 한풍구는 1제곱미터 당 500kg의 하중을 견디도록 설계돼 있으나 실제로 그 정도의 하중을 버틸지는 의문이다.

    서울 시내 그 어떤 환풍구 주변에 '위에 올라가거나 걷지 말라'는 경고문 하나 없이 인도가 돼버린 환풍구. 위험하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심지어 환풍기 위를 뛰기까지 하는데 떨어지면 그들을 살려줄 방호막도, 지지대도 없어 수 미터나 수십 미터 아래로 추락한다.

    지난 2004년 서울 지하철 상왕십리역 환풍구에 걸터앉아 있던 윤모(42) 씨가 8m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지난해 11월 부산 해운대 모 백화점 환풍구에 올라갔다가 15m 아래로 떨어져 숨진 오모(17)군도 환풍구가 위험의 사각지대인지를 몰랐다고 한다.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 현장 (사진=황진환 기자)

     

    부주의로 인한 죽음과 직결된 환풍구에 대한 안전규정은 없다.

    환풍구 펜스를 도로에서 1m 이상으로 높이라는 권고사항뿐이다.

    이번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의 법적 책임을 지우기가 어렵다고 한다.

    또한 환풍구는 도로에서 2m 이상 떨어져 설치하도록 돼 있으나 도로와 붙어 있고 펜스를 높이기도 쉽지 않다.

    무분별하게 펜스를 높이가다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이 될 수 있고 주변의 가게들이 간판을 가린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환풍구에 대한 안전규정을 지방자치단체에 맡기지 말고 중앙 정부가 나서 새로 만들어야 하며 돈을 들여 도시의 외관이나 조형물 차원에서 환풍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번에 환풍구 안전점검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환풍구 덮개를 견고하게 하거나 높이를 높여 접근 자체를 차단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려 할 것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20일 최고위원회의와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각각 열어 환풍구 안전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지하 전동차 사고가 잇따르자 스크린도어를 설치했듯이 환풍기 안전 대책이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안전의식은 0점이다.

    사망 16명과 중상 11명을 부른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 사고는 우리의 안전의식이 한마디로 엉망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준 참사였다.

    올 들어서만 경주 마우나리조트 지붕 붕괴사고를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 고양터미널 화재, 신당역 지하철 추돌 사고 등을 겪었으면서도 우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언론사(이데일리)가 주최하고 경기도와 성남시가 일부 후원한 야외 공연 행사에 안전요원 한 명 없었고 관계자 4명이나 있었지만 안전관리를 하는지 조차 몰랐다.

    환풍구 안전 규정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렇지만 환풍구 위로 올라가면 안 된다는 것은 기본적인 안전 사항임에도 우리는 너나 없이 좀 더 잘 보기 위해 환풍구 위든, 담장 위든, 지붕이든, 나무 위든, 어디든 오를 수 있으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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