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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이 떠민 '재건마을'…누가 다시 그들을 내모나



인권/복지

    군사정권이 떠민 '재건마을'…누가 다시 그들을 내모나

    개포4동 일대 '현대판 향소부곡'…재개발 놓고 지자체-주민 갈등

    타워팰리스 옆 판자촌으로 유명한 개포4동 재건마을. 주민들과 강남구 간에 재개발 문제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사진=김민재 기자)

     

    서울 강남구 개포4동의 '포이동 재건마을'. 잘 알려진 구룡마을과 함께 '부(富)의 상징'인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인근에 있는 판자촌 가운데 한 곳이다.

    최근 재건마을이 시끄럽다. 강남구청이 이곳 주민들에게 "텃밭을 없애달라"고 요구했기 때문. 구청이 운영하는 수목가식장을 주민들이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텃밭을 철거할 수 없다고 버티던 주민들도 "조만간 없애겠다"며 물러서긴 했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원래 텃밭자리는 지난 2011년 '재건마을 화재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곳이다.

    포이동 협동조합 추진위원회 공동 대표인 송모(65·여) 씨는 "나도 예전에는 텃밭 자리에서 살았다"며 "화재 이후 폐허가 된 마을 경계를 새로 정하면서 마을 규모가 3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했다.

    송 씨는 "당시 구청도 땅이 비어있는 동안 나무를 심어도 좋다고 했다"며 "지난해 봄부터 정원에 품을 팔러 갔던 사람들이 버려진 모종을 가져와 하나둘 심은 것뿐인데 왜 갑자기 잘못이란 건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사실 주민들도 텃밭이 시유지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당장 그들이 사는 집부터 '불법'이기 때문이다.

    송 씨는 "1979년 박정희 정권이 일용직 노동이나 넝마주이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을 재건대로 모았다"며 "한동안 서울 서초동 정보사 뒷산에 강제수용 당했다"고 했다.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1년 다시 한밤중에 트럭에 실려 지금의 '포이동 재건마을' 자리로 강제 이주당했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1980년대 당시만 해도 강남은 건물보다 원두막이 더 많고, 포장 도로보다 밭이 더 많은 농촌이었다. 주민들은 버려진 연탄재로 진흙탕을 메우고 일용직 노동을 가서 받아온 시멘트를 발라 집을 지었다.

    그렇게 정착한 주민들에게 정부는 1988년 느닷없이 재건대 해체를 선언하면서 "시유지를 불법 점유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에게 물리는 토지변상금도 하루하루 올라갔다.

    2011년 화재 사건 이후로는 변상금 부과를 중단했지만, 보통 한 가구에 2천여만 원씩 변상금이 잡혀있다. 조금이라도 재산이 등록된 집은 '소멸시효 5년'이 적용되지 않아 변상금이 2억 원 넘는 곳도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강남구, 주민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해 8월부터 14번에 걸쳐 '재건마을 개발 관련 TF 회의'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놓고 입장이 크게 엇갈리면서 갈등만 첨예한 상태다. 먼저 강남구청은 재건마을 자리를 재개발해 임대아파트 등 316세대를 짓겠다는 방침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근처에 임시이주용 임대아파트를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보증금 300만 원에 월 6만 원 수준에 입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러한 안에 반대하고 있다. 임시 이주 과정에서 마을공동체가 해체될 수 있다는 걱정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진보신당 신희철 서울성북구당원협의회 공동위원장은 "판자촌에서 서로 돕던 독거노인들이 임대아파트에 혼자 입주하면 적응하지 못해 심한 경우 고독사하기도 한다"며 "실제 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가 다시 판자촌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은 일단 집이 헐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오랫동안 철거 위협에 시달린 주민들로서는 한마디로 '구청을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해도 2년마다 중간심사를 거치게 돼있는 점 역시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실제로는 혼자 사는 노인이라도 자식이 부양자로 등록돼있거나 집 또는 사업체가 있는 것으로 판정되면 퇴거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포이동 협동조합 추진위원회 공동 대표 조모(54) 씨는 "기존 주택을 헐었다가 아파트를 지을 때 말이 바뀌면 어떡하느냐"며 "또 구청장이라도 바뀌면 앞일을 알 수 없어 불안하다"고 걱정했다.

    마을 주민들은 "불안정한 주거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건 우리가 그 누구보다 더 바라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제시한 게 협동조합 구성 방식이다. 주민들에게 일정 기간 땅을 임대하거나 매각하면 주택협동조합을 운영해 스스로 재개발하겠다는 얘기다.

    이 경우 재개발 과정에서 주민이 입주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투기를 노리는 투기꾼이 끼어들 여지가 사라지게 된다. 기존 주민들이 흩어지거나 공사 중에 정책이 바뀔 걱정도 해소됨은 물론이다.{RELNEWS:right}

    하지만 문제는 현행 '서울시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조례에는 협동조합에 관한 조항이 없다는 것. 따라서 주민들은 "해당 조례 시행령에 협동조합 및 사회적 기업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재건마을'이 어떻게 재건될 지 가늠하기 힘들다. 일단 주민들은 조만간 '텃밭 작물 나눔 행사'를 통해 그동안 공들여 지은 농작물을 이웃들과 나눌 계획이다.

    호박꽃도 그대로 피어있고 토마토 역시 시퍼렇지만, 어차피 나랏님들이 갈아엎을 밭이면 서로 나누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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