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채솟값 오르면 왜 농민도 힘들까

"비가 쏟아져서 물탱크 3개가 망가졌지만 제 힘으로 복구하는 거지, 보상 같은 건 없어".
강원도 평창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백옥연씨는 최근 폭우로 인해 농업용 물탱크가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봄 가뭄을 겪으며 작황이 좋지 않아 가물 때를 대비하기 위해 10톤 용량의 물탱크를 5개나 마련했는데요.
백씨는 지난 17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물탱크 5개 중 3개가 다 깨졌다"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보조를 해주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복구비용이 다 제 몫"이라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는 "고추를 딸 수는 있지만 산이 무너지면서 흙이 쏟아져 내려온 걸 다 정리하느라 바쁘다"고 덧붙였습니다.
    
극심한 가뭄에 이어 폭우 피해까지도 농민들은 고스란히 떠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채솟값은 '금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솟고 있는데요. 채솟값이 비싸지면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이익도 커질까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파프리카 소매가격은 평년동기 대비 57.5%, 토마토는 57.3%, 깐마늘은 41.9% 올랐습니다. 배추와 무도 포기당 6865원, 개당 3118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각각 53.7%, 42.9% 올랐습니다.  
파프리카 가격은 지난달부터 조금씩 오르긴 했지만 이달 중순 들어 급등했습니다. 강원 철원 등 주요 산지에서 우천으로 작황이 부진하고 물량도 줄어든 탓인데요. 토마토는 고온다습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생육이 부진해 가격이 올랐습니다.
깐마늘은 도매가격도 크게 올라 수급조절 매뉴얼상 '상승심각' 단계로 전망됐습니다. 이에 비축 마늘을 우선 방출하고, 긴급수입 조처를 하는 등 공급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배추는 모종을 심는 시기에 가뭄이 든 데다, 이후 생장기에는 강우와 고온이 이어지면서 생리 장애가 발생해 시중 가격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배추와 무는 재배면적이 줄어든 것도 가격이 오른 요인 중 하나인데요.
"채솟값 오른다고 농민들이 크게 돈 버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강원도 홍천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 김명희씨는 '채솟값'에 관해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김씨는 "농사도 시세 따져가며 출하시기를 조정하면 돈을 버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대개 농민들은 영세하기 때문에 목돈을 준다고 하면 거의 다 파는 실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태웅씨 인스타그램 캡처한태웅씨 인스타그램 캡처
"비알진 논두렁이 터지고 수확이 한달여 남은 조생종 벼가 쓰러졌습니다".
지난 10일 '청년농부'로 알려진 한태웅씨가 자신의 SNS를 통해 폭우로 벼가 쓰러진 논두렁 사진과 피해 상황을 공유했습니다.
한씨가 농사를 짓고 있는 경기도 안성에는 이날 산사태 주의보가 내려지기도 했는데요. 실제 한씨의 논에 나무와 토사가 쏟아져 벼를 출소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농민들은 많은 손실을 감내하며 '
이상기후
'와 전쟁 중입니다. 국립기상과학원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의 이상기후의 발생 빈도와 강도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구체적으로 1912~2017년까지 한국의 기온과 강수량을 분석한 결과, 최고 기온은 연평균 0.12℃씩 상승했습니다. 또 매 10년마다 열대야 일수는 0.9일씩, 최근 10년간 폭염일수는 지난 30년보다 0.9일 증가했는데요. 일 강수량 980㎜ 이상의 강한 비도 빈도와 양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이상기후는 농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농작물에 당도 감소, 산도 증가, 착색 불량 등을 일으키고, 오래 두고 출하할 수 없도록 저장성을 단축 시키기도 하죠.
또 여름 채소를 키울 수 있는 고랭지 면적이 줄어들거나, 월동해충 및 외래병, 고온성 병해충이 확산되기도 합니다. 재해가 닥치면 비닐하우스, 물탱크 등 농작물재배시설이 붕괴돼 간접적인 피해가 커지기도 하는데요.  
    
농산물을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이상기후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난 2020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하 한농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국 농축산물 주 구입자 1734명 가운데 약 99%, 거의 대부분이 이상기후를 체감한다고 답했습니다.
국내 농축산물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이상기후로는 '폭염'이 꼽혔습니다. 최고기온이 35℃ 이상으로 오를 때를 말하는데요.
한농연은 2019년 연구보고서에서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폭염의 강도와 빈도를 전망하며 "경기도와 충남지역, 경상도 내륙지방은 물 부족과 폭염에 대한 노출이 다른 지역보다 크며, 농업생산과 농가소득이 기후변화에 의해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상기후가 농축산물의 생산량과 품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설문에 응답한 소비자 10명 중 9명은 이상기후 때문에 농축산물의 가격이 오른 것을 경험했다고 답했는데요.
    
이렇게 이상기후로 농축산물이 비싸지거나 질이 떨어지게 되면, 소비자들은 대개 덜 사거나 다른 품목을 구입하는 식으로 대응한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상기후는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이로 인한 농업의 위기 역시 국내만 아니라 해외에도 닥친 상황이죠. 가령 국내 수입량이 증가세인 '커피'도 이상기후로 멸종에 맞닥뜨린 식재료입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지난해 8월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50년 지구의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약 3℃ 이상 상승하면 아라비카 품종의 경작 가능지 중 75%, 로부스타 품종의 경작 가능지 중 63%가 커피를 재배할 수 없는 환경이 됩니다.  
스웨덴 스톡홀름 환경연구소는 지난해 9월 '무역·식량 안보에 대한 기후위기' 보고서에서 "농업은 기후변화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분야"라고 진단했습니다. 연구소는 "단발적인 이상기후와 장기적인 기후변화 모두 농업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는데요.
전문가들은 농업이 무너진다면 소비량을 줄이거나 대체품을 찾는 수준이 아니라 '식량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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