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인데 여자만 집안일?"…머나먼 '가정내 성평등'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

편집자 주

작아지는 대한민국을 피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덜 작아지도록, 더딘 속도로 오도록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초저출생은 여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녀 모두의 일입니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개인, 모든 세대의 일입니다. CBS는 연중기획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를 통해 저출산 대책의 명암을 짚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공존을 모색합니다. ▶birth.nocu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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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를 임신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쉬지 않고 육아병행하고 있는 손모(40)씨는 "집안일거의 전담해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은 귀농했고 나도 사업을 하고 있지만 결혼 이후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맡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박모(37)씨도 육아직장,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취재진에 "전체 집안일의 85%는 내가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육아휴직 이후 집안일을 맡아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다"며 "남편도 일이 바쁘고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다남편의 생각도 한몫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말로만 "가사분담 공평해야"

    
'집안일은 여자가, 바깥일은 남자가 한다'는 고정관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가사분담은 부부가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취재진과 만난 기혼 여성들은 "여전히 가사노동에 대한 책임여성에게 있다"고 입을 모았다.
 
손씨는 "5살 정도 어린 부부들을 보면 집안일하는 남편이 종종 있다"며 "그래도 아직 여성이 육아와 집안일을 전담하는 분위기가 주류"라고 전했다.
 
서울 광진구에서 육아에 전념하는 김모(38)씨도 "집안일 분담을 공동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은 있다"면서도 "애들 교육도 그렇고 남편에게 경제권이 있어 결국 여자들이 집안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부부가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은 2006년부터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남성 57.9%, 여성 67%였다. 조사 대상자의 62.5%는 성별에 상관없이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런 인식과 달리 현실은 따로 놀고 있었다. 가사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여성에게 편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부부가 모두 일하는 맞벌이 가정에서조차 집안일의 주 담당자는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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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통계청 가사분담 실태를 보면 부부 중 한 명만 경제활동을 하는 비맞벌이 가정에서 주로 집안일을 하는 사람은 아내(78.5%)로 조사됐다. 그중에서도 아내가 전적으로 집안일을 담당하는 비율은 25%에 달했다.
부부가 둘 다 일하는 경우는 좀 달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큰 차이가 없었다. 맞벌이 가정73.3%는 여전히 아내가 주로 집안일을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20.5%는 여성이 전적으로 집안일을 한다고 답했다.
 
남성주로 집안일을 한다고 답한 비율은 맞벌이 가정 2.9%, 비맞벌이 가정 3.5%로 모두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 여성은 밖에서도 일하고 집에서도 일해야 하는 이중 노동을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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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출산 높이려면 '가정 내 성평등' 필수

가정 내 성평등출산율과도 직결된다. 여성의 가정 내 지위가 바로 서지 않으면 결혼출산을 꺼리는 세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기혼 여성들은 "한국에서 여성은 결혼하면 가정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구조"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한국어 강사로 일하면서 육아도 병행하는 김모(39)씨는 "남편도 일을 하고 있지만 육아휴직을 못 쓰고 주변에서 애를 봐줄 사람이 없다"며 "결국 전처럼 풀타임으로 근무하긴 어렵고 파트타임으로 돌려야 할지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집안일과 육아, 일 등 세 가지를 병행하게 되어 있다"며 "이런 것들 때문에 아이 낳기를 많이 꺼려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박씨 또한 "출산을 고민하는 맞벌이 신혼부부가 있다면 만류하고 싶다""아직은 가정을 이루고 출산하면 여자가 커리어를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가정에 헌신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고 전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관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혹자는 저출생의 원인이 '부동산 때문이다, 집값 때문이다'라고 하지만 결국 여성이 희생해야 하는 불평등한 구조 탓"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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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조사관은 "오늘도 한 게시판에서 '여자는 결혼하고 나서 내리막길이다'라는 말을 봤다"며 "결혼 후 생기는 집안일과 육아에 대한 책임은 결국 여성의 커리어를 희생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에는 남편이 여성을 부양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재 청년들은 '나는 내가 책임진다'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결혼 후 여성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가 지속되는 한 결국 청년들이 더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자가 '슈퍼우먼'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가정 내 역할을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입법과 같은 방법을 통해 강제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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