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은 일제강점기 항일무장 독립운동의 뿌리가 된 대규모 항일의병의 근원지였지만 아직도 관련 연구는 빈약하기만 하다.
역사 속으로 잊혀져가고 있는 충북 항일의병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청주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한봉수 의병장의 부하로 활동했던 박치량.
보은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 수감된 그는 1908년 8월 22일 동지들과 옥을 부수고 탈출했고, 의병활동을 이어가다 또다시 붙잡혀 종신형까지 선고받았다.
이는 충북대 박걸순 교수가 최근 국가기록원에 소장돼 있는 충북 출신과 관련된 당시 1,000여건의 판결문 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현재까지 그의 당시 활동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다.
결국 당시 종신형까지 선고받은 그였지만 빈약한 자료와 연구에 100년이 지난 아직껏 독립유공자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연구를 통해 충북에서 밝혀진 유사 사례의 의병만 무려 40명이 넘는다.
이처럼 국가기록원에 당시 판결문이라도 남아 있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의병장으로 활동했지만 독립운동사에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이번 연구를 통해 여럿이 확인됐다.
당시 기록에 폭도 우두머리나 수괴 등으로 표현된 원건상, 김형백, 김정영, 김희경, 이경희, 조동호 등은 이름조차 생소한 의병장으로 관련 연구의 필요성을 실감케 하고 있다.
충북대 사학과 박걸순 교수는 "독립운동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의병장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밝혀야 할 과제"라며 "충북이 군소 의병장들은 의병사 연구를 심화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은 조선 말기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등에 격분해 궐기한 최초의 대규모 항일의병인 '을미의병'이 시작된 곳이다.
당시 제천 출신 유인석 의병장은 지역 주민으로 의병을 결성해 관군과 일본군을 물리치고 충주성을 장악했다.
이후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발해 일어난 '을사의병'에서도 가장 먼저 봉기하는 등 충북은 항일의병의 진원지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현재 충북의 항일의병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항일의병의 진원지며 충절과 열사의 고장이라는 말을 오히려 부끄럽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