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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면 죽산, 일어서면 백산…동학혁명 119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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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앉으면 죽산, 일어서면 백산…동학혁명 119주년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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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26일 전북 부안과 충북 보은 등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 전북 고창에서는 어제 기념행사를 가졌다. 올해로 제119주년을 맞는 동학농민혁명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인도의 세포이 반란, 중국 태평천국의 난 과 함께 근대 아시아 3대 민중혁명으로 일컬어진다. 세계사로 따져도 19세기 중 최고의 격을 갖추고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민중대혁명이다. 세계 4대 근대시민혁명을 꼽으면 동학농민혁명과 프랑스 시민혁명, 독일 농민혁명, 중국 태평천국의 난이다.

    동학혁명이 내건 ''보국안민''과 ''제폭구민''…. 외세를 배격하고 신분제도 철폐 등을 내세웠으니 내적으로는 자주와 평등을 외친 우리나라 근대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1860년 동학을 창시해 자기 집의 여자 하인 2명을 며느리로 수양딸로 삼으며 시천주 인내천 사상의 전파가 시작된다. 멸시와 모멸이 없고 인간의 귀천이 따로 없는 현실 세계에 이 땅의 백성 민중들이 얼마나 반가워했겠는가.

    불평등, 멸시, 천대를 운명으로 알고 살아가던 백성이 차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새로운 인간관, 세계관을 경험했다는 것은 충격이고 가슴 벅찬 일이었을 것. 그러나 봉건왕조의 정치권력은 이를 좌도라며 탄압을 시작했다. 양반과 상민의 차별을 부정하고, 여자와 남자를 동등하게 대우하며, 어린이를 인격체로 보며, 노비들을 해방한다는 것은 조선 왕조에서 용납될 수 없었다.

    그러나 탄압 속에서도 동학의 이념은 전국에 퍼져 나갔다. 옛 기록대로 옮기자면 봄 잔디에 불붙듯 굳이 전파하지 않아도 퍼져나갔다고 한다.

    ◇ 앉으면 죽산, 일어서면 백산

    관청과 포졸들의 감시를 통해 번져 가던 동학은 1893년 3월 11일 충북 보은에서 전국 대회를 갖는다. 2만3천여 명의 동학도가 모여 성을 쌓고 진지를 만들어 관군의 진압에 대비해 방어태세를 갖추고 20일 간 대회를 치렀다. 선비, 농민, 남성, 여성 모두가 평등한 자격으로 민주적인 대토론을 이어갔고 비폭력 원칙 아래 동학의 나아갈 바를 밝혔다.

    그러다 탄압과 수탈이 계속되면서 그 다음 해 1월 전북 정읍 고부봉기가 일어나 관아를 습격했다. 3월 전북 고창 무장기포에서 농민군이 정식으로 결의문을 발표하고 전국 봉기를 선언하며 조직적인 대오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 뒤 전북 부안 백산 봉기에서 농민군의 편제가 갖춰져 본격적인 혁명군의 진용을 이룬다. 앉으면 죽산, 일어서면 백산이란 신화가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 뒤로 전북 정읍 황토현(덕천면) 전투 승리를 발판으로 농민군이 전주성을 장악해 승기를 이어가다 일본군의 개입으로 밀리면서 공주 우금치전투 패배로 궁지에 내몰린다. 패전을 계속하다 마지막 전투를 치른 곳은 본부가 있던 충북 보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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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개화정권이 일본군에게 농민군 진압을 부탁했고, 조선정벌을 꿈꾸던 일본은 어차피 나중에라도 장애가 될 동학군을 모두 살육하는 걸 목표로 했다. 1894년 11월부터 4달 사이에 학살된 농민군이 최소 3만 최대 5만까지 추산된다. 동학을 진압한 일본은 청일전쟁을 거쳐 조선조정을 을사늑약으로 삼켜 버린다.

    허리우드 영화 두 편을 떠올려 보자.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링컨'' - 1860년대 남북전쟁을 다룬 영화이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는 미국이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엄청나게 발전한 무기와 전쟁기술을 일본에 팔아먹고 일본군을 훈련시켜주는 과정에서 미군 장교가 사무라이가 된다는 가상의 이야기.

    미국의 무기업자들이 일본 왕실을 꼬드기고 외교적으로 압박해 일본에 총과 대포를 판다. 이 총과 대포로 내부를 정리한 일본은 미제 총과 대포를 들고 섬 밖으로 나가 휘두르는데 그 첫 무대가 조선 동학농민군의 학살이다.

    일본의 우경화나 망언을 결코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역사적 배경이 이것이다. 욕한다고 될 일이 아니고 미국, 중국 등 주변 국가들과의 연대도 중요. 요즘은 무기가 안 되니까 환율 가지고 말썽 피운다.

    ◇ 자랑스런 역사에 기념일이 없다?

    동학을 앞에 붙여 동학혁명, 동학운동, 동학혁명운동, 동학농민혁명이 있다. 동학을 앞에 붙이지 않은 용어로서 갑오농민전쟁, 갑오농민봉기, 1894년 농민전쟁, 그리고 갑오동학농민운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2004년 2월 ''동학농민혁명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니 공식 명칭은 ''동학농민혁명''이 적절하다. 굳이 동학이란 단어를 피하려는 배경은 동학이란 말이 1894년 당시 조선 왕조의 정치권력과 양반유생들이 사교가 백성을 현혹시켜서 일으킨 변란이라는 의미로 동학이라 일컬었기 때문이다.

    [BestNocut_R]110년이 흘러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07년 1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가 무장기포를 동학기념일로 정하려 했으나 정읍 황토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날이 혁명을 전국화 시킨 결정적 계기이므로 이날로 하자는 사람들의 강력한 항의로 결국 지금까지 기념일 제정은 미뤄져 오고 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의 조부가 경북 선산 지역에서 동학 접주였다고 알려져 왔다. 22살 때 동학의 지역 간부를 맡았다가 체포됐고, 간신히 사형을 면해 고향으로 내려가 일생 술로 시름을 달래며 살아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이런 집안 내력을 자랑스러워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110주년 기념행사 때 한나라당 대표로서 서면으로 축사를 할 만큼 관심이 깊었다. 기념일 제정 문제나 동학을 역사문화 유산으로 세계화시키는 과제에 각별히 관심 가져주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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